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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영미 Jul 15. 2021

[그림책 서평]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루리 지음 | 비룡소

이 그림책은 루리 작가가 처음 만든 작품이다. 첫 작품으로 수상까지 하고 대단하다. 이 그림책의 원작인 브레멘 음악대는 그림 형제가 쓴 옛이야기이다. 원작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이 그림책에서는 당나귀, 개, 고양이, 암탉이 등장하는데, 각각의 직업은 당나귀는 택시운전수, 개는 식당 종업원, 고양이는 편의점 알바, 암탉은 지하철에서 두부를 판다. 원작에서 주인에 학대를 받고 버림받는 동물들이 음악가가 되기 위해 브레멘으로 향하는 것, 도둑을 만난다는 것과 같은 등장인물들의 설정은 비슷하지만, 사건 전개와 결말은 다르다. 

표지 그림을 보고 처음에는 지하철에서 밖을 보는 모습을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네 칸으로 그려진 프레임에서 각자 일터의 모습과 주인공의 모습이 담긴 걸 알게 되었다. 배경은 동일하게 하늘과 도시의 풍경이 보인다.  표지가 매력적이다. 면지 역시 재미나다. 도로와 빌딩이 보이고,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보인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도둑들의 모습도 여기저기서 보인다. 택시를 운전하는 당나귀, 지하철 입구로 가는 암탉, 고양이는 편의점으로 들어가고 있고, 개는 식당 창문을 열심히 닦고 있다. 표지판에는 브레멘이 500m밖에 되지 않다고 알려준다.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를 그들은 왜 가지 못한 것일까? 



그림책 동물들은 각자의 일터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쫓겨난다. 늙어서 더는 운전대를 잡을 수 없는 당나귀, 식당 문이 닫게 되어서 백수가 된 개, 한쪽 눈이 애꾸인데다가 무서운 얼굴을 한다며 쫓겨난 고양이, 노점에서 물건을 팔다가 걸린 암탉까지. 각자 다른 환경에서 다른 이유로 쫓겨나는 모습을 작가는 네 개의 프레임을 써서 펼침면에서 보여주고 있다. 프레임 배경색은 각기 다르다. 동료들에게 배웅을 받는 당나귀는 붉은색 계열의 배경으로, 식당 주인이 떠나는 트럭을 보는 개는 파랑 계열의 배경으로, 편의점 앞서 있는 고양이는 검은색으로, 사람들과 다른 방향으로 걷는 암탉의 모습은 주황색 계열의 배경으로 색이 쓰였다. 모두 줌-아웃한 그림이어서 인물의 표정보다는 채도가 낮은 배경색과 함께 낮고, 어둡고, 쓸쓸한 정서가 느껴진다.  

그들은 지하철 안에서 만났고, 같은 정류장에서 내린다. 그리고 끝도 없어 보이는 계단을 올라간다. 올라가는 순서는 등장했던 순서와 같다. 당나귀, 개, 고양이, 암탉. 넷은 함께 사는 무리 같다. 함께 걷고 있다. 그들은 동거인 같다. 걷는 네 동물의 표정이 어둡고 힘이 없다. 개가 불이 켜진 집을 올려다본다. 그 옆집들은 모두 불이 꺼져 있다. 집 주소는 꿈고개로 61호입니다. 꿈고개로라는 지번도 글의 주제와 의미가 있다. 동물들은 집 벽에 바짝 붙어 소리를 듣는다. 창문으로는 4인조 도둑의 모습이 보인다. 도둑들도 뭔가 곤란한 일이 있는 것 같다. 다음 장면은 네 개의 프레임 안에 동물들 귀와 당나귀 코가 살짝 보이고, 네 개의 프레임 안에는 노란색 배경 안에 글만 적혀 있다. 네 강도가 도둑 일을 더는 할 수 없다는 푸념을 늘어놓고 있다. 다음 장면은 앞 장면과 연결된 프레임이다. 동일한 구조인데, 프레임이 두 개 더 늘어서 6개를 이루고 있다. 하이-앵글로 작업되어서 위에서 동물들이 도둑들 집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재미나게 보여주고 있다. 앞에서 거론했던 동물들이 쫓겨나는 장면과 이 두 장면은 서로 연결되는 듯 보인다. 


 마지막 장면은 상상으로 끝나지만, 뒷면지에서 상상이 곧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4인조 도둑과 동물 네 마리가 [오늘도 멋찌개] 라는 음식점을 곧 차릴 것만 같다. 뒤표지 글에서 이 책이 사회문제를 유쾌하게 다루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이유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모습을 동물 특성과 잘 연결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원작과 달리 도둑들을 내쫓고 그곳에서 동물들만이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늙고 어리숙해서 더는 도둑 일을 할 수 없는 도둑들과 함께 밥을 만들어 먹고,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 모습이 참 마음에 든다. 도둑 역시 사회 구성원이기에 그들의 삶도 희망적이고 밝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엿보인다. 헌사 페이지에서 저자는 친구들과 자신들이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글을 읽으며 브레멘이 어디일까 생각해 보았다. 불과 500미터 멀리 있는 곳인 브레멘, 그림책 속 동물들이, 저자가 가고 싶었던 브레멘은 어떤 사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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