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말랭이 안 먹을 거야?
너는 왜 간식을 챙기면 안 돼? 삶의 행복은 디테일에
“꺄~~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다!”
간식을 받으며 짝꿍 숙이 아이처럼 좋아라 환호했다. 고구마를 좋아하는 사람답게 “이것 봐, 고구마 100%야”라며 성분 표시까지 확인하며 침을 삼켰다. 평소 아침을 안 먹는 우리에게 8시 반은 뭘 먹을 시간이 아니지만 오늘은 예외다. 대구로 공연하러 가는 416 합창단 버스 안, 김밥이며 생수에 갖가지 간식을 두둑이 받았으니 이제 먹방의 시간이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김밥 한 줄씩 맛있게 먹고 입가심으로 고래밥도 하나 나눠 먹었다. 자기 몫의 고구마말랭이 한 봉지를 다 비운 숙이 내 간식봉지를 넘보며 말했다.
“고구마말랭이 안 먹을 거야? 마저 먹자.”
나는 아주 잠깐 숙에게 양보할까 흔들렸지만 담담하게 말했다.
“아냐, 딸 줄 거야.”
예상 밖의 대답이었을까, 숙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와~~그런 깊은 뜻? 그렇다면 내가 양보해야지.”
그랬다. 숙이 고구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지만 받을 때부터 내 마음은 딸에게 주기로 기울어 있었다. 매일 학교 도서관에 박혀 단조로운 수험생의 일상을 보내는 딸. 엄마처럼 고구마를 좋아하는 딸을 위해 고구마말랭이 한 봉지 갖다 주려는 아빠 맘이었다. 숙이 아주 흐뭇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기분이 아주 좋았다. 숙의 미소의 의미를 나는 알기 때문이었다.
너는 왜 간식을 챙기면 안 돼?
숙과 나는 2020년 6월부터 416 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 부모들과 생존자 부모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합창단이다. 사회적 아픔이 있는 곳에서 부르면 달려가 노래하며 함께 싸우고 연대하고 있다. 다양한 나이의 남녀 단원들은 사는 지역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동지요 가족 같고 친구 같다.
월요일 저녁마다 합창단 연습하러 가면 먼저 연습실 옆방에서 함께 요기를 하는 게 일상이다. 저녁 식사로 준비된 김밥, 라면, 커피에 그날그날 누군가가 한턱내는 맛있는 먹거리가 준비돼 있다. 단원 가운데 낚시를 좋아하는 용천풍은 종종 문어니 주꾸미를 잡아와 나눠 먹기도 한다.
떡, 빵, 샌드위치, 견과류, 과일, 초콜릿 등등. 어떤 날엔 단원들이 장바구니가 필요하다 할 정도로 챙겨갈 게 많았다. “월요일이면 우리 식구들은 모두 합창단 간식을 기다린다니께?” “맞아 지난주는 왜 빈손이야, 난리 났다니까?” 단원들끼리 이렇게 웃고 떠들 정도였다. 우리 집 수험생들에게 합창단 간식을 챙겨다 주는 건 늘 숙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가져가는 법도 없었다. 어느 날 숙이 물었다.
“덕인 왜 남은 간식을 안 챙겨? 왜 빈손으로 가?”
나는 뜨끔했다. 숙이 그렇게 물을 땐 이미 이유를 다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궁색한 대답을 둘러댔다. 뭘, 그걸 챙겨가서까지 먹냐고. 숙이 그냥 지나칠 사람이 아니었다.
“왜? 다들 챙기는데 너는 왜 안 돼? 서울엔 딸도 있잖아.”
내가 더 할 말이 없었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간식 챙기는 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자잘한 먹거리 챙기는 일은 숙이 하면 자연스럽지만 내가 하는 건 그림이 좀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었다. 밖에서 사 가는 건 몰라도 남은 음식을 챙겨 가는 건 남자 할 일이 아니란 편견이 있었다. 빛이 안 나고 하찮아 보이는 일은 여자의 일이었다.
나는 가부장 체제로 길러진 남자였다. 큰아들로 남편으로 아빠로 가장으로 목사로. 항상 크고 중요한 일과 결정을 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남자의 역할과 책임이 있다고 배웠다. 여자의 일이다 싶은 쪽엔 무관심했다. 돌봄 노동과 감정노동, 마음을 나누고, 음식을 챙기고, 싸주고 싸가는 건 여자들이나 하는 일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보게 됐다. 낯이 안 나는 일, 허드렛일이란 게 진짜 허드렛일일까?
사람 사는 게 어찌 무 자르듯 책임과 역할이 나눠진단 말인가. 일상은 예측 가능하게만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중요한 일을 하찮게 생각했으니 나는 그런 일에 무능한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고무마말랭이 한 봉지의 행복
그때 숙의 질문이 계기가 되어 나는 합창 연습 후 남은 간식을 챙길 줄 알게 됐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던가? 인생의 행복이야말로 디테일에 있음을 환갑이 되어서 조금씩 배우고 있다. 분위기와 감정을 읽으며 작은 위로의 말이나 문자를 보내고, 손 한 번 잡아주고, 포옹하고. 작은 먹거리를 챙기고, 과일을 깎아 나누어 먹고, 차 한 잔 타주고.
대구 공연이 끝나고 안산으로 돌아와 다시 승용차로 서울에 오니 새벽 1시가 됐다. 딸은 잠을 안 자고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구마말랭이를 비롯해 챙겨 온 간식거리를 내놓았다. 고구마말랭이 때문에 모녀 수다가 깔깔대며 이어졌다. 전에 몰랐던 삶의 기쁨이고 행복의 디테일이었다.
“와~~ 엄빠 안 먹는 간식 다 왔구먼.”
“딸 알아? 엄마가 요 고구마말랭이 마저 먹자니까 아빠가 뭐라 한 줄 알아?”
“뭐랬어? 안 돼, 나 혼자 먹을래, 그랬어?”
“안 된다고 한 건 맞아. 딸 줄 거야 그랬어. 와~ 그래서 엄마가 먹고 싶은 걸 참았어.”
“오~~ 둘 다 아주 잘했어. 역시 많이 컸네 우리 아빠 정하덕!” / 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