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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Nov 30. 2020

"니가 아주 간이 배 밖에 나왔구나!"

계속 두려움에 끌려다닐 것인가


나는 전화에 대고 재차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적당히 얼버무리다 결국 사실대로 말해 버렸다. 내 몸을 내가 접수하기로 했다고. 병원 갈 때 됐잖냐, 언제 병원 가냐, 전화하면 반복되는 어머니의 질문 때문이었다. 순전히 나를 수술한 명의께서 나를 깨워준 덕분이다, 내가 알아서 한다, 큰소리쳐버렸다.


니가 아주 간이 배 밖에 나왔구나!
암 수술한 사람이 우째 병원을 안 간다 말이고."



어머니가 펄펄 뛰며 전화기에서 튀어나올 거 같았다. 큰아들도 간경화 간암으로 잃었는데, 둘째 딸이 간암 수술을 했으니 노모는 그럴 만했다. 어머닌 심각한데 나는 엉뚱한 지점에서 '빵 터지고' 말았다.
"하하하. 간이 배 밖에요? 맞아요! 내 간 20%는 잘려서 배 밖에 나가 버렸잖아요. 배 밖에 나간 간은 어디서 뭐 하고 있을까요? 아~~ 그 간덩이 보고 싶고 궁금해 죽겠어요 진짜."
                      

'간이 배 밖에 나온 여자'는 그날부터 내가 스스로를 부르는 '별칭'이 되었다. 겁 없는 사람은 간이 큰 사람. 무모하게 용감하면 간이 부은 사람. 한 발 더 나가 심하게 '겁때가리'가 없으면, 경상도에선 그랬다. 

"야가 야가, 간이 아주 배 밖에 나왔구나!"


간 큰 위인과는 거리가 먼 내겐 '영광스러운' 별명이었다. 알고 보면 나는 어지간히도 '고분고분한' 딸로 자랐다. 엄한 어머니는 회초리로 5남매를 다스렸다. 눈치 빠른 나는 알아서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아이였다. 어머니와 선생님과 어른들에게 칭찬 듣는 '모범생'이 중년에 간 큰 여자로 등극한 것이다. 


문제는 재발의 두려움이었다. 큰소리쳤지만 나는 내심 두려웠다. 가족력 있는 B형 간염 보균자에 간암 수술, 그다음은 '재발'이 기다릴까? 어떻게 해야 건강한 새 몸으로 살지? 지친 몸으로 퇴근할 때면 내 몸이 나는 정말 미덥지 않았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쓰러져 누워 있으면 스멀스멀 재발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곤 했다. 어느 가을 주말 나는 카페에 앉아 어디로 갈 것인가 글을 남겼다. 


언제라도 암은 재발할 수 있다는 게 내 불안의 근원이다. 이 불안은 무지할수록 커질 것이다. 열심히 살면 될까? 두려움이 늘 가까이 있음을 느낀다. 간이 배 밖에 나온 여자라 무서운 게 없다? 허풍이었다. 더는 욕심 없다 했건만, 암이란 이런 거로구나. 몸 상태가 조금만 달라도 혹시나 하는 이 맘. 이 두려움. 몸의 면역력을 높이는 생활습관 형성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쳇바퀴 일상 속에서 어떻게? 계속 두려움에 끌려 다닐 것인가. 몸이 내게 묻는 거 같다. (2014년 9월 13일 일기)         




▲ 내가 독학한 내 의무기록 사본 일부. 5년 전 그날 나는 내가 내 몸의 의사가 되어 암에서 생존하겠노라 결심해 버렸다.




2014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수술 후의 내 몸은 계속 정상이 아니었다. 삭신과 뼈마디가 다 쑤시고 몸이 천근만근인데 그날 따라 속도 거북했다. 근무를 도저히 할 수 없을 거 같아 조퇴를 결정했다. 금방이라도 암이 온몸에 퍼질 것 같은 두려움과 불안이 나를 눌러 왔다. 집에 와 쓰러졌는데 잠은 들지 않았다. 


내 몸속 형편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도대체 내 간은 어떤 상태인지, 왜 이렇게 나는 힘을 못쓰는지. 누구 없소? 정말 알고 싶었다. 누워서 뒤척이는데 책장 한 구석에 꽂힌 누런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석 달째 먼지를 쓰고 있는 의무기록 사본이었다. 그걸 떼던 날의 감정이 훅 생각났다.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그랬건만 손도 댄 적 없이 꽂혀있는 봉투였다. 나는 온몸에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양 벌떡 일어났다. 누런 봉투에서 의무기록 사본을 꺼내 책상에 펼쳤다. 돋보기를 끼고 의자를 당겨 앉았다.


진단검사의학과 최종 보고서, 핵의학 영상검사 결과지, 영상의학과 판독 결과지, 소화기병 검사실 검사 보고서, 병리과 검사 보고서
……. 


깨알 같은 검사 수치와 낯선 용어들에 눈이 어지러웠다. 도대체 왜 영어라야 하는가. 한글은 보조적으로 쓰인 문서였다. 서양의학을 따라가기 바쁜 우리 현실이겠지. 보통 사람들은 모르게 하려는 음모인가. 짜증도 났지만, 나는 어느새 공부하고 있었다. 오기였을까, 28쪽의 낯선 보고서를 처음으로 주욱 살펴보았다.


암수술 5개월이 지나서 처음으로 내 몸 기록을 읽었다. 모르는 말 투성이었지만 일단 훑었다. 내 몸속을 직접 들여다 보는 기분이랄까, 잃어버린 나를 찾아간달까. 비밀의 숲에서 새 길을 찾는 모험이랄까, 설렘이랄까. 죽을 것 같던 몸 상태는 금세 잊어버렸다. 그 심란함과 무기력과 두려움도 희미해지고 있었다. 나는 인터넷을 열고 영어 사전도 펼쳤다. 아마도 그때 내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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