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나 조볼리 기획, 마리아 키아라 디 조르지오 그림 I 한솔수북
글 없는 그림책의 이야기를 만든 작가에게 글을 썼다고 할 수 없으니 보통 ‘기획’이라고 붙인다.
[표지를 만나보자]
원제는 [Professional Crocodile]로 전문인 악어? 전문가 악어? 원제는 이태리어 professional로 직업이란 뜻이다. 한국 제목으로는 [악어 씨의 직업]으로 옮겨졌다. 악어 씨의 직업이 무엇일지, 무엇에 그렇게 전문가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앞표지에는 물속에서 헤엄치는 악어가 크게 그려져 있다. 앞표지 그림 물속은 어디인 것 같은가?
뒤표지에는 의인화된 악어가 걸어가고 있다. 실제 악어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사람일까.
면지에는 다시 초원의 밤하늘이 보인다. 시선이 위에서 아래를 보고 있고, 야자수 나무와 별빛 가득한 밤하늘이 인상적이다. 배경이 초원일까 궁금해진다.
본문 첫 페이지를 열면 초원의 늪에서 자고 있었던 건 주인공 악어 씨의 꿈이라는 걸 바로 알려주는 그림이 나온다. 아, 악어 씨가 물 위에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었구나. 면지에서 보았던 장면과 연결된다.
[본문으로 들어가 들어가 보자]
악어 씨는 오전 7시 알람에 맞춰 일어나서 커튼을 치고 어떤 넥타이를 맬지 고민하며, 옷을 갈아입는다. 악어 씨는 옷차림에 제법 신경 쓰는 것 같다. 그리고 아침을 먹고, 출근 준비를 한다. 일상적인 우리의 일상과 동일하다. 작은 프레임들로 구성된 분할 화면이 보인다. 프레임이 많으면 사건 전개와 서사 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어서 글이 없어도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다. 이 그림책은 여러 프레임을 행과 열로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 프레임이 뛰어난 작품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단둘이 만난 이웃과는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곧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인사하고 바쁘게 헤어진다. 거리에서는 물건이 가득한 가게 앞에서 정신을 잠시 빠뜨리기도 하고, 자동차에 물이 튀기기도 한다. 이 그림에서 악어 씨가 서 있는 자리와 그 옆 열에 자동차 바퀴를 넣어서 시간이 흐르고, 자연스럽게 자동차 바퀴에서 튀긴 물이 악어 씨의 다리와 연결되게 그려졌다. 이렇게 프레임을 효과적으로 넣었다. 우리의 보통날과도 닮았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다.
지하철 그림을 보자. 지하철 안에는 사람과 동물이 같이 보인다. 동물로는 하마와 기린, 원숭이가 보인다. 사람들의 표정도 가지각색이다. 지하철 창문으로 구경을 하는 아이부터 하품하는 아이, 음악을 듣는 사람, 과자를 먹는 아이, 악어 씨는 여유 있게 신문을 보고 있다.
제목과 연결해서 악어 씨의 직업은 무엇일까? 옷차림에 관심이 많은 것 같고, 신문을 꼼꼼히 보는 걸 보니 세련되고 세상 정보에 관심이 많은 직장인인 것 같다. 그런데 왜 사람들과 사람처럼 행동하는 동물들을 같이 보여주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 같이 보여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악어 씨는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꽃 한 다발을 사고, 재빨리 거리를 걷는다. 그리고 익숙한 가게를 지나며 점심 메뉴를 고르고, 점심을 포장해서 간다. 친숙한 가게 주인과 인사를 하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다음 펼침면 페이지에서는 옆에서 보던 시선이 바뀌었다.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조감도로 바뀐다. 악어 씨는 바쁘게 거리를 걷는다. 단조로웠던 시선이 바뀌면서 악어 씨의 빠른 발걸음처럼 우리는 조금 긴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커다란 대문으로 들어간다. 입구에 그를 맞는 직장 동료에서는 무심한 듯 꽃 한 다발을 던지고 손짓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그리고 공원처럼 보이는 안쪽으로 돌진한다. 그를 보고 놀란 까마귀 떼들이 우르르 날아오른다. 원숭이 우리도 지나간다. 그런데 진짜 원숭이처럼 보이는가? 원숭이들이 책과 신문을 보고 전화기도 들고 있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곳은 ……악어 수족관이었다.
