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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Sep 10. 2024

모전여전? 엄마 90 평생 제일 잘한 일이 뭐 같아?

엄마 피가 내 속에 흐르고 있다. 우린 페미니스트 될 운명이었던 거 같다

금토 1박 2일간 영덕 친정엄마에게 다녀왔다. 공식적인 이유는 엄마 병원 건이었다. 엄마가 3개월 단위 병원 진료를 따라 산 지가 벌써 몇 년이다. 한 보따리 약을 타다 3개월을 사는 셈이다. 자식들이 형편 되는대로 병원동행한다지만 아무래도 가까이 사는 큰딸 언니가 수고를 많이 했다. 이달엔 숙덕 부부가 당번하게 되어 겸사겸사 엄마와 1박 하고 왔다.


"내사 병원에 지쳤다. 인제 진짜로 그만 갈 거다. 약 처방은 보호자만 가도 해 준다."


엄마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응급 상황 말곤 현대의학을 의지하지 않으니까. 눈부시게 발전한 의술이라지만 해결 못하는 질병이 얼마나 많은가. 엄마 같는 노환 심장은 병원 오가는 게 더 부담인 것도 사실이다. 콩팥에 종양이 의심되니 큰병원 가란 말을 듣고도 조직검사니 상급병원 따위 단칼에 거절한 게 벌써 석 달 전 일이었다.


"병이 더 나고 더 커져야 죽는 거다. 이 나이에 이 심장 가지고 수술할 것도 아니고. 이만큼 살았으면 됐다."


촌철살인, 엄마의 단호함을 누가 이기랴. 숙덕은 망중한으로 1박 2일 잠깐 바람 쐬는 샘 치고 다녀왔다. 포항 병원에 들러 담당 의사를 만나 대화도 하고 약을 받았다. 이번에도 엄마랑 한 밤 자도 밥 한 끼 안 먹는 여행이 됐다. 아픈 엄마가 밥 준비하는 수고 하지 말도록 그리고 내 비건식 고집 때문이었다. 가는 날 이른 저녁을 밖에서 먹고 들어갔다가 아침 안 먹는 우리가 일찍 엄마집을 떠나는 식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강릉까지 올라가며 동해바다를 보고 백사장 맨발 걷기수 있었다. 엄마한테 받아 입은 셔츠를 바람에 휘날리며.


엄마한테 오가며 주고받은 모녀대화를 조금만 정리해 기록해 본다.




엄마: 오고 있나? 어디쯤 왔노?

나: 뭔 소리야 엄마. 금요일 간다 그랬잖아. 어제 화욜이었잖아.

엄마: 응? 그래, 오늘 금요일 아이가?

남: 내가 어제 통화할 때 금욜 말했잖아. 세 밤 자야 금요일이지.

엄마: 아이구 내가 왜 이러노. 맞네 오늘 수요일이구나.

나: 그럴 수 있어 엄마. 딸사위 오는 게 얼마나 기다려지면 그러겠어. 밀양엄마도 그렇더라. 자식들이 간다는 날 미리 안 가르쳐줘 그래서. 하루 전날 밤에 낼 아침에 누가 온다고 알려주는 게 이젠 요령이야. 왜냐, 미리 알려주면 오는 날까지 전화통에 불나거든. 오고 있냐, 또 금방 어디냐 전화해.

엄마: 그렇더나. 하하하 노인들이 다 그런다.

나: 그니께. 울 엄마도 확실히 노인이네. 밀양 엄마만 그런 줄 알았더니.

엄마: 그래, 밀양 사돈은 참 복이 많은 양반이다. 좋은 아들 좋은 며느리가 있으니.


나: 맞아 밀양 엄마 참 복 많은 양반이지. 그런데 엄마는 왜 복 없어?

엄마: 아이구 내사 사돈 같은 복 없잖아. 아들이 멀리 있고 며느리는 연락도 안 하고. 큰아들은 먼저 가버렸고.

나: 엄마! 딸자식 앞에서 복 없다는 소리가 그렇게 쉽게 나와? 엄마가 왜 복이 없어?

엄마: 사람 복이 복이지. 아들 며느리 복은 없는 거 맞다.

나: 도대체 이런 소리 아들 며느리 앞에서 하는 건 아니지? 그래 아들며느리만 자식이야? 엄마가 뭘 몰라.

엄마: 아들 하나 남은 게 저래 외국에서 안 들어오는 거 봐라. 에미가 죽든 말든 버려두잖아. 며느리도 똑같아.

나: 엄마! 아니, 아들 멀리 있으면 복 없는 거야? 며느리 사는 거 바쁜데, 시엄마한테 뭐 재미있다고 전화하고 그래. 나도 안 하게 돼 이젠. 해봤자 하는 소리 뻔한데 뭔 재미야. 답답한 사람이 전화해서 재미난 얘기하고 그래 봐. 딸사위가 시간 쪼개서 엄마 보러 간다는데 그래 복 없단 소리가 그래 쉽게 나와? 좋아?


엄마: 그래, 맞다 내가 딸 복 사위 복 있는 거는 맞다.

나: 아냐, 옆구리 찔러 절받자는 건 아니고. 그 정도가 아냐. 엄마, 복받은 사람으로 사는 법 가르쳐 줄까? 며느리 생각할 땐 무조건 감사합니다 그러고 살면 돼. 우리 아들하고 살아주어서 고맙잖아? 노인네들은 당신 아들은 천하에 잘 났는데 며느리만 못돼 처먹었고 못난 거지? 그게 불행의 원인 아니겠어?

