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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Dec 02. 2024

 할머니도 어머니도 사모님도 아닌 그냥 김화숙

진보당 안산시지역위원회 주관『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북토크

사랑하는 내 연인 내 최고의 친구 화숙!


할머니도 아줌마도 사모님도 아닌 그냥 김화숙!

예순두 번째 생일 축하축하~

호랑이답게 당당한 걸음과 포효하는 목소리 기쁘고 반가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책을 내고 토론하고 강의하고

얼마나 높이 비상할까, 궁금 기대.

친구의 기운으로 나도 비상한다.

고맙다 친구야.

하루하루 너의 가슴과 머리와 엉덩이로 만들어지고 있는 책 <숙덕숙덕 사모가 미쳤대>.

미친 세상이 화숙의 소리를 듣고 제정신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다시 한번 너의 62번째 생일 축하하며.

너의 연인 너의 친구 덕.




2024년 2월 21일 62번째 내 생일에 짝꿍이 쓴 축하카드가

34년 우리 결혼생활의 변화의 증거이자

페미니즘 하는 중년부부의 현주소로 사용됐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이 오던 11월 26일(화) 저녁,

우리 동네,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인 공간'인'에서

"김화숙 작가와의 만남"에서였다.

『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로 두 번째이자

진보당 안산시 위원회가 주관한 북토크였다.   


우리 동네 지역구인 홍연아 전 시의원이 진행했다.

평어 전도사 화숙이 북이 토크답게, "평어로 해 볼까?"

연아가 참여자들에게 동의를 구하니

모두 "좋아"라고 답했고 그렇게 이루어졌다.

카드는 토크 말미에 PPT 자료로 등장했다.




행사 도입부는 세월호 유가족 단원고 2학년 4반 고 임경빈 군 엄마 전인숙 님의 시간이었다.  


계획에 없이 '국민 항소단' 이야기를 듣기로 한 거였다. 토크 시간이 줄어 아쉬운 시작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였다. 내 인생 후반에 세월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제어니까. 내가 분기탱천하기 이전 세상은 바로 '세월호'였고 "가만히 있으라"였다. 내가 목소리 없이 복종하던 "권위주의" 시스템이 세월호와 같았기 때문이다.


경빈이 이야기 잠깐 덧붙이자. 경빈이는 세월호 참사 당일 맥박이 측정되는 상태로 발견됐지만 5시간을 이리저리 이송되다가 사망했다. 구조 헬기로 VIP나 챙기느라 경빈이를 나 몰라라 한 세상이었다.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재판부는 “전체적으로는 이송 지연에 따른 책임을 인정한다"라며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각 공무원의 고의·중과실은 인정되지 않아 개인에 대한 청구는 기각한다"라고 판결했다. 유가족은 일부 승소했지만 검찰이 항소한다니 국민 항소단을 꾸려 대응하려 한다. 내가 속한 국민 항소단에 북이 토크 참여자들도 신청했다.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로 자기소개 겸 인사를 했다. 파안대소하는 두 노인 여성들이 손에 생맥주잔을 들고 봉두난발한 흰머리로 꾸밈없이 웃어젖히고 있다. 누구의 할머니인지 어머니인지, 누구의 그림자인지보단 사람으로 보인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겁게 활동하며 말하고 쓰는 여성으로 늙을 수 있길 꿈꾼다. 나이 든 여성도 사람이니까.


기본 질문

0. 자기소개 한 마디

1. 20대, 30대- 각각 가장 상징적인 에피소드

2. 인생 하프타임의 의미와 실제

3. 2014년, 그 후- 무엇에 집중하고 있나?

4. 진보당, 어떻게 만났고, 함께 무엇을 하고 싶은가?- 범수와 함께

5. 화숙에게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애석하게도 1990년 9월의 내 결혼식 날 나는 "남편을 순종하겠다"라고 서약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엄마 아빠와 찍은 사진을 가져온 건 그 시절 내 의지와 무관하게 권위주의 선교 단체에 몰입한 나로 인해 속 많이 썩은 두 분에 대한 오마주였다. 1996년 4월 바르샤바 공항에서 찍은 34살의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이다. 역시 내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된 한국행이었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청춘이었다. 질문으로 와글거리는 영혼이었다.



연아가 덕이를 불러내서 "질문 여자 눈물 남자" 꼭지에서 울던 남자 덕이를 소환해 말을 시켰다.




