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식 3일 차. 새 죽을 만들었다. 무 배추에 된장국물을 좀 섞어 현미밥을 넣어 끓였다. 검정콩, 들깨, 잣을 조금씩만 섞어 믹서에 갈았다. 죽도 씹어 먹지만 더 곤죽으로 먹고자. 점심엔 비트와 단감 홍시 1개와 곁들여 햇볕 드는 내 책상에서 나 홀로. 저녁은 비트와 바나나 반개, 그리고 백김치 곁들여 가족과 함께 먹었다. 물론 식구들은 자기네 밥을 챙겨 먹었다. 매 끼니 50분씩 걸려 천천히 씹어 먹었다. 뱃속은 계속 편했다.
저녁 식후 보호식 후 첫 똥을 눴다. 아직 무르고 가는 똥이었다. 물 내릴 때 미련 없이 풀어져 가루가 되는 게 보였다.
보호식 4일 차. 아침에 똥을 눴다. 아싸~~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되직해졌다. 그럼에도 물 내릴 땐 역시 풀어지는 게 보였다. 아침엔 효소물을 마시고 몇 시간 있다간 사과 반 개를 씹어 즙만 먹고 뱉어냈다. 오전 공복을 충분히 즐기며 소화 부담은 몸에 주지 않고 먹고 싶어서였다. 속 편하고 가뿐했다.
점심으로 어제 먹은 배추무현미죽에 대봉감 홍시 1개, 배춧잎 작은 거 1, 무나물 조금, 당근 세 조각, 쌈장에 살짝 섞은 호박씨 조금 먹었다. 한 끼 분량 남은 건 냉동실에 넣었다. 저녁엔 차조와 현미 무른밥에 밤, 무, 표고 가루를 섞어 죽으로 끓였다. 이번엔 믹서에 갈지 않기로 했다. 저녁엔 바나나 반 개와 백김치만 곁들여 가볍게 먹었다. 매끼 50분간 꼭꼭 씹어 먹었다. 속이 편하고 허기지지 않는 하루였다.
보호식 5일 차. 역시 아침에 변의를 느끼고 자연스럽게 똥눴다. 단식 후 변비는 내게 일어나지 않은 거다. 아침은 역시 효소물만 마셨다. 어제처럼 점심 전에 사과 반 개 씹어 즙만 삼켰다. 점심엔 차조 현미죽에 바나나 1/2, 백김치 조금, 고수와 호박씨 쌈장 조금 먹었다. 고수를 생채소로 씹어먹는 맛, 너~~무 좋다. 저녁엔 죽량은 조금 줄이되 삶은 물고구마 한 조각 더했다. 맑은 콩나물 뭇국에 단감 홍시 1, 비트 몇 조각 곁들였다.
보호식 6일 차. 아침에 똥을 눴다. 점점 물에 덜 풀어지는 덩이로 쑥 눴다. 대변 후 아침 체중은 44.2킬로. 단식 2주 마지막 아침에 44.7이었으니 보호식 기간에도 조금 줄어드는 거다. 이 정도는 사실 옷 무게에 따라 화장실 여부에 따라왔다 갔다, 큰 차이는 아니다. 잠 잘 자고 속 편하고 몸 가볍다. 매일 변함없이 밖으로 나가 햇볕 쬐며 1만 2천 보 이상씩 걸었다. 마스크 안 쓰고 걷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식사량은 좀 늘려 봤다. 아침엔 효소 물 마시고 한 시간 후엔 사과 한 알 씹어 즙만 삼켰다. 점심엔 다시 차조 현미죽을 밤과 표고 가루 섞어 끓였다. 백김치, 비트, 당근, 고수, 호박씨 쌈장, 그리고 생 김도 몇 조각 먹었다. 고수 잎과 쌈장 묻은 호박씨를 김에 싸 먹는 맛을 아는가? 곤죽이 되게 씹어 50분간 먹었다. 저녁엔 콩나물 뭇국에 배춧잎 2, 고수와 호박씨에 김, 그리고 작은 바나나를 한 개 다 먹었다.
보호식 7일 차 아침이다. 오늘 아침엔 아직 똥 신호가 없다. 앗! 4일 연속 잘 눴는데 왜? 혹시? 도둑은 제발이 저리다. 이 순간 어제 하루를 돌아보며 이실직고하지 않을 수 없다. 저 깔끔하고 어여쁜 보호식 사진엔 드러나지 않은 숨은 이야기가 있다는.
