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그림은 제목 아래에 그려져 있는데, [신흥 반점]인 중국집이 보인다. 식당 문이 열려있고, 그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과 식사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뒤표지에는 통닭집과 같이 골목 상가들이 보인다.
표지(앞, 뒤)
어떤 가족인지 머릿속에 그려지는가? 이 그림책은 서민들의 삶이 잘 드러나는 바쁜 음식점에서 일하는 부모님에게 갑자기 찾아온 친할머니의 이야기를 여자 아이가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연초록의 색면지를 넘기면 바로 가족사진과 함께 이야기가 보인다. 그리고 글은 아래와 같다.
표제지
[우리 가족입니다. 엄마, 아빠, 나, 동생 ……할머니도 한 분 계신데 멀리 시골에서 혼자 사세요. 할머닌 아빠가 아주 어릴 때부터 따로 사셨대요.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할머니는 지금도 우리랑 같이 살기 싫으시대요. 사실은 나도 그게 더 좋아요. 왜냐하면……]
글과 그림에서 현제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본문의 시작처럼 보이지만 본문이 아니다. 아빠, 엄마, 그리고 화자인 여자아이, 남동생의 모습이 보인다. 여자아이는 아빠의 팔을 잡아당기며 환하게 웃고 있다.
다음으로 약표제지가 나오고 동그란 밥상이 놓여있다. 참으로 정겨운 밥상이지 않은가! 지금은 다들 식탁에서 밥을 먹고, 동그란 밥상보다는 네모난 밥상을 많이 써서 이런 동그란 철재 밥상은 보기가 힘들다.
가족의 다른 말인 ‘식구’는 한 집안에서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 먹는 사람을 말한다. 표제지에서 밥상을 보여준 것도 가족의 이야기임을,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인 식구가 소재로 되었음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
약표제지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본문 이야기는 할머니가 여자아이 집으로 오게 되면서 시작된다. 부모님 둘이서 식당을 운영하는 분주함 속에서 여자아이는 시골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온 할머니를 맞는다. 이 그림 장면에서는 표제지에서 보던 가족사진과 같은 구도로 그림이 그려졌는데, 가족들의 표정이 앞 장면과는 사뭇 다르다.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던 그들의 모습은 할머니의 등장으로 긴장되고, 불안한 표정이다. 평화로움이 깨졌다. 화자인 여자아이가 가장 적대적인 표정을 갖고 있다. 다음 펼침면에는 이 가족의 평화로움이 깨진 모습을 보여준다. 밖에서 옷을 주워오는 할머니의 모습을 프레임 없이 여러 컷의 작은 그림으로 보여주고, 오른쪽에는 할머니 때문에 일이 늘어난 엄마의 일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엄마, 할머니가 세탁기로 빨지 말래요.]
여기까지 그림의 시선(카메라 앵글)은 책을 보는 독자의 시선과 동일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 갑자기 시선이 위로 간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 보는 시선으로 바뀌었다. 익숙한 시선에서 시선이 바뀌면서 우리를 낯설게 하고 긴장감을 일으킨다, 사건 역시 그러하다. 할머니가 집으로 와서 조금 달라지기 했지만 갈등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런 갈등과 어려움이 커지면서 식구들이 이제 더는 함께 밥을 먹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이런 사건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작가는 시선을 바꾸는 장치를 이용했다.
본문 부분-샷(shot)
할머니는 밥뿐만 아니라 배변활동도 혼자서는 할 수 없게 된다. 할머니는 다시 아이가 되어 버렸다. 치매 노인이 된 것이다. 아이는 그런 할머니를 싫어하게 되고, 점점 거리를 두며 생활한다.
할머니를 돌보는 몫은 모두 엄마, 아빠의 몫으로 남게 된다.
이 글의 모든 대화는 여자아이가 하는 말로 처리되어 있다.
주인공은 여자아이는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으니 하나하나 잔소리를 해댄다.
[할머니 자꾸 왜 그래? ……할머니 또 벗었어?]