엄마: 그래? 하하하 내가 한 번도 내 아들하고 살아주는 며느리 고맙단 생각을 안 봤네. 요새는 그러는 갑제? 그래 생각하고 살아야 맞겠구나. 참 내가 나이 먹으니 새로 배운다 자꾸.


 나: 그렇고 말고. 다시 배워야지. 사위 생각할 땐 어떻게 한다? 고마운 알아! 그렇게 생각하라고!

엄마: 며느리한테 고맙다 하는 건 이해되는데 사위한테는 그게 먼 소리고? 정서방 같은 사람 어디 있다고.

나: 뭐래? 그게 문제라고. 우리 같은 멋진 각시 만나 사는 고마운 알아라 사위에 대해선 그렇게 생각하란 말이야. 엄만 맨날 딸보고 잘하라 소리만 했잖아. 내가 문제라는 식으로. 내가 화냈어 안 냈어? 욕바가지로 먹고살고 싶으면 계속 그러든가. 여자 보고 죽어 살라는 결혼 때려치우고 싶었던 거 알잖아. 엄마 며느리도 그럴 거 아냐. 헤어지고 싶은 참고 사는 며느리 생각해 봐. 며느리가 고맙지.

엄마: 맞네 듣고 보니 맞네. 니 때문에 내가 웃는다. 이제 그래 생각해 보도록 하꾸마.


나: 인생 살면서 근데 엄만 제일 잘했다 싶은 게 뭐야?

엄마: 모르겠다. 잘 한 건 온데간데없고 자식들한테 못 한 것만 가지고 늙어서 욕먹고 살잖아.

나: 아니, 못 한 건 못한 거고. 잘한 것도 많잖아. 90 평생 엄마가 제일 잘한 일이 뭐 같아? 찾아봐.

엄마: 있지. 요새 니 사는 거 볼 때 생각한다. 내가 딸자식들 대학 보낸 게 제일 잘한 일이다 싶다. 너그 아버지는 너그한테 큰 관심 없었다. 나는 못 배운 게 한이 돼서 내 자식은 아들이고 딸이고 무조건 공부시키겠다고 다짐했더라. 너그 외할아버지 지집아 학교 가서 뭐 하냐고 학교 갔다 오면 두들겨 팼다. 국민학교도 몇 년 못 다닌 게 한이 돼서 참 많이 울었다.


나: 와~ 맞아 엄마. 그 형편에 어떻게 딸들 다 공부시켰나 싶어. 엄마는 의지와 열정이 있었지 확실히.

엄마:  내가 우리 딸들 공부시킨 거 잘했구나 싶을 때 많다. 아는 사람들 중에 너그보다 돈 많게 사는 딸들이사 많더라. 그래도 너그 눈을 밝게 뜨게 해준 거는 잘했구나 한다. 니가 공부하고 책쓰고 큰소리치는 거 봐라. 

나: 하하하 맞아 엄마. 그건 참 고맙게 생각해. 내 친구들 특히 고향 친구들 공장 가는 경우 많았잖아. 중학교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장사해서 돈 많이 번 친구들 보고 엄마 부럽다 카더니 이제 말이 다르네?

엄마: 그건 하는 소리였다. 어릴 때부터 나는 시집가면 딸이라도 차별 없이 공부시키겠다 단디 다짐했더라.


나: 참 신기해 엄마. 엄마 피가 내 속에 확실히 있네. 나도 어릴 때부터 차별이라든가 억울한 일 겪은 거 절대 안 잊어버려. 나는 그래 안 살 거야 맘먹었거든. 지금도 그래. 내 딸은 다르게 살게 할 끼야 그래. 밀양 시누이 셋 다 대학 안 보낸 거 봐. 시엄마 피는 그렇지 않은 거지. 내가 나이 먹어 보니 울 엄마 덕인 거 알겠어.  

엄마: 그렇고말고. 니가 워낙 똑똑하고 공부를 잘하기도 했지. 이런 아를 우째 앞길을 막노 싶었다. 너그 오빠하고 언니는 대구 갔다 방가골 갔다 하는 통에 학교 중퇴하고 얼마나 고생했노. 내가 그게 한이 돼 피눈물을 쏟았다. 그꼴 안 나게 할라꼬 니부터 3남매 공부시키는 데 목숨 걸었니라. 너그 언니는 나중에 지힘으로 대학했지만, 아직도 제때 학교 안 보내 준 거 가지고 섭섭한 소리 하잖아.


나: 엄마랑 나랑 딱 확실히 닮은 게 하나 보이네. 딸자식 억울하게 안 만들겠다는 정신. (모전여전, 엄마도 나도 페미니스트가 될 운명이었구만. 페미니스트란 단어를 엄마에게 아직 설명하지 못하겠다. 내 책으로 엄마가 감은 잡았으리라 믿는다.) 엄마는 그 시절에 조금만 더 배웠으면 신여성으로 활개쳤을 끼야. 나는 엄마가 못 넘은 운명을 막 싸우고 바꾸고 있잖아? 내 딸은 우리 겪은 거 안 겪게 해 줘야지 안 그래? 이런 게 복 아냐 엄마? 울 엄마 복 많은 사람인 것도 알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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