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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Oct 18. 2021

'호주' 사회가 ‘국민 정신 건강’ 챙기는 방법은?

우울증을 관리하려면 한마을이 필요하다.

한국 신문을 보면 하루에도 몇 건씩 자살 뉴스가 올라온다. 지도층인 대학총장이 비리에 연루되어 번개탄을 피우고 이등병은 부대에서 괴롭힘을 당해 소총을 스스로에게 겨누고 강간당한 여자는 판사에게 위로는 커녕 오히려 치욕을 당한 게 가슴에 맺혀 복수를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삶을 끊는다.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삶을 지속하지 못할 만큼 절망적이고 외롭고 힘들었나 보다. 세계 자살률 1위를 달리는 대한민국의 사회 현장은 우울하고 두렵고 아프다. 나는 이제 대한민국 사회가 더 이상 뒷짐 지고 혀만 차지 말고 정말 발 벗고 나서서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챙겨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하고 싶다. 이 생각은 며칠 전 우울증 관련 세미나를 다녀오고 나서 더욱 강해졌다. 

젊은 여강사는 자신이 산불 재난 피해 가족이었다고 스스로를 밝혔다. 두 살 난 딸을 둔 엄마인데 이 세미나를 위해 멜번에서 달려왔다고. 첫 소개부터 괜히 코끝이 찡.     


내가 사는 스킵튼이란 호주 시골 작은 마을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열린 것이었다. 재난 뒤의 정신적 상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혹은 그들의 이웃으로서 정신적으로 현명하게 도와주는 방법은? 등등을 상담사와 논의하는 자리였다. 


전에도 몇 번 포스트를 했지만 마을에 큰 홍수가 두 번이 났고 이재민들이 발생을 했었다. 이를 통해 호주 사회의 재난 대처 모습을 보며 여러 번 놀랐는데, 

1.    중앙정부나 주정부의 신속한 구호대책(주로 보상금)도 놀랍고 

2.    지역 중심의 구호단체(라이온스 클럽, 적십자 등등)들이 물질적 정신적으로 관심을 끊지 않고 다시 일어설 때까지 지속적으로 도와주는 것도 대단했지만 

3.    그중에서도 새로웠던 것은 이들이 재난자의 정신건강까지 챙긴다는 거였다. 홍수가 나자 건축가 조경사 청소 전문가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자원봉사자들이 각계에서 몰려들었는데 그중에는 재난 전문 상담사들도 있었다. 10여 명이 마을에 도착해서는 두 명씩 짝을 지어 재난가정을 방문하고 그들이 정신적으로 안정적인지 전문적 도움이 필요한지를 점검했다. 그들은 상담내용을 꼼꼼히 정리해 담당 기관과 후속조치를 설계하는 등 바쁘게 일하고 마을을 떠났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몇 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이런 세미나가 마을에서 열린다니 또 한 번 놀라웠다. 어쨌든 무료이고 점심도 주는 데다 이재민이 된 이웃이 많으니 나도 좀 배워야 할 것들이 있을 것 같아 세 시간에 달하는 세미나에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갔다. 

열댓 명 가량의 주로 여인들이 모였다. 그날 배운 내용은 매우 알찼다. 어찌 보면 이미 알고 있는 상식적 내용인 부분도 있었지만 막상 내 옆에서 지금 고통받는 이들과 관계된 일이라니까 더 피부로 다가오는 것 일 수도 있었으리라. 어쨌든 전문가가 통계와 사례를 앞세워 하나씩 설명을 하면 듣는 이들이 저마다 자기가 겪은 경험, 마을에서 구조활동 중에 일어났던 보람찼거나 불미스러웠던 일들을 나누며 세미나는 열기를 더해갔다. 흥미로운 내용도 많았고 상담사가 예를 들을 때마다 마을의 누군가가 머릿속에 지나가기도 했다. ‘아…. 그 사람이 이런 케이스였던 거구나.’ 같은 뒤늦은 이해도 따랐다. 


재난 뒤에 이재민들이 저마다 받은 보상을 비교(보험사나 정부로부터)하며 질투하거나 실의에 빠지기도 한다는 사실, 외부 지원은 따뜻한데 피해 가정 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 본의 아니게 사생활이 까발려지고(도와준답시고 이 사람 저 사람 드나드는 것)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부담감(나쁜 의도가 아니더라도)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는 것, 자살의도를 의심케 하는 자가 있다면 절대로 에둘러 말하거나 시간을 끌지 말고 바로 그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너 지금 나쁜 생각하는 거냐?’고 물어봐 줘야 한다는 것. 그리고 즉시 담당기관에 연락해야 한다는 것을 이날 새롭게 배웠다. 어떤 말이 상처가 될 수 있는지, 아닌지 같은 구체적인 실전 상담도 시나리오대로 실행해봤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서도 여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배운 것을 점검하고 본인과 이웃들 정신 건강을 세심하게 살피며 의견을 나눴다. 이렇게 까지 고민하고 준비하는 이웃과 시회가 있어 안전하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3시간 세미나 중간중간 몸을 비틀며 낙서를 한 아들.^^ 그래도 한 구석에서 조용히 놀고 차려논 점심도 맛있게 먹으며 즐기고.

호주엔 우울증 환자도 많고 이에 대한 인식도 사회 저변에 확산되어 있다. 십여 년 전 호주에 처음 왔을 때 주변에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많아 놀랐다. 한동안 모임에 안 보이던 여인이 다시 나타나 근황을 물어보면 ‘그동안 우울증을 좀 앓았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어떤 남자가 갑자기 눈이 풀리고 이상한 차림으로 나타나 ‘무슨 일 있냐?’고 물으면 우울증 약을 복용하면 눈이 좀 풀린다고 설명을 했다. 얼마 후 다시 멀쩡하게 나타났지만.  

그땐 그 모습들이 너무 낯설어서 한국인들끼리 모이면 ‘도대체 호주엔 왜 이리 우울한 사람이 많은 거냐’고 성토를 하면서 ‘개인주의와 사생활 강조 때문에 속 얘기를 나누고 살지 못해 그런 거라’고 나름대로 분석하고 ‘고민 좀 얘기하려면 돈 내고 상담사를 찾아야만 하는 삭막한 선진사회’를 비웃곤 했었다. 그런데 어찌 된 게 요즘은 한국사회에 더 우울한 사람들이 늘어났고 자살자도 더 많다. 그런데도 사회적 안전장치는 수요에 맞게  발전하지 못한 것 같아 우려된다. 


이들을 자살로 몰아넣은 근본적 사회문제도 짚어야 하지만 동시에 피해자 주변 가족들, 피해자와 동시대 같은 환경 안에 살고 있는 이들이 제2, 제3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사회 전반적 우울증 혹은 자살 대비 안전 & 교육 시스템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 (우울증은 빠르게 옮겨가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나는 한국사회에서 삶의 경험이 많은 고연령자들이나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중산층 여인들이 이런 문제에 앞장서서 단체를 구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문화나 자기꾸밈 자녀교육에 열을 올리는 것도 좋지만 세상이 그게 다는 아니니까. 


참고로 이날 세미나를 주관한 Beyond Blue라는 단체는 호주 전국에 걸쳐 있는 비영리 기관으로 우울증 관련 상담과 교육 홍보를 전문으로 한다. 제프 케네쓰라는 빅토리아 전 주지사가 십여 년 전 창설했는데, 공직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우울증을 앓았던 그가 자신과 같은 고통을 나누는 이들을 염려하며 만들었단다. 호주 정부와 빅토리아 주정부는 각각 해마다 2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이 단체에 지원하고 있다.(2011/6/1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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