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삶에서는 숙에게 날마다 동반자와 친구와 연인과 살고 있다는 느낌을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모래알 반짝이는 해변이 앞마당처럼 이어지는 언덕에 그림같이 예쁜 하얀 집에 우아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부부가 있다. 그러나 조금만 줌인으로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드러난다. 남자는 여자가 파티에 참석할 때, 잠자리에 들 때,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일일이 골라준다. 이웃 남자가 아내의 아름다움을 칭찬하자 남자는 둘 사이를 의심하여 여자에게 가차 없이 주먹을 휘두른다.
폭력 후에는 미안하다면서 꽃과 예쁜 드레스를 선물한다. 의처증에 강박증까지 있는 남자는 냉장고나 선반에 물건이 질서 정연하지 않으면 못 견딘다. 통조림이나 병은 상표가 보이게 한 방향으로. 수건걸이에 수건도 반듯하게. 여자는 고통스럽게 살면서도 은밀하고 치밀하게 준비한다. 어느 날 저녁 이웃집 남자의 초대로 셋이서 요트를 타는 중, 갑작스러운 폭풍우를 만나게 되고 여자는 탈출에 성공하는데…
추석날에 내가 쓰는 순서라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적과의 동침 Sleeping with the enemy> 스토리를 요약해 보았다. 나는 1991년 9월 어느 날 프랑스 파리로 가는 대한항공 여객기 안에서 그해 개봉한 이 영화를 처음 보았다. 세월 속에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제목만은 잊은 적이 없었다. 지난주일예배 설교를 “두려움 없이”라는 제목으로 준비하는 중에 문득 이 제목이 또 떠올랐다.
자유와 해방의 예수 복음이 가부장제와는 결코 공존할 수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윗사람 아랫사람을 만들고 아랫사람의 두려움에 기반해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가부장제가 예수 정신과 얼마나 반대로 가는지 생각하게 됐다. <적과의 동침>이 떠올랐고 제목만 인용할 수 없어서 영화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중간에 숙이 들어와서 둘이 같이 끝까지 다시 보았다.
여성혐오를 다시 생각한다
“여성혐오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거 같지 않아? 여자는 못 믿을 존재이고 남자보다는 열등한 존재라는 믿음이 저 미친놈 속에 깔려 있잖아. 끊임없이 의심하고 감시하고 단속하고 통제하는 저런 남편은 가부장적인 남성성을 극대화한 캐릭터야.”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 숙이 정리한 말이다. 강박증과 의처증이 있는 남자한테서 숙은 보편적인 남성성과 여성혐오를 읽어냈다.
나는 34년 전 처음 볼 때도 그랬지만 지금 봐도 영화 속 부부는 아주 예외적이고 특별한 경우로 보였다. 숙은 저 미친놈을 보통의 남성 심리와 같은 선에 놓고 보다니, 자동적으로 나는 방어적이 되고 있었다.
“아니, 저 남자는 강박증에 의처증이 있어. 정신과적인 병이잖아.”
숙은 강경하게 받았다.
“병 맞아. 그런데 병은 아주 중요한 은유로 봐야 해. 가부장제가 바로 저 남자처럼 여성혐오하잖아. 여자를 남자의 통제하에 둬야 안심되는 심리를 극단화해서 보여주는 것 뿐이야.”
이해는 되는데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나도 결국 저런 남자와 같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 같아서였다.
우리 관계도 숙의 입장에서 보면 ‘적과의 동침’이었을 것이다. 34년 전 9월 이 무렵에 결혼식을 마치고 강릉으로 가는 신혼여행 비행기 안에서 숙은 이 결혼을 없었던 일로 하자며 헤어지자고 했으니까. 그땐 너무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다. 신혼여행 마지막 날 결국 나는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지금 돌아보니 숙은 그때 적과의 동침을 직감했던 것 같다. 내 눈물에 당황해 숙은 일단 살아보기로 한발 물러섰다.
