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시가 고픈 날 읽는 최승자 시집『이 시대의 사랑』

by 꿀벌 김화숙

260204. 수. 맑고흐리고포근. 7/-1


마음에 시가 고픈 날엔 최승자를 꺼내 읽는다.


나보다 딱 10년 앞서 태어난 최승자. 한 번도 얼굴로 만나 본 적 없지만 시를 읽고 있으면 그 여자 속에 내가 보이고 내 마음속에 그 여자가 보인다. 어떻게 그런 바닥까지 내려가 절망을 써 냈을까. 값싼 희망보다 여자에겐 처절한 절망이 더 진실에 가까웠으리라. 시집『이 시대의 사랑』으로 최승자와 친구한다.

이 겨울에 '올여름의 인생 공부'를 읽는 맛이 특별하다.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으로 시작하는 시 후반부가 서늘하게 내 가슴을 후벼 판다. 썩지 않으려는, 썩어가고 싶지 않은, 결국 썩어갈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 다르게 기도하는 법, 다르게 사랑하는 법, 계속 배워야 한다, 아마도 절망이리라. 사랑하고 산다고 죽을 둥 살 둥 나를 갈아 넣었건만, 결국 썩어가는구나 느끼는 절망. 기도도 사랑도 헛짓거리였다면, 다르게 기도해야지, 다르게 사랑해야지, 그걸 다시 배워야 한다고.


나도 모든 사물의 배후를 손가락으로 후벼 파며 질문하고 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내가 한 사랑을. 무심하고 완악하고 감정노동을 피하는 한 인간을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다. 제목이 『숙덕숙덕 복싱 클럽』이고 부제는 뭐라 할까? "내 삶을 자유롭게 하는 싸움의 기술"? 나는 과연 이기고 자유로워지는 싸움을 하고 있을까? 반환점을 돈 집필의 배후를 손가락으로 후벼 파고 있다. 나는 달관도 도통도 모르는 인간이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처럼 울고 아이처럼 배고파 운다. 그러다간 다시 아이처럼 웃는다.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이게 썩지 않으려는, 종내는 자유롭게 하는 내 싸움의 기술인가? 최승자도 절망 속을 위풍당당 걸어가며 사랑을 쓰고 인생을 썼을 것이다. '올여름의 인생 공부'를 필사해 본다.


올여름의 인생 공부/ 최승자


모두가 바캉스를 떠난 파리에서

나는 묘비처럼 외로웠다.

고양이 한 마리가 발이 푹푹 빠지는 나의

습한 낮잠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사라졌다.

시간이 똑똑 수돗물 새는 소리로

내 잠 속에 떨어져 내렸다.

그러고서 흘러가지 않았다.


앨튼 존은 자신의 예술성이 한물갔음을 입증했고

돈 맥글린은 아예 뽕짝으로 나섰다.

송*식은 더욱 원숙해졌지만

자칫하면 서**처럼 될지도 몰랐고

그건 이제 썩을 일밖에 남지 않은 무르익은 참외라는 뜻일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감추는 법 건너뛰는 법 부정하는 법.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손가락으로 후벼 팔 것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한 아이처럼 웃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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