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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은 어디로 흐르는가

by 부자백수

요 며칠, 우리 안에 있는 에너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하루라는 시간과 그 시간을 살아낼 에너지.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에 따라 삶의 모습이 너무나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에너지를 차곡차곡 쌓아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데 쓰고, 어떤 사람은 같은 에너지를 자신을 허물어뜨리는 데 쓰기도 합니다. 그저 반복되는 하루일 뿐인데, 어떤 반복은 동경을, 어떤 반복은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왜일까,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엔트로피'라는 과학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가만히 두면 무질서한 쪽으로, 즉 엔트로피가 높은 쪽으로 흐른다고 합니다. 정성껏 지은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 허물어지고, 뜨거운 물은 결국 식어버리죠.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의식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과 관계, 일상도 서서히 흩어지고 무질서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배우고, 몸을 단련하고, 소중한 것을 가꾸는 일은 어쩌면 이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는, 작지만 위대한 저항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엔트로피가 낮은 쪽으로, 질서를 만드는 쪽으로 에너지를 쓰는 일은 그래서 더 힘들고, 더 많은 의지가 필요한 것이겠지요.


이런 생각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과도 닮아 보였습니다. 우리 안에는 늘 두 개의 목소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지금 당장 편하자, 즐기자"라고 외치는 원초적인 목소리입니다. 뇌의 편도체가 울리는, 즉각적이고 강렬한 경보음 같달까요. 다른 하나는 "잠깐, 나중을 생각해야 해"라고 말하는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입니다. 전전두엽이 건네는, 이성적이고 신중한 조언이겠지요.


이 두 목소리 사이의 매일 같은 줄다리기. 아마 우리 모두가 겪는 익숙한 풍경일 겁니다.


하지만 이 줄다리기는 온전히 나 혼자만의 힘으로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와 타인이 정해준 '보이지 않는 틀' 안에서 살아갑니다. 마치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어딘가 불편하고 어색하지만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지내기도 합니다. 그렇게 남의 뜻대로 살다 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차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이건 내가 아닌데"라는 조용한 외침이랄까요.


그 에너지는 결국 어딘가로 흘러나와야만 합니다. 어떤 이는 그 에너지로 낡은 옷을 벗어 던지고 자신만의 새로운 옷을 짓는, 창조적인 길로 나아갑니다. 또 어떤 이는 그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자기 자신을 해치는, 파괴적인 길로 들어서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세상은 칭찬이나 비난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줍니다. 그렇게 마음속에는 자부심 혹은 열등감이라는 작은 씨앗이 심어지게 되는 것이겠지요.


결국 이 모든 것의 주인은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이 간절히 원하던 인생을 모든 자녀가 살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우리는 매 순간, 원하든 원치 않든 무언가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어렵고, 버겁고, 때로는 그 책임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 남에게 기대고 싶어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는 겸손함을 배우는 과정이 인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남의 뜻대로 흘러온 길의 끝에서, 비로소 내 뜻대로 사는 것이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깨달음은 죽음이라는 것을 가만히 마주 보았을 때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나의 기억조차 더는 내 것이 아니게 되는 그 영원한 소멸의 순간을 생각하니, 비로소 삶의 무엇이 소중한지 선명해졌습니다.


그 순간, 미처 내가 느끼지 못했던 마음속의 엉킨 실타래들이 후루룩 풀려나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시간'이라는 것도 어쩌면 두 가지가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는 시계의 눈금처럼 모두에게 똑같이 흐르는, 사회적인 약속으로서의 시간(크로노스)입니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진짜 의미 있는 시간은 따로 있었습니다. 몰입하고, 사랑하고, 온전히 그 순간을 살아낼 때, 시계의 존재를 잊어버리는 바로 그 시간(카이로스) 말입니다.


현재를 온전히 사는 그 찰나의 순간들. 그 순간들이 모여 나의 인생이라는 여정을 가득 채워가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이것이 내가 나에게 맞는 옷을 입고, 진정한 나의 시간 속을 걸어가는 방법이 아닐까, 요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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