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번 살 수 있다면?

사노 요코 글, 그림, 김난주 역 | 비룡소

by 곽영미

100만 번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떤 삶을 선택하겠는가?


[표지를 만나보자]

제목부터 남다른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는 사노 요코의 작품이다. 그림책 앞표지에는 주인공인 고양이가 보이고, 뒤표지에는 주인공과 하얀 고양이가 다정히 앉아 있는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앞표지에서 고양이의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어서 책을 보는 우리와 마주하게 된다. 파란색의 눈빛, 올라간 눈꼬리, 야무지게 다문 입술, 하늘로 향한 꼬리, 그리고 무언가 결심한 듯한 주먹 쥔 두 손까지. 주인공은 힘 있고, 강하며, 자신만만해 보인다. 주인공이 어떤 성격일지 짐작되는 그림이다. 표제지에서는 마치 뛰어오를 것처럼 두 팔을 벌리고 있다.

noname01.jpg 표지(앞)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이야기는 주인공인 고양이를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여기에 그림은 앞표지 고양이와 같다.

[백만 년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살았던 것이죠. ……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습니다.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noname02.jpg 본문 한쪽면 샷(shot


백만 번 산 고양이의 글과 그림 구조는 단순하다. 왼쪽에는 흰 바탕에 글과 오른쪽에는 그림이 들어가는 구조이다. 또한 이야기의 시작에서는 글이 반복적인 패턴을 가지고 있다. 누구의 고양이었는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고양이를 잃은 사람들이 얼마나 슬퍼했는지, 어디에 무덤을 만들어주었는지가 동일하게 등장한다.

오른쪽 그림은 글과 대응되게 그려진다. 글과 그림이 동일한 대응 그림책이다. 그림책은 이렇게 글과 그림이 동일한 대응 그림책, 글이나 그림이 서로 확장하거나 강화해주는 확장, 강화 그림책으로, 글과 그림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대위법 그림책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임금님의 고양이였을 때는 전쟁에 나가 화살에 맞아 죽는다. 뱃사공의 고양이였을 때는 배에서 떨어지면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서커스단 마술사의 고양이로, 도둑, 홀로 사는 할머니, 어린 여자 아이의 고양이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이런 반복적인 글 패턴이 다소 지루할 수 있으나 고양이와 고양이의 주인이 서로 상반되는 마음을 갖고 있어 다소 우습고 독자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도둑은…… 소리 내어 엉엉 울면서……. 여자 아이는 온종일 울었습니다.]

고양이를 잃은 사람들은 지체가 높은 임금님이나, 도둑이나, 마술사나 아이나 모두 고양이를 사랑했기에 죽음을 슬퍼한다. 심지어 임금님은 전쟁이 한창인데도 고양이를 껴안고 우느라 전쟁까지 그만둔다. 그런데 정작 고양이는 이들을 모두 싫어한다. 조금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싫어한다.


[고양이는 도둑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고양이는 아이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키웠던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잃었을 때 감정을 너무나 잘 알기에 책 속 주인들의 마음에 빠져 읽게 된다. 그런데 고양이는 주인을 아주, 아주, 아주, 싫어했다고 하니 난감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읽으면서 무지개다리를 건넌 내 반려견의 모습을 떠올리며 슬퍼하다가 우리 집 개가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건 모두 '나만의 착각이었나………, ' 생각하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noname06.jpg 본문 한쪽면 샷(shot)

다시 살아난 고양이는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도둑고양이로 살아간다. 그때 처음으로 자기를 무척 좋아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고양이는 도시의 길거리에 누워서 편한 자세를 잡고 있다. 자신을 좋아하는 이가 없어도, 어둠 속에서 혼자 있어도, 먹을 것이 그리 많지 않아도, 누구의 고양이였던 때보다 훨씬 더 좋아 보인다.

‘맞아. 이게 바로 자유지. 우리는 누가 원하고, 바라는 모습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 자유가 있어야 해.

그리고 스스로 선택해야 삶이 행복한 거야!’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마치 내가 주인공 고양이가 된 것처럼 자유롭게 당당하게 느껴졌다.


다음장에는 주인공이 많은 암고양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들은 모두 고양이의 신부가 되고 싶어 한다고.

멋진 선물까지 준비했다고 글에서 알려준다.