나는 왜 파리행 비행기를 탔을까? 숙은 결혼 후 6개월 만에 혼자 오스트리아 빈에 선교사로 떠났다. 나도 가기로 했더랬는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권이 개방되면서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폴란드 선교사가 되었다. 숙은 빈에서 바르샤바로 열차로 갔고 나는 서울에서 비행기로 파리를 경유하여 바르샤바로 가게 되었다. 그때 나는 8개월간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님을 만난다는 설렘과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공중에 떠 있었다. 비행기에서 틀어주길래 보게 된 영화 제목이 <적과의 동침>이었을 뿐, 나와 1도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영화 속 여자가 결국 탈출에 성공하고 영화가 끝날 줄 알았다. 안타깝게도 집요한 남편이 다시 찾아와 여자를 위협한다. 여자가 남자를 죽이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그래, 죽여야 끝이 나는 거야. 살불살조라니까.”
가부장적인 남녀위계는 한 사람이 죽지 않고는 끝이 안 난다는 게 숙의 지론이었다. 물론 여기서 죽을 사람은 가부장 남자를 의미했다. 숙은 믿음이란 이름으로 성차별을 많이 겪었다. 선교단체에서 ‘영적 훈련’이란 게 모두 가스라이팅이요 여성혐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2주 전 안산에서 있었던 숙의 북콘서트가 생각난다. 진행자 연선이 “이번 책에서 가장 맘에 드는 꼭지에서 조금만 읽어 달라” 했을 때였다. 숙은 ‘살불살조’ 부분을 읽었다. “나는 살불살조 하고서야 나로 살게 됐어. 나는 과거의 덕이도 죽여버렸어.” 참석한 사람들과 함께 나도 웃을 수 있었다. 그럼 나는 과연 죽었을까? 더는 지배받고 통제받지 않겠다는 숙의 의지의 표현이었다. 가부장적인 종교권력을 특히 싫어하는.
숙에게 평등한 동반자의 느낌을 선물하고 싶다
내겐 스위트홈이던 그 결혼생활이 숙에겐 적과의 동침이었던 셈이다. 신혼여행에서 헤어지려던 맘을 접은 후 숙은 한 번도 이혼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나는 숙이 만들어주는 안온한 가정에서 1% 좋은 남편 잉꼬부부라 믿고 살았다. 그러나 중년의 암수술과 페미니즘 공부가 숙의 눈을 새롭게 뜨게 하고 말았다. 힘을 준비한 숙이 어느 날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으니 이혼하자고 폭탄선언을 했다. 나는 속수무책 또 울 수밖에 없었다. 숙을 따라 페미니즘을 같이 공부할 테니 그래도 안 되면 이혼하자고 빌어야 했다.
숙은 어린 시절부터 언어는 없어도 가부장 체제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이런 가부장 체제를 따르며 인정받는 사람이기도 했다. 결혼생활에서도 숙은 나한테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죽이면서 동시에 자기답게 인간답게, 자유와 해방을 향한 원초적인 꿈을 버리지 않았다. 숙의 꿈은 가부장제와 공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봉우리를 깎아내리고 골짜기를 매우는 예수 복음처럼, 우리는 서로 운명이 다른 적과의 동침이었다. 나는 강박증도 의처증도 아니지만 여성혐오가 몸에 익은 ‘보통의’ 가부장 남자였다.
숙은 해방과 자유를 누리고 싶어 했다. 적인 줄 알면서도 나를 돌보고 사랑하였다. 둘 사이와 아이들과의 사이에, 그리고 그 밖의 관계에서도 돌봄과 감정 노동을 오롯이 숙이 감당했다. 내가 잘 모르는 말을 숙이 하면 나는 무시하고 판단했다. 그게 숙을 아프게 하는 줄 나는 몰랐다. 남성 중심적으로 숙의 관점을 의심하고 비하하고 단속하고 통제했다. 페미니즘 공부 덕에 내가 바로 숙의 적으로 살았구나 점점 알아가게 되었다.
적과 함께 사는 사람은 얼마나 답답하고 두려울까. <적과의 동침>이 잘 보여주었다. 그 아름답고 똑똑한 여자가 폭력 아래 고통받아야 했다. 일상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당했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삶이었다. 평등한 동반자 관계가 아니면 힘이 약한 쪽에겐 결국 적과의 동침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남은 삶에서는 숙에게 날마다 동반자와 친구와 연인과 살고 있다는 느낌을 선물하고 싶다. 내가 숙을 적이 아니라 좋은 아내요 친구요 연인으로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 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