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연주
<침묵의 연주>
피아노 독주회를 위한 무대 중앙에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있고
피아니스트가 천천히 걸어가, 청중들에게 인사한 뒤
조심스레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하얀 건반 위에 올려놓는 손가락
청중들은
그 다음에 이어질 선율을 잔뜩 기대합니다.
30초, 1분....
유명한 음악가가 발표한 새로운 곡을 처음으로 발표하는 자리이니
피아니스트가 긴장했나보다.. 이해심을 발휘하며 조금 더 기다리지만
2분, 3분...
여전히 피아노 소리는 들리지 않고,
청중석에선 기침 소리, 숨을 고르는 가벼운 한숨 소리가 들려옵니다.
무대에서의 침묵은 4분을 넘어서고...
청중들은 시계를 보지만,
피아니스트는 이제 일어나
무대 밖으로 걸어 나가고
사람들은
도대체 뭐냐, 우릴 놀리는 거냐,
웅성거리기 시작하지요.
20세기를 대표하는 실험적 음악가이자 시인인
존케이지의 악곡 <4분 33초>는
이렇게 공연을 마칩니다.
고요와 침묵 속에서 주변에 나는 소리를 듣는 청중...!
그는 이렇게, 미리 의도한 소리보다
청중들이 객석에서 내는 일상의 소리를 강조하는
‘우연의 음악’을 창조했는데요.
다른 작품들에서도 ‘침묵’을 중요하게 사용한 그는
절대 무음이란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완전한 침묵의 연주’ 라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했습니다.
사람보다 귀가 밝은 동물은
우리가 들을 수 없는 고주파 대역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듯이
아무리 고요해도 실제로는 소리가 나고 있다는 것,
귀에 들리는 것만이 세상의 모든 소리가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동양의 공(空)사상과 철학을 담은 예술이었지요.
엉뚱한 발상과 파격을 통해 진화한 예술이야말로
현실에 대한 저항이고
상상 그 이상의 것에 대한 도전임을 보여주는
존 케이지.
그의 말이, 침묵과 소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절대 무음이란 없다.
내가 죽을 때까지도 소리는 남아 있을 것이고
죽은 후에도 계속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