하프타임의 의미와 실제, 내 인생 가장 중요한 전환기는 월드컵이 있던 2002년에 시작됐다. 내 나이 만 40세, 전반전은 "잘못 살았다"라고 깨달아버렸고 인생을 갈아 넣었던 선교 단체를 떠났다. 백수 알바로 살다 사회복지사 직장인 미자립교회 목사 사모, 2014년 암 수술 때까지 '작전타임'이었다. 이전과 다르게 살고 싶었을 뿐.


어떻게 다르게 살지? 내 의지에 반해 힘 있는 존재에게 '복종'하는 삶은 끝낸다. 그거였다. 그다음엔 뭘 하고 싶지? 이전과 다른 삶은 뭐지? 책을 읽고 좌충우돌 세상을 마주하고 경험했다. 가장 하고 싶은 건 글쓰기였다. 쓰지 않으면 미칠 거란 예감이었다. 초등학교에서 가져오는 가정 조사서에다 아빠는 목회자, 엄마는 '작가'라 쓰게 했다.


애 셋 가진 부모로서 이 사교육 공화국에서 어떻게 아이들과 함께 살아남지? 부모도 아이들도 스스로, 자기주도로 살아야 했다. 돈 안 들이고, 공부의 즐거움을 아는, 자기 주도적 공부였다. 이전 40년간 읽은 책을 합한 것보다 하프타임 동안 읽은 책이 몇 배 많을 거다. 내 안의 목소리를 따라 읽고 질문하고 쓰고 읽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2014년 내 나이 만 52세, 간암 절제 수술은 후반전 시작 신호였다. 내가 싫은 건 안 하고 내 몸이 이끄는 대로 내 몸을 내가 접수해 2년 정도는 오직 자연치유와 몸 공부에 집중했다. 내 몸이 달라지고 내적 외적으로 강해져갔다. 2016년 사람들과 어울리며 공부하고 글 쓰고 토론했다. 촛불 광장에 매주 나가 정치 현실을 마주했다.


광장에 세월호 부모님들이 있었다. 세월호를 피하면 암이 재발할 것 같았다. 계속 가만히 있으면 자기혐오로 미칠 것 같았다. 안산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행동에 참여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잘못 배우고 잘못 살았던 공사의 이분법, 영육의 이분법, 성속의 이분법들이 허물어지고 세월호와 페미니즘으로 통합됐다.



정치 무관심하던 아줌마가 진보 정당에서 북토크를 하다니. 40대 직장 생활할 때 알게 된 홍연아 시의원에게 마음을 두고 지켜보았건만, 박근혜 정부 시절 정당 해산이란 엄청난 참사가 일어났다. 홍연아 곁에 박범수라는 젊은 남자가 따라다니고 있었다. 내심 실망했다. 내 지역구 여성 의원이 여성을 키워줘야지 남성에게 바통을 넘겼다?


"페미니즘 모르는 남성 진보? 진보 마초밖에 더 되겠어요?"


홍연아가 내게 진보당 가입을 권유했을 때 나는 페미니즘 모르는 남성은 지지하지 않노라 했다. 이후 정치인 박범수는 내가 진행하는 페미니즘 토론 모임 이프에 들어왔다. "세상을 절반의 눈으로만 보았구나!" 라며 두 눈을 뜨고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친구가 됐다.  이후 나는 "남성 중심 정치 까려고"라며 진보당원이 됐다.           




내게 페미니즘은 무엇일까?


"코로 물구나무선 코끼리"가 참 맘에 든다. 중력을 거슬러, 익숙한 질서를 거슬러 다시 생각하라 도전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를 거슬러 산다는 건 낯설고 불편했다. 내 짝꿍은 이혼당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나와 함께 '생존' 페미니즘을 공부했고 아름답게 살아남았다. 우리 큰아들은 '스위트홈'을 잃을까 페미니즘 하는 엄마에게 무지 저항했다. 전에 경험한 적 없는 자유와 해방과 평등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지만 나와 가족을 살게 했다.


한창 코로 물구나무서기 시도하는 엄마로 인해 맘고생하던 큰아들의 고백이 새롭다.

"내가 엄마를 참 몰랐구나. 정확히 말하면 '엄마로서의 엄마'만 알았지 나머지에 대해서는 무지했다는 생각?"

"하여튼 요새는 항상 엄마가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라는 사실을 주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짝꿍이 쓴 축하카드 마무리가 우리 관계에 일어난 변화를 새삼 보여준다.

"친구의 기운으로 나도 비상한다.

고맙다 친구야.

하루하루 너의 가슴과 머리와 엉덩이로 만들어지고 있는 책 <숙덕숙덕 사모가 미쳤대>.

미친 세상이 화숙의 소리를 듣고 제정신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그렇게 나온 책『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로 두 번째 북토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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