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은 기본, 이제는 이기는 싸움이다

헝거리 복서, 어쩌면 배고픈 내 성정이 복싱을 하게 했는지도

by 꿀벌 김화숙

"오~ 잘했어요. 좋아요!"

"와, 한 30년만 일찍 오지,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복싱 체육관 출석 겨우 3일 차, 관장의 칭찬이 과하다. 러닝머신과 줄넘기로 워밍업을 한 후 어제 배운 왼손 쨉을 연습하고 오른주먹 스트레이트를 배울 때였다. 거울 속 내 동작은 아무리 봐도 춤추는 허수아비를 닮았는데, 관장은 연신 "굿!"을 외친다. 나도 질세라 화답한다.


"와! 30년 전이요? 과장이 심하지만, 감사합니다!"


상상 속에서 훅 30년 전으로 날아간다. 그때 나는 어땠나. TV에 누군가 얻어터지는 장면이 나오면 한쪽 눈을 가리던 쫄보였다. 두드려 패고 맞으며 승부를 가리는 게 싫었다. 싸움 따위 없는 세상에 살고 싶었고, 싸움할 줄 몰라도 잘 살 줄 알던 시절이었다. 싸움 자체를 두려워하고 피하던 30대엔 상상에도 배울 맘 없던 격투기였다. 그래서 인정한다. 관장의 말처럼 딱 30년 늦게, 이제라도 배우러 온 나, 복싱하기 딱 좋은 60대다.


"잘하시는 거 맞아요. 아차, 30년 전에 오셨으면 제가 여기 없었겠네요." 관장의 너스레에 나도 헥헥대며 또 웃는다. 다시 주먹을 뻗는다. 쨉, 쨉. 내 펀치를 미트로 받으며 관장이 한번씩 칭찬을 날린다. "이번에 제대로 꽂혔어요. 힘이 느껴지는데요?" 내가 놓칠세라 그 말을 낚아챈다. "네, 싸움 잘하고 싶어요. 펀치 제대로 날려보고 싶어요!“


쨉은 복싱에서 가장 많이 쓰는 기본 중의 기본 동작이다. 왼발은 앞으로 오른 다리는 살짝 오른쪽 뒤로, 상체가 살짝 앞으로 굽고 오른쪽으로 향한 상태로 양팔 가드를 올린다. 양 주먹은 얼굴 쪽을, 팔꿈치로는 복부를 막는 게 기본 가드다. 그 상태로 두 다리 자세를 유지하며 동시에 폴짝폴짝 앞으로 뒤로 뛰며 움직인다. 앞으로 갈 때 숨을 내쉬며 왼 주먹을 앞으로 뻗어 잽싸게 치고 돌아오는 게 쨉!


가드를 유지하는 것도 다리 자세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폴짝대는 것도 다 어렵다. 오른손잡이라 왼주먹을 먼저 내뻗는 게 영 낯설고 어색하다. 몸도 맘도 감을 모르니 몸이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고 흐물댄다. 쨉이 아니라 막춤이라 해도 되겠다. 쨉이 돼야 오른 주먹을 스트레이트로 날려 원투가 완성인데, 에라이 어렵다, 그러나 재미있다.


개인 지도 후 홀로 셰도우 복싱을 한다. 거울 속의 나를 마주 보며 내 눈을 똑바로 보며 홀로 싸우는 연습이다. 볼수록 내 자세가 허접하다. 하고 또 하고 고쳐보고 폴짝댄다. 다음엔 벽에 붙은 왕초보 용 까만 샌드백 앞에서 연습한다. 샌드백 한가운데가 낡고 헤져 충전재가 삐져나와 있었다. 쨉도 스트레이트도 그 터진 부분은 가능한 한 피해서 치고 있을 때였다. 관장이 다가와 터진 부분에 손을 대며 말했다.


