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서 윤슬로 말하는 강의 소리를 아프게 듣고 있다
260108 목 -1도/-9도
강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이인성의 소설 제목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에서 차용.
시험 중간 휴식일이라 딸과 함께 다시 한강에 다녀왔다. 중랑천과 합류하는 지점의 한강은 넓고 깊고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할말 많은 내 맘처럼 쉼없이 흐르며 말하고, 또 말하게 하는 강과의 만남이었다. .
성수동에서 송정둑길을 올라 서쪽으로 걷다가 살곶이다리를 건너 중랑천공원을 걸었다. 탐조객이 되어 겨울강의 주인공 철새들을 구경하며 쉬엄쉬엄 중랑천교를 건너 전망대 머물다 왔다. 단단히 입은 등에 햇볕 기운이 따스해서 땀을 느끼며 걸었다. 햇빛과 강바람과 강물이 만보기에 16,195보로 남았다.
빨간색 전망대에서 흐르는 강물을 오래 오래 바라볼 수 있었다. 겨울 햇살 아래 윤슬이 조곤조곤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성수대교와 동호대교 사이 한강은 넓고 깊게, 서쪽으로 서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흐르다 만나고 또 흘러가고, 흘러야 사는 강. 소용돌이로도 흐르고 깊이 후벼파면서도 흘러야 했을 것이다.
윤슬로 반짝이며 자꾸만 내게 말하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흘러야 할 것들을 강에게 말하라고, 흘려보내고 너도 흘러가라고. 올해 내 삶의 주제어가 '위풍당당' 아니냐. 머물지 않게 흘려보내며 살라고 했다. 가슴에 쌓아둔 것들, 두려워서 떨며 묻어두려는 것들을 드러내고 고백하고 흘러보내자고 했다.
딸과의 수다가 강물처럼 잘 흘러가니 내 가슴엔 큰아들이 걸렸다. 그 아이와도 이렇게 서로에게 흘러갈 수 있다면, 마음이 이어지는 느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미국에서 잠시 들어온 아들은 이번 일요일 저녁에 며느리네와 양가 가족 식사 자리에서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양가가 2년만에 함께하는 거 좋고말고다. 그럼에도 작은 아쉬움, 우리 모자 단둘만의 시간, 모자만의 대화는 희미한 옛 이야기가 된 걸까.
품안의 자식이라고 했던가. 결혼해 독립한 아들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던가. 사람들이 하는 3류 우스개인 줄만 알았는데,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다. 삶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첫 아이라고 나름 최선으로 키운 자식인데, 어느새 '옛 사랑' 타령이라니, 야속하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지도 모른다. 군대 전까지만 해도 엄마와 데이트 시간 내던 자식이었다,고 내멋대로 생각한다. 내가 페미니즘을 안 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았으면 어떤 모자관계로 살고 있을까? 가끔 상상하지만, 역사에 가정이 무슨 의미겠나, 고개를 젓는다. 아들은 페미니스트 엄마가 낯설었지만 나는 이 자식과 페미니즘으로 소통하고 싶은 엄마였다. 서로 투닥이던 것도 과거, 결혼한 아들이 되어 흘러가고 있다.
독립한 성인 자식의 부모노릇도 처음이라, 나도 계속 배우는 중이다. 애면글면 내가 책임지려 하지 않게 된지도 오래다. 1년에 한 두번 보는 모자가 머리 싸매고 토론하랴.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니 강물이 흘러가는 대로 둬야 한다. 젊은이들의 보수화가 전세계적인 흐름이라는데, 내 자식이라고 특별하길 바라면 너무 욕심이리라. 이제 책임은 자식들에게로 넘어갔다. 나는 자식바라기도 아들아들 노래도 강물에 흘려보냈다.
자식이 내 뜻대로 안 되는가? 차라리 강에게 토로하고 윤슬에게 위로받으라 한다.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흐르는 강이 하는 말을 아프게 듣고 서 있었다. 아직도 흐르는 강물의 속삭임이 들린다. 윤슬이 반짝이며 내 마음을 어루만지며 말한다. 지금은 흘러보내고, 저만치서 기다릴 때라고. 그래, 애면글면아, 두려움아, 흘러 가거라.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위풍당당 걸어가기로 했잖아!
여성 시 한 편 더 읽는다.
강
문정희
어머니가 죽자 성욕이 살아났다
불쌍한 어머니! 울고 울고
태양 아래 섰다
태어난 날부터 나를 핥던 짐승의 혀가 사라진 자리
냉기가 오소소 자리 잡았다
드디어 딸을 벗어버렸다!
고려야 조선아 누대의 여자들아, 식민지들아
죄 없이 죄 많은 수인들아, 잘 가거라
신성을 넘어 독성처럼 질긴 거미줄에 얽혀
눈도 귀도 없이 늪에 사는 물귀신들아
끝없이 간섭하던 기도 속의
현모야, 양처야, 정숙아, 잘 가거라
자신을 통째로 죽인 희생을 채찍으로
우리를 제압하던 당신을 배반할 수 없어
물 밑에서 숨 쉬던 모반과 죄책감까지
브래지어 풀듯이 풀어버렸다
어머니 장례 날, 여자와 잠을 자고 해변을 걷는 사내*여
말하라. 이것이 햇살인가 허공인가
나는 허공의 자유, 먼지의 고독이다
불쌍한 어머니, 그녀가 죽자 성욕이 살아났다
나는 다시 어머니를 낳을 것이다
*알베르 까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