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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Nov 30. 2020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암수술 3개월, 내 몸이 하는 질문에 의사는 답하지 않았다


2014년 10월, 서울 A 종합병원에서 암수술 3개월 차 검사 결과를 보는 날이었다.


내가 진료실에 들어갔을 때 나를 수술한 '명의'는 컴퓨터 모니터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그가 나를 바라봐 주길 바라며 나는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다소곳이 앉아 그의 반응을 다렸다.

"검사 결과 다 좋습니다."

몇 초 후 모니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시험에 통과한 학생처럼 “감사합니다”라고 기쁘게 답했다.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좋네요. 그럼 두 달 후에 오시면 되겠습니다."    


하마터면 나는 '무슨 말씀이든 좀 더 해 주세요'라고 애걸할 뻔했다. 돌아가라는 말은 설마 아니겠지.

"뭐가 어떻게 좋은지, 항목, 수치라든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만……."

'착한' 환자는 의사 선생님 심기를 살피면서 궁금한 걸 말하고 말았다. 의사가 귀찮다는 듯, 못 박았다.

“문제없다니까요. 두 달 후에 오시면 됩니다."    


내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좋다는 말만 믿고 돌아서기엔 오늘 내가 가지고 온 질문이 너무 많았다.

"그럼, 수술 부위 제 간은 잘 자라고 있나요? MRI 영상으로 좀 설명해 주시면……."

내가 길게 말할 틈도 없이 그가 버럭으로 내 말을 잘랐다.

"아니,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합니까? 내가 다 알아서 합니다!"

그의 얼굴이 그 순간 잠깐 나를 힐끗 보는 거 같았다. 그리곤 모니터만 보며 그가 신경질적으로 구시렁거렸다. "그게 뭐라고, 왜 그렇게 궁금하다는 거야. 오늘만 벌써 몇 명이야……."  


내 귀를 의심하며 벌렁거리는 가슴으로 숨을 깊이 쉬었다. 나는 재빨리 감정노동을 했다.

'아하, 교수님, 정말 피곤한가 보군요. 오늘 아침에 벌써 십 수 명은 진료했겠죠. 비슷한 환자들에 비슷한 질문들. 시간은 쫓기고, 실적 압박에, 짜증 나는 거 이해합니다. 자꾸 묻는 환자 귀찮고 말고요…….'    


그때 내게 질문할 수 있는 '환자의 권리'가 생각난 건 아니었다. 나는 내 몸에 대해 알고 싶었을 뿐이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하나만 더 여쭐게요. 목소리가 잘 안 나와요. 목에 뭐가 걸린 것처럼 답답해요."

"수술 후 그럴 수 있습니다. 전신마취 후유증으로 성대 결절이 생길 수도 있어요."

내 심각한 질문에 그는 선심 쓰듯 빠른 답만 날렸다. 두 달 후 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진료실 밖에 나오니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 듯 방망이질했다. 나는 손을 가슴에 얹고 심호흡을 잠시 했다. 이 몸이 왜 이리도 이상하다냐. 나는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말을 아무에게나 소리쳤다.

"의무기록 사본을 떼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다음 일정을 잡고 가라고 뒤에서 내 이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무시했다. 나는 내달렸다.

의무기록 사본을 모두 떼는 거다. 7월 입원부터 검사, 수술, 수술 후의 검사, 한 달 그리고 석 달치의 모든 검사 결과와 영상 CD까지. 사본이 나오기까지 나는 가만히 앉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게 왜 궁금하냐고? 내 몸 내가 알고 싶은데 안 되는 거였나?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의사가 답하지 않으니 이건 나 스스로 공부하란 소리였다. 내 몸에 대해 질문할 수도 없는 의사에게 내가 왜 와야 하지? 날 앉혀놓고서야 내 데이터 들여다 보고 후다닥 내보내는데? 뭘 알아서 하지?…….     


내 안에 분노 같은 게 끓고 있었다. 나는 마치 심한 모욕을 당한 경우처럼 기분이 나빴다. 과연 그게 그렇게 심각한 일이냐 제발 묻지는 말라.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른다. 어떤 충동에 휩쓸려 나는 의무기록 사본을 떼기로 했고, 지금 충동적으로 결심하고 있었다.

"그래, 이 병원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거다!"    


28,000원어치 의무 기록 사본 봉투는 제법 두툼했다. 나는 두 팔로 병원 이름이 적힌 누런 대봉투를 가슴에 꼭 껴안았다. 간암 절제 수술 후 3개월 된 내 몸속이 나는 궁금했다. 의사는 내 몸에 대한 내 질문을 묵살했다. 내 몸을 그가 알아서 한다는데, 내 마음은 그건 아니라 말하고 있었다.


두근거리던 가슴이 가라앉았고 정신이 맑아지고 차분해졌다. 병원을 나서는데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안산에 도착할 때까지 버스 안에서 나는 병원에서 받은 자료를 슬쩍 살펴봤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졸지도 않고 말똥말똥 뜬눈으로 나는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환자의 권리


1. 진료받을 권리

환자는 자신의 건강보호와 증진을 위하여 적절한 보건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갖고, 성별, 나이, 종교, 신분 및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건강에 관한 권리를 침해받지 아니하며,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하지 못한다.


2. 알 권리 및 자기 결정권

환자는 담당 의사, 간호사 등으로부터 질병 상태, 치료 방법, 의학적 연구 대상 여부, 장기이식 여부, 부작용 등 예상 결과 및 진료비용에 관하여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자세히 물어볼 수 있으며, 이에 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갖는다.


3. 비밀을 보호받을 권리

환자는 진료와 관련된 신체상·건강상의 비밀과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하며, 의료인과 의료기관은 환자의 동의를 받거나 범죄 수사 등 법률에서 정한 경우 외에는 비밀을 누설·발효하지 못한다.


4. 상담, 조정을 신청할 권리

환자는 의료 서비스 관련 분쟁이 발생한 경우, 한국의료분쟁 조정중재원 등에 상담 및 조정 신청을 할 수 있다.

(A병원에서 받은 파일에서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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