[나는 백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 새삼스럽게 이런 게 다 뭐야!]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나는 다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림 작가는 그런 주인공을 가장 크게 그렸고, 암고양이들을 작게 그렸다. 또한 글에서 모든 암고양이가 주인공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고 썼다. 그런데 나는 그림에서 조금 다르게 보였다. 암고양이들의 표정을 봐라. 그런 주인공을 좋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도 있지만 시끄러운 소리에 귀를 막거나, 고개를 돌린, 생선에 눈이 팔린 고양이도 있다. 주인공이 과한 자기애에 빠져서 허풍을 떠는 것만 같았다.


그 다음장에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가 등장한다. 하얀 고양이는 다른 암고양이와 달리 주인공이 아무리 잘난 척해도 동요하지 않는다. 백만 번이나 죽어봤다고, 세 번이나 공중 돌기를 하며 잘난 척해도, “그래.”라고 말한 뿐이다.

[내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

결국 주인공은 자기 자랑을 멈추고, 진짜로 원하는 것을 말하게 된다.

‘진작 그럴 것이지!’


그리고 우리가 예상한 대로 고양이는 새끼를 많이 낳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이젠 백만 번이나 살았다는 얘기 따위는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자신보다 하얀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들을 더 좋아한다. 새끼 고양이들이 자라서 모두 떠나자 주인공은 이제 하얀 고양이와 함께 오래 살고 싶다는 욕심밖에 갖지 않았다.


noname07.jpg 본문 한쪽면-샷(shot)


하지만 삶의 끝에 죽음이 찾아오듯이 하얀 고양이는 움직임을 멈춘다.

[……고양이는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또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울었습니다.]

몇 날 밤낮을 울던 주인공도 울음을 멈춘다. 하얀 고양이 곁에서.


처음 이 그림책을 읽었을 때, 그림 때문에 글의 감동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아이가 그린 것처럼 미숙해 보이는 인물의 형태와 채도, 명도가 낮은 색감 때문이지 그림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오랫동안 키운 반려견을 보내고 계속 이 그림책 속 한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로 하얀 고양이를 끌어안고 백만 번이나 울던 주인공이었다.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백만 번이나 울던 주인공 고양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림책은 이렇게 한순간에 다가오기도 한다. 처음부터 마음에 쏙 드는 그림책이 있기도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이나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가오는 속도와 강도가 다르다. 마치 사람들과의 인연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림책은 늘 가까이 두고, 여러 차례 보아야 하나 보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이 죽었던 자리에 수풀이 소복이 올라온 그림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 그림책은 삶과 죽음에 대한 많은 생각을 던진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게 맞는 것인가?

진정한 삶의 행복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죽음 앞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


백만 번 다양한 삶을 살던 고양이는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고,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의 주인이 아무리 큰 부를 가지고 있어도, 즐거움을 주어도, 자유와 사랑을 주어도 그들을 좋아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만을 좋아하는 고양이었다. 그리고 남들에게 허세와 자랑으로 자존심을 세우는 고양이었다.

그런 그가 비로소 다른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달라진다.


자신만의 삶을 사는 것 이상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주고 있다.

나는 이 그림책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그리고 가슴 한편에 어린아이의 마음을 갖고 있는 어른들 역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쉬어갔으면 한다.


그림책 [백만 번 산 고양이]를 덮으며 묻고 싶다.


“과연 주인공 고양이는 백만 번 산 고양이일까요?

……우리는 몇 백만 년을 사는 걸까요?”

우리의 삶 속에서 매일 백만 번 산 고양이를 만나보면 좋겠다.


미소.jpg 나의 미소, 다시 이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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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테라피]


**지금 당신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랐어요. 너무 빨라 당황스럽다고요? 그런데 드디어 시간이 되었어요.

당신 앞에 펜과 편지지가 놓여 있어요. 얼마나 다행이에요. 생의 마지막 순간이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가지 않아서요. 이제 당신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들을 떠올리고, 대상을 생각하며 적어보세요.


유서 쓰기는 죽음교육에서 꼭 해보는 활동입니다. 저는 스무 살에 처음 유서를 써 보았어요.

유서를 쓰게 된 동기는 많지만, 해마다 여러 차례 쓰다 보니 왜 유서를 쓰는 게 좋은지, 어떤 내용이 공통적으로 들어가는지 알게 되었어요. 죽음교육에 관한 책에서는 유서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지고 있는 재산을 어떻게 해야 할지 꼭 쓰라고 해요. 하하. 남길 돈이 없다고요? 잘하신 일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유서에 사랑과 감사의 인사를 남긴답니다. 그리고 너무 아파하지 말라는 당부도요.

유서를 쓰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지금 사는 이 순간을 감사하고 사랑하게 되지요.

그럼 이제 유서 쓰기를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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