"이게 바로 '헝그리 복서(Hungry Boxer)' 샌드백입니다.“


헝그리 복서. 참 오랜만에 듣는 단어가 툭 내 맘을 건드렸다. 샌드백은 얼마나 얻어터졌을까. 찢어지고 너덜너덜한 게 내 속을 닮아 보였다. 나도 참 많이 처맞고 살았다. 상처 받고 찢긴 맘, 침묵으로 견디던 몸, 이제 이기는 싸움에 배가 고픈 날 닮아 보였다.


겨우 복싱 체육관 3일 차에 헝그리 복서라니, 좀 과한가? 중년 여자 헝그리 복서가 떠오르진 않았다. 가난해서 라면 먹는 헝그리 복서만 있더냐. 영화 <백 엔의 사랑>의 이치코와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매기가 복싱 체육관을 찾은 이유가 그랬다. 밥을 굶는 가난이 아니라, 더 이상 내려갈 데 없는 바닥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배고픔이었다. 30대인 두 여자는 '이기는 싸움'에 굶주려 있었다. 두들겨 맞기만 하는 인생, 비루한 현실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유효타를 날리고 싶은, 여자 헝그리 복서들이 아니었을까.


나에게도 그런 배고픔이 있다. 침묵의 미소 뒤에 숨어 살던 비겁함. 말로만 분노하고 다시 조용히 기다릴 것인가? 나를 함부로 하던 세상과 제대로 맞짱 뜬 적이 있던가? 싸움을 하자면 이겨야 하는 거다. 나는 이기는 싸움에 배가 고프다. 말로만 싸우는 소란함은 이제 지겹다. 내 삶을 바꾸지 못하는 분노가 무슨 효용이며, 이불 쓰고 하는 만세가 다 무슨 소용인가. 어릴적 싸우는 부모를 보며 질문하지 않았던가. 주구장창 싸우는데 왜 결론도 변화도 없을까? 평생 저렇게 살 거면 뭐하러 결혼하는지, 어린 소녀는 질문했더랬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돌고 돌아 60대에야 깨달았다. 이기는 싸움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여자라고 고분고분 순종하라고 배우고 가르치기까지 한 내가 이기는 싸움을 논하다니, 부끄럽다. 몸에 밴 습관이 아직도 내 발목을 잡는다는 거 안다. 그래서 미국의 여성 운동가 수전 B. 앤서니는 말했을 것이다. "반항할 줄 아는 여자아이로 키워라." 반항할 줄 모르는 여자아이로 커서 순종적인 ‘여종’으로 훈련되었던 나를 잊지 말자. 내 딸도 그렇게 키울 뻔했다. 그러나 12년 전 암이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나를 길들인 모든 것에 반항할 수밖에 없었다. 차츰 싸울 줄 아는 여자로 변해가는 내가 고맙고 자랑스럽다. 그래서 이 문장을 살짝 수정하고 싶다. “반항은 기본, 싸움할 줄 아는 여자아이로 키워라.” 이 가부장적인 세상에서 여자가 반항심 없으면 노예 말고 뭐가 될까. 그러나 반항은 시작일 뿐이다. 제대로 싸움할 줄 알아야, 운명을 거슬러 인간으로 살 수 있다. "이건 아니지"라고 대든다고 세상이 호락호락 받아주던가? 제대로 펀치를 날려, 운명을 뒤집고 새 길을 만드는 싸움을 해야 하는 이유다.


나는 배가 고프다. 이기는 싸움에 목이 마르다. 64년을 살아온 중년, 비루한 순간을 처맞으며 견뎌왔다. 그러나 나를 얕잡아 보는 세상에 결코 무릎 꿇지 않았고 도망하지도 않았다. 이젠 버티고 반항하는 것을 넘어 이기는 싸움을 할 때다. 착한 여자는 진작에 그만두었으니, 이제는 '싸움할 줄 아는 여자', '기어이 싸워 이기는 여자'가 되려 한다.


헝그리 복서 화숙은 가드를 바짝 올리고 움직인다. 땀이 쏟아지지만, 눈빛만은 형형하다. 오늘도 막다른 현실의 턱 밑에 꽂아 넣을 묵직한 한 방을 연마한다.


쨉! 쨉! 원투! 쨉! 쨉! 원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