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조금은 더 울 수 있도록
너의 별에 닿을 때까지 노래할게, 4.16 합창단 기획공연을 마치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공연 끝나고 다들 건강하세요?”
월요일 저녁 4.16 합창단 연습이 있는 날, 하나둘 단원들이 모여들면서 시끌벅적하다. 연습실로 가기 전에 먼저 들러 먹고 마시며 인사를 나누는 방이다. 김밥과 커피는 기본으로 있고 날에 따라 다양한 먹거리와 마실 거리가 있다. 오늘은 낚시 좋아하는 용천풍이 가져온 갑오징어와 주꾸미 숙회가 준비되어 있다. 또 그 국물에 끓인 라면까지. 웃고 떠들며 잔치 분위기였다.
여느 날과는 좀 다른 날이다. 나흘 전 그러니까 지난주 목요일 10월 3일에 서울 경동교회에서 있었던 2024년 기획 공연 이후 처음 연습 날이다. 공연의 감동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럴 것이다. 나도 그렇고 다들 들뜬 목소리다.
먹방 후 연습 시간, 1부는 평소대로 노래를 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Remember me’ ‘푸르다고 말하지 마세요’ 세 곡을 연습하고 잠시 쉰 후 2부에서는 기획 공연에 대한 평가회가 있었다.
“416 세월호참사 유가족들 응원하는 마음으로 왔는데, 노래를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했어요.” “남편이 내 손에 끌려 억지로 왔는데, 평소에 무뚝뚝한 그가 노래를 듣는 동안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더래요.” “강남에 사는 언니는 강남 우파인데 동생인 내가 초대하니까 그냥 왔다가 노래에 감동해서 416 엄마 아빠 응원군으로 바뀌었어요.” “내 친구는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눈물을 흘리며 우느라 눈이 퉁퉁 부었대요.” “공연 때마다 앞줄 중앙에 서서 노래하느라 긴장했는데, 3부 때 앞에 안 서고 뒷줄에 섞이니까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었어요.” “노래할 때 관객과의 일체감이 느껴져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누군가가 브레이크 걸었다. “평가회인데 부족한 점에 대해서도 좀 얘기해 보죠,”
아쉬운 점에 대해서도 몇 가지 얘기가 나왔지만 다들 감동과 찬사 일색이었다. 나도 그랬다. 4년 전 2020년 6월에 숙의 제안으로 416 합창단 신입 단원이 되었을 때만 해도 나는 이런 감동을 기대하지는 못했다. 전공자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노래하는데 하면 얼마나 잘하겠어? 노래 실력 테스트도 따로 없었다. 그래서 나도 별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단원이 되었다. 안산 시민으로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함께 노래하는 것도 의미 있고 좋은 일이겠다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매주 월요일 저녁에 있는 연습 시간에 종종 빠지기도 했고, 한 달에 두세 번씩 있는 공연에는 거의 서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단원들과도 친밀하게 사귀지를 못했고 일체감이 없었다. 계속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아니다 싶었고 다른 단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올해 들어와서는 연습과 공연에 적극적으로 참석하기 시작했다. 공연을 앞두고 열리는 리허설, 대구, 청주 등 지방 공연을 위해 오고 가는 버스 여행, 그리고 6월에 있었던 1박 2일 제주도 공연을 통해 단원들과 많이 가까워지면서 연습 시간과 공연 시간도 더 즐거워졌다.
단원들과 가까워지는 만큼 공연에서 느끼는 일체감과 감동도 더 커졌다. 나는 이번 기획 공연 2부에서 부른 ‘종이연’이 특히 많이 와닿았다.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외로운 사람들이 지금은 보여
그늘진 사람들이 모두 다 보여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 흘리는 세상을 만들게
내 품에 머물렀던 기억을 모아
별처럼 촘촘했던 추억을 모아
별이 뜨고 지는 길목에 밤마다 모여서 노래할게
세상이 조금은 더 울 수 있도록
울어서 조금은 더 착해지도록
종이연 하늘 높이 날리며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해
다른 곡들에 비해 베이스의 음정 리듬이 쉽고 가사도 쉽게 외워져서 좋다. 그러나 감정이 무디고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나에게는 사실 소화하기 쉽지 않은 노래긴 마찬가지다. 외로운 사람들 그늘진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고, 작은 일은커녕 큰일에도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합창단에서 함께 노래하고 활동하면서 조금씩 외로운 사람들 그늘진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이태원, 오송, 대구지하철 참사 등 우는 사람들 가까이 설 수 있었다. 이번 공연을 통해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을 흘리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나도 아주 조그만 힘을 보탰다. 공연을 본 가족과 교회 사람들 그리고 친구들도 하나같이 노래 너무 잘했다며 감동과 칭찬으로 숙과 나를 축하해 주었다.
몇몇 곡들은 가사에 몰입하다 보면 울컥해서 부르기 어려워지는 순간이 있다. 솔로가 아니라 합창이라서 참 좋다. 내가 좀 못해도 표가 잘 나지 않으니까. 이번 공연을 계기로 합창단에서 활동하는 이유가 뚜렷해졌다. 지금부터는 세상이 조금은 더 울 수 있도록, 울어서 조금은 더 착해지도록 나도 종이연을 날리는 마음으로 계속 노래하고 싶다. 아니 내가 조금은 더 울 수 있도록, 내가 울어서 내가 조금은 더 착해지도록 계속 노래를 부를 것이다. 다른 합창단이 아니라 416 합창단이라 품을 수 있는 소망이다. / 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