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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영미 Jan 30. 2022

[책 정리]너를 닮은 사람

정소현 소설집

지난주 도서관에서 설 연휴에 읽을 책을 여러 권 빌렸다. 자연과학 분야 도서 중심이라, 머리를 식히려고 소설한 권을 빌렸다. 제목이 익숙하다 생각했는데, 빌린 책은 최근에 끝난 드라마의 제목과 같았다. [너를 닮은 사람].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대략적인 줄거리는 알고 있어서, 그 드라마의 원작인가 살폈더니 그 드라마의 원작이었다. 단편소설이 장편 미니시리즈 원작이 되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이 책은 8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서가에서 바로 [너를 닮은 사람] 부분만 읽었는데, 장편 드라마와 많은 부분 비슷했다. 연출가가 길게 뽑아내기가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판 제목은 [실수하는 인간]이었다. 2012년에서 출간되어, 2018년에 3쇄를 찍었다. 재판을 2021년 10월 찍었는데, 아마 드라마 방송 시기를 맞춘 것 같다. 그러면서 제목도 드라마와 동일하게 [너를 닮은 사람]으로 바꾼 것 같다. 재판 후 3개월 사이에 5쇄를 찍었다. 초판과 재판을 비교해 보면 분명히 동일한 책인데도, 홍보에 따라 책의 인지도가 얼마나 달라지는 알 수 있다. 


20-30대 초반에는 소설을 많이 읽었다. 해마다 나오는 문학상단편집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학보다는 비문학을 많이 읽게 되고,  문학도 소설이 아닌 그림책과 동화책 중심으로 읽게 되었다. 내가 소설을 멀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나의 삶과 지나치게 동떨어져 괴리감에 부담스러웠던 같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소설을 읽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인다. 

박사 논문을 쓸 때, 논문이 끝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 소설을 읽는 것이었다. 눈문과 비문학을 줄기차게 보았더니 소설이 간절히 읽고 싶었다. 논문을 끝내고 읽은 현대소설은 정말 새로운 맛의 꿀떡과 같았다. 내가 맛보지 않은 새로운 맛이지만, 달콤해서 계속 먹을 수 있는. 

하지만 그 취향도 금세 시들해졌다. 다시 비문학과 그림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지나치게 예민한 소설 속 문장들과 자극적인 소재들, 새롭지만 불편한 시선 속 이야기에 있는 것이 힘들었다. 


소설은 책 정리를 안 하는 편인데, 이 책은 단편 제목이라도 기억하고 싶었다. 

이 책 단편소설은에는 부모의 학대, 특히 어머니, 여성의 학대가 자주 등장한다. 학대를 받는 주인공들, 그리고 그런 학대의 근원인 부모와 장소(집)으로 끝내 돌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본질적으로 상처가 치유될 수 있는 것은, 상처를 준 대상과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왜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며, 과거 속 상처를 직면해야 성장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이 책은 이야기 안에 현실과 판타지가 공존한다. 시공간이 중첩되어 있고,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장치가 굉장히 자연스럽고, 매력적이다.  


여러 이야기 중 나는 [폐쇄되는 도시[, [돌아오다], [지나간 미래]가 마음에 와닿았다.   

[폐쇄되는 도시]는 부모로부터 유기당한 소녀가, 한 할머니로부터 유괴를 당했다고 믿는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유기당한 사실을 모른 채, 할머니와 유기당한 많은 아이들과 사는 소녀는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픈 다른 아이에 의해 다시 버려지고, 다행히 부모를 찾아가지만 자신이 유기당한 사실을 알게 된다. 성인으로 자란 그녀는 우연히 할머니와 살았던 동네와 시가 철거당할 것이라는 뉴스를 보고, 그곳으로 가게 된다. 할머니는 사라졌고, 자신을 유기했던 다른 아이와 함께 자식들로부터 유기당하는 할머니를  찾아 시에 넘기는 일을 하게 된다. 마지막은 모두가 떠난 도시에 남은 한 노인을 발견하고, 그녀를 데리고 가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나도 데리고 가요. 아주 가느다랗고 느린 목소리였다. 그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따라오라고 했다. 왠지 불길해 보였지만 두고 가면 후회할 걱 같았다. 따라오세요. 둘은 서로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 사람이 몸을 털고 일어났는데 키가 복의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앞만 보고 걷기 시작했다. 따라오고 있나요? 복이 물었다. 뒤에서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그럼요.]


[돌아오다]는 부모없이 할머니와 사는 손녀와의 이야기이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집착하며, 자신이 죽을 때까지 손녀를 곁에 두는 존재로 나온다. 시력을 잃은 할머니, 30대 중반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할머니의 집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인 손녀, 스무 살이지만 임신한 소녀가 등장한다. 갑자기 주인공의 집에 쳐들어온 임신한 소녀(윤옥)는 주인공 손녀와 자매처럼 지내지만, 사실 윤옥은 주인공의 엄마였다. 시공간이 중첩된 이야기이다. 


[할머니 속의 냉정한 엄마가 아닌 윤옥이 내 엄마라 다행이었다. 나는 젊은 나이게 사랑했던 딸을 두고 가야 했던 엄마가 가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마치 엄마가 지금 운명하기라도 한 것처럼 울었다.

내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이제야 완전히 외톨이로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다지 두렵거나 불안하지 않다. 내게는 할머니가 남겨준 오래된 집이 있다. 이제 세상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없지만, 그래도 내가 있을 곳이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지 힘이 된다.] 


[지나간 미래]는 육이오 전쟁 직후 군에 징집된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전쟁이 끝나면 만나기로 한 서울역에서 하염없이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 앞에 나이 든 남자가 나타나서,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며 함께 가자고 청한다. 여인은 남편의 이름을 알고 있는 그를 믿고, 따라갔지만 그 남자의 집에는 남편이 없었다. 그는 여인에게 음식을 주고, 나가지 못하게 방문을 잠그고 외출한다. 여인은 창문을 통해서 구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다. 대문을 열고 나가려고도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나이 든 남자는 몸이 아픈 이었다. 그리고 그는 여인을 자신의 어머니라고 믿었다. 여인은 그의 엄마로 행세하며 하루빨리 밖으로 나가려고 애쓴다. 병마와 싸우던 그가 여인에게 이제 함께 남편을 만나러 가자고 하면서, 약을 건넨다. 약을 받아 든 여인은 먹는 척하면서 뱉어내고, 남자는 약을 먹은 채 죽어간다. 

[엄마 놔두고 가서 미안해요.]

여인은 바로 나이 든 남자의 어머니이다. 

[할머니, 정신 좀 차려보세요. 괜찮으세요? 그는 이상한 소리를 하며 나를 묶은 남자들에게 말했다. 중증 치매 노인이라 의사소통이 잘 안 될 겁니다. 주의 깊게 잘 살펴주세요. 나는 그제야 이것이 내가 보는 미래라는 것을 알았다. 현실보다 더 생생해서 깜빡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서 잠에서 깨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날이 오지 않도록 어떻게든 도망쳐야 한다. 정신을 차리면 나는 다시 서울역에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그나마 가장 행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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