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벌 김화숙 Dec 02. 2024

방한화, 보온병, 지팡이 그리고 날개에 대한 단상

폭설과 추위 속에도 엄마는 어디에나 보이고 또 어디에도 없다


날개에 관한 단상

            양선희


 결혼비행을 끝내고 죽은 수캐미들을 쓰레받기에 쓸어 담는다. 몸통 따로 날개 따로 떨어져 있다. 몸의 꿈과 날개의 꿈을 달리 품고 저승으로 간 것일까?


  결혼한 여왕개미는 제일 먼저 제 몸에서 두 날개를 떼어낸다. 정착해 일가(一家)를 이루려면 더 이상 높이 더 높이 비상을 꿈꾸어서는 안 되는 법(法)일까?


  일생(一生)을, 양식을 모으는 육아에 힘쓰는 집을 지키는 궂은일을 도맡는 일개미는, 날개가 없다. 날개는 생업(生業)을 방해해서? 날개는 외계(外界)와 간통해서?




사랑하는 엄마!

엄마 떠난 지 32일째 하루가 저물었어. 참 야속한 세월이다 그쟈? "고장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이 세월은 고장도 없네~~" 딱 그 유행가 가사 그대로 세월이 가네 엄마. 언젠가는 엄마를 잊어버린 것처럼, 엄마 없는 세상이 아무렇지도 않은 날이 올까? 세상은 잘도 돌아가는데 울 엄마만 없는 세상이 정상이야?


정상 아닌 세상이 어디 요즘만이었겠어 엄마. 시를 읽었어. 날개에 대한 단상, 엄마 이야기이자 이 땅의 여성들의 삶으로 읽혀서 잠시 울컥하고 화가 나려 했어. 참 재주 많고 총기 있고 열정 있는 울 엄마. 그러나 일찍이 한 번도 날개를 펴 본 적도 없는 엄마. 아니 너무 일찍이 날개를 떼고 주저앉혀진 엄마. 아내요 며느리요 엄마로, 줄줄이 자식 낳고 남편과 어른들 뒷바라지로, 날개를 잊어야 살 수 있었던 엄마.


비상을 꿈꾸지 않도록 길러진 야속한 세월이었어. 수캐미도 일개미도 딱하긴 마찬가지였지? 아무리 생각해도 야속해. 날개와 삶을 바꿔야 했다니, 아, 엄마, 나도 날개를 떼는 법부터 배웠던 거 같지? 그러나 엄마 딸은 날개가 있다는 걸 잊지 않았지? 날개를 퍼덕이며 날기를 연습했어. 날아도 살 수 있었어 엄마.


엄마에게서 날개를 떼고 주저앉힌 야속한 세월이 정말 미워. 매일 엄마를 생각하고 엄마랑 함께 다닐수록 한 인간으로서 김성교란 사람을 생각해. 그러다 보면 엄마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선가 날고 있는 엄마를 그려 보게 돼. 엄만 여기엔 없는 게 맞는데 또 늘 어디에나 있어.


어제 이른 아침 딸이랑 서울에서 서촌을 걷고 인왕산 자락에도 올랐어. 모녀가 일요일마다 새벽에 나가서 서울 유랑으로 운동하잖아. 그 이른 일요일 아침 8시도 안 된 시각 서촌에 문을 연 신발 가게를 만났어. 노인이 신기 좋은 편한 신발들이 많이 보였어. 허름한 시골 풍의 신발가게에 나는 왜 울컥했을까? 엄마한테 사 주면 좋을 신발들 때문이었겠지. 걸음을 멈춰 주인과 인사도 하고 신발 구경을 했지.


돌아오는 길에 밀양 엄마를 위해 털 달린 방한화 켤레 샀어. 만져 보고 엎어 보고 신어 보았어. 신고 벗기 편한지 따뜻한지, 가벼운지, 바닥이 두꺼워 걷기 불편하진 않은지, 미끄럽지 않은지. 운동화처럼 신고 벗기 편해 보이는 것들은 의외로 뒤축이 쉽게 꺾이고 힘이 없었어. 발등 덮이고 지퍼가 그렇지 않더라.


지퍼 일일이 잠그지 않아도 잠깐 신는 지장 없겠다 싶어서 그걸로 샀어. 새삼 실감했어. 아~ 우리 엄마는 세상에 없구나. 엄마 주겠다고 신을 사진 않았거든. 대신 시엄마만 남았구나 느꼈어. 두 엄마 돌봄으로 몸이 몇 개 되면 좋겠다 생각될 때 있었건만, 울엄마는 이제 없고 시엄마만 계시구나.


시엄마는 오늘 새 털신을 신고 주간보호센터 다녀오셨어. 예쁘고 따뜻하게 신고 가시니 내 맘이 편하더라 엄마. 아, 엄마 신발 켤레 챙겨두지 않은 아쉬워. 엄마 발이 나보다 작아서 물려받아 신을 수가 없더라구. 시엄마를 보며, 시엄마 신발을 챙기며 엄마를 생각했어. 엄마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어.  




사랑하는 엄마!

엄마가 쓰던 예쁜 지팡이도 내가 챙겨다 시엄마 드린 거 알아? 가볍고 높이 조절되고 예쁘고 참 좋은 지팡이잖아. 시엄마는 허리가 굽었음에도 밖에 나갈 땐 지팡이를 안 하시려 하더라구. 노인용 지팡이 드렸는데 별로 안 좋아하셨어. 근데 엄마 지팡이는 맘에 드시나 봐. 실내에서 왔다 갔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셔.


시골집안에서 이 예쁜 지팡이 짚고 다니던 엄마 모습이 눈에 선해. 그토록 짱짱하던 엄마가 지팡이를 짚어야 했을 때, 참 세월이 야속하더라. 심장이 안 좋고 신장까지 안 좋으니 몸에 좋은 피가 팍팍 공급되기 어려웠지. 지팡이 없인 언제 갑자기 픽 쓰러질지 알 수 없는 엄마의 몸. 고위험군이란 사실을 알고 엄만 지팡이를 짚었지. 입원할 때도 지팡이는 따라갔고 마지막 대구까지 따라갔다가 유품으로 남았지.


몇 년 전에 내가 엄마한테 사준 스텐 보온병도 엄마집 유품 정리하고 내가 챙겨 와 쓰고 있어. 내가 평소 쓰던 거랑 교대로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고 있지. 보온병으로 물 마실 때마다 엄마가 보여. 엄마 손이 닿고 엄마를 따뜻하게 했던 물건이 고마워. 그런데 어디에도 엄마는 없어.


사랑하는 엄마, 좋은 그 나라에선 지팡이 없이 날개로 날아다니겠지? 춥지 않고 외롭지 않고 힘들지 않게 날고 있을 거야. 엄마, 시엄마 돌아가시면 내가 나중에 엄마 지팡이 또 간직할래. 내가 이어서 쓰게 될까? 지금은 얘기 같지만 그리 것도 아냐 엄마. 60대에도 다리 불편하면 지팡이 짚는 사람들 있잖아. 엄마 딸이 엄마가 쓰던 지팡이를 쓸 때면 엄마 곁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는 뜻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