그는 옷을 벗고 몸을 풀고, 자연스럽게 수족관으로 들어가 구경 온 사람들에게 악어로서의 멋진 자세를 취하며 기뻐한다.
갑작스러운 반전에 어안이 벙벙하다. 악어 씨의 직업이 악어였다니, 악어 씨는 사람인 거야, 아님 진짜 악어인 거야? 갑자기 생각할 게 많아졌다. 대체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악어로 살아가는 악어 씨의 비애, 힘들게 일터로 나오고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 초원 늪에서의 자신의 원하는 삶이 아닌 동물원 수족관의 모습을 대비해서 그런 직장인의 비애를 보여준 것인지,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유한 것인지, 아님 동물원에 갇힌 악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이 그림책은 악어의 이빨, 노란 새, 수족관의 푸른볏도마뱀, 원숭이 등과 같이 상징성이 많은 책이다. 상징의 의미를 찾아보면 더욱 재미있다.
나는 악어 이야기가 아닌 사람 이야기로 보았다. 그렇다면 과연 악어 씨는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악어 씨의 직업이 악어여서 악어 씨는 행복하지 못할까. 결론은 악어 씨가 행복해 보인다로. 그리고 자신의 직업에 만족해 보인다는 결론 내렸다.
만약 악어 씨가 자신의 일에 불만족스러웠다면 7시 알람에 맞춰 재빨리 일어날 수 없을 것이고, 넥타이를 그렇게 열심히 고르지 않았을 것이며, 직장 동료에게 꽃다발을 사서 전할 리도 없고, 자주 가는 가게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기도 어려울 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타난 그의 모습이다. 그는 자신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직장인의 비애 또는 악어의 본성을 잃고 사는 동물원 우리에 갇힌 악어의 슬픔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나는 악어 씨와 그가 자신의 일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갖는지, 그와 직업과의 관계를 보여준다고 생각되었다.
사람이 직업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다고 의아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계란 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를 넘는다. 동식물과 나의 관계, 사물과 나의 관계, 그리고 일과 나의 관계까지 범위는 넓어질 수 있다.
당신에게 직업이란 어떤 의미인가.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아니면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 그것도 아니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수단 등등.
직장을 옮길 때 고려할 요건이 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거나, 꿈을 이룰 수 있는 일이거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라도 맞으면 옮기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이 그리 간단하거나 소박하지 않다. 한 개보다는 두 개의 조건이 맞았으면 좋겠고, 한 개의 조건이라도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주로 관계보다는 연봉이나 꿈을 좇으며 직장을 옮긴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워했을까. 왜 그렇게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했을까. 왜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까. 왜 늘 그 일에 만족스러워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찾았을까. 생각해 보니 나는 일과 나의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했던 거였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에는 청소를 하시는 분이 계셨다.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했지만 나는 어떤 분야에서도 그처럼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끊임없이 움직였고, 마치 학교 전체가 자신의 집인 것처럼, 아니 그 일을 신에게 소명을 받은 사람처럼 했다. 그와 함께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들 입을 모아 칭찬했고, 그 누구도 그 보더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가 마치 신처럼 느껴졌다. 자신과 일의 관계에서 신의 경지에 이룬 사람이었다.
대다수 직장인들은 매일 출근하는 것이 곤욕이고 일이 힘들다고 불평한다. 나 역시 그랬다. 일이 즐겁기보다는 다른 목적에 더 맞춰져 있다. 그래서 나는 늘 입버릇처럼 백수로 한량으로 살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런데 이젠 조금 알 것 같다. 의외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직업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그것이 돈이 되지 않아도,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좋은 직업이기 아니어도 말이다.
만약 내가 다시 작장을 다닌다면 이젠 일이나 금전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일과 나의 관계에서 더 큰 행복을 찾고 싶다. 내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내 일을 사랑하면서 일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쌓고 싶다. 일할 수록 내가 행복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악어 씨가 동물원 수족관에서 일하기 때문에 꿈속에서 만나는 정글의 삶이 더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그런 꿈이 있어서 악어 씨의 삶과 일이 더 행복한 것이 아닐까, 어쩌면 악어 씨가 자신의 직업을 너무 사랑해서 악어로 변한 게 아닐까. 생각이 너무 멀리 왔을 수도 있지만 전문가 악어라는 원제를 생각해 보면, 악어 씨는 악어라는 직업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삶과 꿈, 그리고 생활을 악어로 변신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