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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영미 Dec 27. 2021

[그림책 서평] 낙엽 스낵

백유연 저 | 웅진주니어

낙엽이 스낵이 되고, 이부자리도 되고

그림책 [단풍 스낵]은 단풍놀이를 떠오르게 한다. 처음 이 책의 제목에 눈이 갔다. 단풍 스낵이라니? 한 번도 낙엽을 보면서 스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뭇잎들을 먹는 동물과 곤충들에게 단풍은 어떤 맛일까 생각해 보았다. 표지 그림에는 곰과 다람쥐, 토끼, 사자 등 동물들이 낙엽을 둘러싸고 얼굴을 빼꼼히 보여준다. 단풍 스낵을 애타게 기다리는 동물들의 모습에 웃음이 난다. 얼마나 맛있는 음식이기에 저리 애타게 기다리는 걸까!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드는 간식이 빨리 완성되기를 기다리던 나의 모습과 닮았다. 


제목은 세로로 쓰이고, 낙엽으로 글자를 완성했는데, 이 모습은 마치 가을 숲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본문 첫 장면에서는 툭! 소리와 함께 숲 속 곰 머리 위에 빨간 단풍잎이 떨어진다. 배경 그림이 없어서 곰과 머리 위에 앉은 단풍잎에 눈이 간다. 다음 장면에서는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든 숲 속에 있는 곰이 가을 단풍의 멋진 모습에 놀라는 글을 읽는 독자 역시 같은 정서를 갖게 한다. 

가을날 곰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그 일은 바로 낙엽을 모으는 일이다. 곰은 주워온 낙엽 중 빛깔이 고운 낙엽을 찬찬히 고른다. 그리고 그 낙엽들을 깨끗이 씻어서 돗자리 위에 올려놓는다. 낙엽 위에 꽃잎과 솔잎도 준비해서 돗자리 위에 올려놓는다. 이제 곰이 무엇을 만드는지 알겠는가? 그렇다 곰은 단풍 스낵을 만들고 있다. 햇살에 낙엽이 잘 구워지고, 동물 친구들과 함께 낙엽 스낵을 먹는다. 바삭, 바삭, 온 숲에 바삭바삭 소리가 번지고, 모두가 행복한 가을날 이야기는 끝이 난다. 바삭, 바사삭, 낙엽 스낵 먹는 소리가 마지막 장면에 가득 채워져 있다.

나무가 나뭇잎을 떨어뜨리려면 나뭇잎과 가지 사이에 떨켜층을 만들어야 한다. 떨켜층이 형성되면 거센 바람이 아니어도, 자신의 무게만으로도 낙엽이 된다. 나무 한 그루가 달고 있던 나뭇잎을 모두 떨어뜨리는 데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낙엽을 떠올리면 나는 이부자리가 먼저 떠오른다. 단순히 떨어져서 생명을 다한 것 같아 보이지만 낙엽은 겨울을 나는 작은 곤충과 벌레들의 따듯한 이부자리나 보금자리가 되기도 한다. 또한 잘게 분해되어 좋은 퇴비가 되기도 한다.  

바삭, 바사삭 동물들이 낙엽 스낵을 먹는 소리는 낙엽 밟는 소리와도 같다. 낙엽 밟는 소리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시가 있다. 낙엽 시의 대명사인 레미 드 구르몽의 ‘낙엽’이다. 제목과 지은이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이 한 문장을 들으면 다들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일 거다. 


낙엽 - 레미 드 구르몽


시몬, 나뭇잎이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의 빛은 부드럽고, 그 소리 너무도 나직한데

낙엽은 이 땅 위의 연약한 표류물.


해질 무렵, 낙엽의 모습은 서글프고,

바람이 불어오면 낙엽은 정답게 속삭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길에 밟히는 낙엽은 영혼처럼 울고

날개소리, 여인의 옷자락 소리를 내곤 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벼운 낙엽이 되리니

오라, 날은 이미 저물고, 바람은 우리를 감돌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이 시에서는 낙엽은 아주 부드러운 빛깔, 너무나도 나지막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으며, 발이 밟을 때,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고 표현하고 있다. 

시인의 표현이 정말 기가 막히지 않는가. 단풍의 고운 색, 밟았을 때 우악스럽거나 거칠지 않은, 나지막한 목소리. 무엇보다 영혼처럼 운다는 표현은 시인의 놀라운 시선과 감성에 다시 한번 탄복케 한다. 이 시 마지막 부분에는 ‘우리도 언젠가는 가벼운 낙엽이 되리라.’라는 구절이 있다. 사라진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리고 새로운 생명과 연결되어 있으면 알 수 있다. 추운 겨울 작은 곤충과 벌레들의 따듯한 이부자리가 되어주는 낙엽처럼, 좋은 퇴비가 되어 새롭게 생명을 얻는 낙엽의 모습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가벼운 낙엽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낙엽이 되어가는 우리의 모습에 우울해하거나 슬퍼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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