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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발자전거 타는 법을 잊지 말거라

아버지가 말씀해주신 따뜻한 교훈

by 부자백수
아들아, 이리 와서 커피 한잔하려무나.


새벽의 푸른빛이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걸 보니, 내게 남은 아침이 그리 많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괜찮다. 삶의 마지막 모퉁이를 도는 자의 시야는 이상하리만치 맑고 평온하단다. 저기 떠오르는 해를 보렴. 내가 평생을 마주했던 해인데, 오늘따라 유난히 새삼스럽구나.


네 나이 때, 나는 늘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었단다. 내 안의 엔진은 너무도 강력해서 쉼 없이 울부짖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그저 가슴만 답답했지. 그래서 뭘 했는지 아니? 그저 주위를 둘러봤단다. 다른 녀석들이 어디로 달려가는지, 뭘 욕망하는지를 훔쳐봤지. 친구가 멋진 차를 원하면 나도 그 차가 내 목표가 되었고, 세상이 성공을 이야기하면 나도 그 성공을 내 꿈인 양 삼켰단다. 내 욕망이 아니라, 남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로 살았던 게지. 그 끝이 질투와 공허함뿐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목표가 없으면, 우리 안의 강력한 엔진은 그저 공회전만 한단다. 뇌라는 녀석이 그래. 갈 곳이 없으면 제자리에 서서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이라는 매연만 뿜어내지. 엔진은 뜨거운데 차는 한 뼘도 나아가지 못하는 그 끔찍한 기분. 그걸 견디지 못해 우리는 아무 목표나 주워 담아 일단 출발하고 보는 거란다.


그래서 인생이란 걸 한마디로 표현하면, 나는 외발자전거 타기라고 말하고 싶구나. 안정적인 네 바퀴가 아니라, 위태로운 바퀴 하나로 버티는 것. 외발자전거는 멈추면 쓰러진단다. 어떻게든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해. 그것이 우리가 ‘왜(Why)’ 살아야 하는지를 찾아 헤매는 이유란다. 그 희구하는 마음이 바로 쓰러지지 않으려는 페달질이지.


하지만 페달만 밟는다고 될 일이 아니더구나. 가장 중요한 건 균형 잡기였어. 과거라는 뒤쪽으로 너무 기울어도 안 되고, 불안이라는 앞쪽으로 너무 쏠려도 안 된단다. 남들이 박수쳐주는 오른쪽 길로만 가려 해도 고꾸라지고, 나만 옳다는 왼쪽 길로만 가려 해도 곤두박질치지. 이쪽으로 쏠리는 힘을 느끼면, 반대쪽으로 살짝 몸을 틀어주는 것. 이 끊임없는 미세 조정의 과정. 옛사람들은 그걸 중용이라 불렀더구나. 가만히 서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며 중심을 찾아가는 역동적인 춤이었지.


그렇게 평생을 페달을 밟고 균형을 잡으며 달렸단다. 나의 Why라고 믿었던 저 너머의 무언가를 향해서 말이다. 그런데 참 웃기는 건, 평생을 쫓던 그 목표가 사실은 진짜 목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게다. 마치 당나귀 코앞에 매달아 둔 당근처럼, 그저 나를 계속 달리게 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괴팍한 작가 한 사람이 자기 묘비에 이렇게 썼다지.


내가 이 세상에 충분히 오래 뭉그적거리다 보면,
뭐 이런 일 하나쯤은 생길 줄 알았지.


후회나 자책이 아니야. ‘평생을 치열하게 페달 밟고 달려왔는데, 그 종착역이 고작 이 당연한 소멸이라니, 이거 참 근사한 농담 아닌가?’ 하는 우주적 유머란다. 그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그 당근 너머의 진짜 풍경을 보게 된단다.


아들아, 우리가 이 외발자전거를 타는 땅이 어떤 곳인지 아니?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중력이라는 거대한 힘이 우리를 끊임없이 짓누르고 있단다. 모든 것은 결국 붕괴하고 흩어지려는 우주의 법칙, 엔트로피라는 거센 역풍이 평생 우리를 향해 불어오지. 숨만 쉬고 가만히 현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 두 개의 거대한 저항과 싸우며 엄청난 에너지를 쓰고 있는 거란다.


자, 이제 그림이 그려지니? 우리는 중력과 엔트로피라는 언덕길을, 위태로운 외발자전거를 타고, 쓰러지지 않으려 균형을 잡으며, 코앞에 달린 가짜 당근을 향해 필사적으로 페달을 밟고 있는 존재란다.

이러니 인생이 어찌 힘들지 않겠니.


그런데 아들아, 바로 그래서, 바로 그래서 신기한 거란다. 이 모든 물리적 법칙과 실존적 저항 속에서, 대체 우리는 어떻게 이 아침의 커피 향을 맡고, 저 해돋이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서로의 농담에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걸까. 이 모든 것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이 순간이 얼마나 경이로운 기적이냐 말이다.


행복이란, 그 모든 고통과 저항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었어.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버텨내는 와중에,
아주 잠시, 외발자전거 위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그 찰나의 순간에 깃드는 것이더구나.

나는 이제 페달질을 멈추고 자전거에서 내릴 시간이 되었단다. 하지만 네 외발자전거는 이제 막 출발했잖니. 넘어지고, 휘청거리고, 수없이 길을 잃을 게다. 괜찮다. 그저 쓰러지지 않으려 애쓰는 너머의 풍경을, 그 와중에 피어나는 아주 작은 기쁨들을 놓치지 말거라.


그것이 이 늙은 아비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의 전부란다. 자, 커피 식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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