부모들은 차마 할 수 없는 말들을 여자아이는 뱉고 또 뱉는다. 아이는 나날이 사고를 치는 할머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러는지, 답답하고, 부모님을 힘들게 하는 할머니가 밉고 싫다.
그래서 아이는 아빠에게 할머니를 다시 가라고 하면 안 되는지 묻는다.
[왜요? 아빠 어릴 때도 따로 살았다면서요?]
[그래도 안 돼. ……엄마니까. 할머니도 아빠 엄마거든.]
본문 부분-샷(shot)
글의 후반부에서는 아이들과 할머니가 목욕하는 장면이 나온다. 두 아이를 목욕시키는 아빠의 모습, 할머니를 목욕시키는 엄마의 모습이 펼침면으로 그려지고, 그 뒤에는 처음에 등장했던 가족사진이 다시 나온다. 가족사진 옆에는 할머니의 사진이 같이 놓여 있는 모습이다.
[우리 가족입니다. 엄마, 아빠, 나, 동생, 할머니 이렇게 다섯입니다…….]
앞에서 등장한 가족사진 그림이 다시 보여주면서 앞과 대비를 주었고 강조되고 있다. 할머니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은 아니지만 할머니의 사진이 더해져 그들에게 또 다른 가족 형태가 되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본문 부분-샷(shot)
마지막 장면에서는 아빠를 업으려는 아이의 모습이 보이고, 글은 이렇게 적고 있다.
[아빠 나 또 일 센티 컸다!]
아빠를 업는 아이의 동작에서 아빠를 위하는 아이의 마음을 볼 수 있다. 아이가 할머니를 싫어하고 잔소리를 했던 건 할머니가 싫어서가 아닐 거다. 엄마, 아빠를 힘들게 하는 할머니가 미웠을 거다. 하지만 묵묵히 할머니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부모님의 모습을 통해 아이의 마음은 더 성장한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 결말에서 신체적 성장을 보여주고 있지만 부모님을 위하는 아이의 마음이 함께 성장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이혜란 작가의 어린 시절 실제 경험담이다. 그래선지 경험에서 나온 모습들인지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림은 연필로 작업되었고, 전체적으로 배경의 색을 넣지 않았다. 그래서 그림이 선명하거나 강한 느낌이 덜 하며 부드럽고, 일상적인 느낌을 갖는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환경과 소재가 그림 기법과 잘 들어맞는다. 색은 부분적으로 사용했는데, 인물의 얼굴이나 옷 부분에 넣어 인물과 배경을 대조시키며 인물의 감정을 눈여겨볼 수 있도록 강조하고 있다.
최근 아파트 경비원이 자신에게 폭력과 학대를 일삼는 입주민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소식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자아냈고, 해당 입주민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게 되었다. 다들 어떻게 늙고 힘없는 노인을 때리고 학대할 수 있는지 분노하며 입주민의 인신공격적인 말들이 댓글에 달렸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억울하게 죽은 경비원과 남은 가족의 삶을 위해서라도 강력한 처벌이 따라야 하고, 더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적 분위기가 체계가 얼른 조성되기를 바란다.
한편으로는 폭력을 행한 그의 가족들에 대한 생각까지 미치게 되었다. 누군가는 가해자의 가족까지 돌아볼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피해자의 가족의 아픔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가해자의 가족 역시 그로 인해 큰 상처를 받고 살아갈 것이 틀림없을 게다. 특히 그의 부모가 살아있다면 그의 부모는 어떤 심정일까.
아마도 그의 부모의 마음 역시 죽음에 다다르지 않았을까.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자신의 부모에게도 똑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
반대로 자신의 부모에게는 그 역시 효자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내 부모님을 공경하고, 잘 따르는 마음이 효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부모에게만 잘하는 사람은 엄밀히 효자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을까.
효는 개인윤리를 넘는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부모만을 공경하고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대하는 마음으로 웃어른을, 타인을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대하는 태도와 가치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