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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Jan 11. 2021

그렇다면 내가 책을 써야겠군!

5년 후 여성 암 생존기를 내겠노라 맘먹다


내 몸을 내가 접수했으니 서점에 가 보기로 했다. 


퇴원하던 날 병원 서점에서 <간암 완치 설명서> 딸랑 한 권 사들고 나온 후 5개월 만이었다. 책 숲을 걷다 보면 무슨 길이 보이겠지, 가볍게 마음먹었다. 연말의 책방엔 사람들이 많았다.


건강이니 암이니, 뒤적이고 뒤적이며 구경이나 했다. 세계적인 명의 이름이나 알자. 암수술, 병원 표준치료, 간암, 가족력 B형 간염 보균자, 자연치유, 암 생존자, 체험담...... 아는 게 없으니 이거다 하는 책을 고르기도 쉽지 않았다. 짠! 팝업으로 뜨면 좋으련만. 아하, 기왕이면 간염과 간암에서 자연치유로 나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는 읽고 싶었다


'설마, 남자들만 암에서 생존한 거야?'


체험기 류의 책을 뒤적이다가 나는 낯선 질문을 하게 됐다. 남자들 책은 있는데  여성이 쓴 암 이야기가 통 보이지 않았다. 남자만 암 걸렸다 나았나? 암에서 생존한 여성의 글을 나만 읽고 싶은가?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직원에게 문의해도 찾기 힘들었다. 그날 이후 도서관을 뒤지고 인터넷도 검색했다. 아줌마가 쓴 암 생존기 찾아 삼만 리. 길치는 용감하다. 나는 충동적으로 또 하나의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책을 써야겠군! 




내가 읽고 만나 본 남성이 쓴 암 생존기 몇 권을 먼저 소개한다.


<암과의 동행 5년>(홍헌표, 에디터, 2014)

그때 따끈따끈 신간이었다. 저자는 대장암 수술 후 항암 4회만 받고 병원이 가르쳐주지 않는 투병의 길을 걸었다. 2년 6개월간 휴직하고, 식이요법과 운동, 명상, 웃음 등으로 암을 극복하고 2011년 복직했다. ‘암 환자로 행복하게 살기’ 투병기를 연재하고 '웃음보따리' 동호회를 운영했다. 2013년 암 완치 판정(관해)을 받고 이 책을 냈다. 나는 후에 저자가 운영하는 웃음보따리에 참여하며 그와 함께 웃고 놀 수 있었다. 

관해(寬解): 암 치료에서 증상이 완화되거나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부분 관해'와 '완전 관해'로 나뉜다. 부분 관해는 ‘암이 부분적으로 줄어든 상태, 적어도 처음 진단 때와 비교해 30% 이상 줄어든 상태다. 완전 관해는 ‘암이 있다는 증거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완전관해 판정 기준을 '암 진단 후 5년'으로 잡는 이유는 통계적으로 대부분 암은 수술 후 5년 이내에 재발하기 때문이다. 보통 '완치'라는 표현은 '완전 관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완전 관해'가 다시는 암이 안 생긴다는 보장은 아니다. (국립암센터)


<나는 살기 위해 자연식한다> (송학운, 동녘라이프, 2009)

송학운 씨는 1992년 9월, 직장암으로 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 대수술 후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산골로 들어가 자연식을 했다. 1년 만에 건강을 회복한 그의 곁에는 남편 수발하며 자연식 전문가가 된 아내 김옥경 씨가 있었다. 30여 년 건강하게 살며 경북 영덕군 칠보산 '자연생활 교육원'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2015년 1월 그곳에 9박 10일 머물며 이 멋진 부부와 함께 자연치유와 자연식에 입문할 수 있었다. 


<암, 투병하면 죽고 치병하면 산다>(신갈렙, 전나무숲, 2012)

신갈렙 씨는 2006년 우연히 암 종양(지방육종)을 발견하고 수술을 했다. 24회의 고강도 방사선 치료 후 '졸업사진'을 찍었더니 암이 다발성으로 전이되어 말기 상태가 되었다. 그는 병원을 포기하고 자기 몸을 실험실 삼아 현대의학, 한의학, 대체의학, 자연의학 등 여러 치료법을 실천해 암을 극복했다. 나는 2015년 2월 그가 운영하는 제천 요양 시설에서 한 달 묵으며 자연치유를 실천할 수 있었다(지금은 그곳에 없다). 




안타깝게도 국내 여성 암 생존기는 없. 었. 다. 


<3그램>은 <며느라기>의 수신지 작가의 난소암 진단과 수술 경험을 그린 얇은 만화책이었다. 강순남의 <밥상이 썩었다 당신의 몸이 썩고 있다>는 치유 경험보단 자연식 요양시설 이야기였다. 국내 여성 이야기가 없으니 외국책으로 넘어갔다. 이브 앤슬러의 <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가 그나마 내가 읽고 싶은 여성 암 생존기에 가장 가까웠다. 여성의 몸, 삶, 그리고 사회를 향한 저자의 솔직한 목소리가 있었다.


<암이란다, 이런 젠장!>은 암환자의 일상을 담은 만화고 <여자가 우유를 끊어야 하는 이유>는 암 환자가 된 호주 과학자의 우유의 폐해 분석이었다. <암에 걸렸다는데, 저는 건강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는 일본의 암 상담 전문의와 유방암 환자의 공저였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는 암과의 사투 끝에 임사 체험한 여성의 이야기였다. <폐경기,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는 의사가 쓴 여성의 몸과 건강에 대한 전문서였다. 


2015년 말 국립암센터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남자보다 여자의 암 유병률이 높고 5년 생존율(전체 70.7%, 남자 62.8%, 여자 78.4%)도 여자가 훨씬 높았다. 그런데 왜 여성이 쓴 암 생존기는 없었을까? 2013년 한 언론사 조사가 말해 주고 있었다. 배우자의 간병을 받는 비율은 남자가(97%) 여자(28%) 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여성암환자의 37%는 셀프 간병. 여성암환자의 68%가 자녀양육, 집안 살림 등 주부 역할을 도맡는 것으로 나왔다. 내 합리적 의심, 아줌마들은 밥하느라 바빠 책 쓸 시간이 없었다! 


"좋아! 5년 후엔 내가 책을 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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