어제 오후 딸과 함께 시내에 나갔다. 알라딘도 가고 다이어리도 살 겸, 한 달 넘게 안 나가 본 시내를 쏘다녔다. 그야말로 내가 그동안 자연치유 겨울여행이다 뭐다 해서 한 달 이상 자가격리 중이긴 했나 보다. 세상이 그렇게 신기한 게 많고 먹고 싶은 게 많을 줄이야! 우린 평소에도 쏘다니며 걷고 요것조것 구경하고 맛보는 걸 즐기는 모녀 아닌가. 참을 수 없는 유혹의 향연이었다.
할인매장을 둘러볼 때였다. 코로나 때문에 시식코너가 일절 없어진 걸 볼 수 있었다. 내심 섭섭했다. 이 기회에 그동안 못 먹어 본 거 맛보는 일탈을 즐기려 했는데. 어쩜 눈 씻고 봐도 없어서 구경만 할 수밖에. 그래도 내 오감이 살아나며 요것조것 맛보는 상상을 하니 마음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아~~ 내가 단식과 보호식에 최적화된 사람인 줄 알았더니 착각이었다. 이거야말로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와 진짜.... 휜 이..... " 어라? 이상한 한 음절이 입 밖에 나가 버렸네. 딸이 무슨 말이냐 되물었다.
"뭐라고 엄마? 뭐라 그랬지?"
"응..... 휜이 누둥그래진다!라는 말이었어. 너무 눈이 휘둥그레지잖아. 그런데 내 입에선 휜이 누둥그래진다, 그렇게 나와 버렸어~~" 우리는 그 자리에서 빵 터져 웃느라 자리에 구를 뻔했다.
눈이 휘둥그래지긴 했나 보다. 얼마나 구경스럽고 먹고 싶었으면 휜이 누둥그래지겠냐.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뭐라도 밖에 나온 김에 거리 음식 한 입이라도 맛을 봐야 만족할 거 같았다.
드디어 포장마차 발견! 우리는 붕어빵을 네 개 사서 두 개씩 나눠 먹었다. 나는 꼭꼭 씹어 곤죽을 만들어야 해, 혼자 되뇌며, 기어이 두 개를 다 먹어치웠다. 그러고도 모자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둣집 앞에 멈춰 섰다.
"딸! 어제 왕만두 이거 먹고 싶다 그랬잖아 참! 사줄게. 엄마도 맛볼 거야."
말릴 틈도 없이 방금 쪄서 따끈따끈한 두 개를 샀다. 그리고 나는 한 조각 떼서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속엔 고기도 섞여 있었지만 까이꺼! 한 입 요 정도야. 그렇게 폭신하고 쫄깃한 만두와 만두소 식감을 음미했다. 딱 두 입 후에 그러나 딸에게 돌려줬다. 그제야 양심이 기능했을까. 아~~ 일탈의 즐거움이여!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저녁에 딸은 밥통에 넣어 뒀던 만두 한 개에 김치를 얹어 먹었다. 붉은 김장김치와 만두가 내 입에 군침을 돌게 했다.
"아~~ 나도 그렇게 한 입 먹고 말 거야~~"
만두 한 조각에 붉은 김치 한 조각 얹어 입에 넣었다. 쥐기네! 천상의 맛이었다. 씹고 씹었다. 입안 가득 김치 맛이 목구멍을 자극하며 삼키라 삼키라 유혹했다. 그러나 뱉어냈다. 아직 아쉬워 두 번 더 김치만 씹고 삼키지 않고 버리는 기행을 저질렀다. 매운 김치의 유혹, 정말 강렬했다. 작은 조각은 결국 삼키기도 했다.
그래서 설마 오늘 아침 똥이 아직 안 마려운가? 보호식 기간이란 이런 거다. 아기 몸처럼 다룰 일이다. 소식하며 잘 나오던 똥 아닌가. 과식은 변비의 원인이 되는 게 분명하니까. 그 정도 일탈했다고 아침 똥 신호가 없어? 야~~ 내 몸아! 너무 청정지역 고집하는 거 아냐? 좀 있다 쑥~~ 신호할 거지?
살짝 투정해 보지만, 솔직하자. 아직 아무 탈 없다고, 보호식 한 주 잘 먹고 잘 살았다고, 막 나가면, 한 방에 훅! 가는 수가 있다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