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까, 먹을까

열무얼갈이 나박김치를 담그고

by 꿀벌 김화숙

260324. 화. 맑음. 18/0


오늘은 종일 저녁 토론 책 황윤의[사랑할까, 먹을까]를 읽었다. 눈물 콧물 쏟으며 읽었다. 그리고 저녁에 3시간 '찐빵장미' 토론에 다녀왔다. 새로운 이야기도 아닌데,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도 탁월했지만, 책으로 차분히 더 깊이 주제를 확장할 수 있었다. 비건 11년 동안 내 탐구와 고민들을 책이 잘 정리해 주니 고마움의 눈물도 있었던 거 같다.


제목을 너무 잘 뽑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육식주의자 또는 잡식주의자의 딜레마겠다. '고기'로만 불리는 돼지, 소 닭, 이 동물들은 엄연히 생명이다. 심지어 돼지는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아주 영리하고 깨끗하고, 욕심꾸러기도 아니다. 감정이 있고 지능과 생각이 있는 생명인데, 오직 고기를 생산하는 기계처럼 취급받고 고기로 죽는다. 동물을 사랑할까, 먹을까?


눈물을 쏟은 지점은 한 두군데가 아니었지만 두 가지만 짚어 본다.


하나는 암퇘지들의 일생이다. 겨우 9-10개월 사이에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돼어, 4개월 임신 기간동안 스톨에서 꼼짝 못하고 지내다가 분만유도제를 맞고 새끼를 낳는다. 24-25일 정도에 젖을 떼고 어미돼지는 다시 배란유도제를 맞고 임신하고 분만유도제를 맞고 새끼를 낳는다. 이런 식으로 1년에 2.5회 분만을 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것도 총 6-7회 새끼를 낳은 후엔 도축장으로 보내진다. 인간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차별과 비인간화 성적 대상화와 착취와 별개의 문제가 아닌 걸 말해 무엇하랴.


둘째는 작가로서 황윤의 글쓰기와 영화 제작 방식이다. 1인칭 시점으로 글쓰기는 쉬워 보이지만 어렵다.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 역시 가장 어려운 장르다. 작가의 사생활이 노출돼야 한다. 육식 지옥도를 고발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자신을 성찰하고 고민을 드러내야 한다. 공장식 축산이나 육식주의와 가부장제를 비판하긴 쉽지만 그 시스템에서 자신은 자유로운가, 성찰하고 질문하며, 조금이라도 앞으로, 딜레마를 끼고 간다. 작가로서 내 글쓰기도 그렇다. 유체이탈 화법이 아니라 나를 관통하는 말하기와 쓰기. 온 몸의 감각으로 살아내는 글쓰기랄까. 그래서 부끄러움과 눈물과 괴로움이 짝을 이루는 글쓰기의 즐거움이다.


3시간 토론하며 보니 역시 육식주의의 견고한 성이 버티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진입장벽은 어쩔 수 없어 보였다. 그래서 또 슬펐다. 이 좋은 책을... 돌아와 늦은 밤 숙덕이 함께 열무얼갈이 나박김치를 담갔다. 어떤 동물도 괴롭히지 않고 먹고 사는 복이여. 복을 사람들은 왜 걷어찰까. 화숙표 채식단, 순식물식 자연식 밥상 준비해서 언제 한번 우리집에서 토론 모임 하자 해야겠다는 생각 또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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