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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Dec 07. 2021

호주 교사들이 '선물 챙기는 법'.

크리스마스 즈음엔 선물이 많이 오고 가는데, 학교도 학기를 마치는 때라 학생과 학부모는 교사의 선물을 종종 고민하게 된다. 학부모로서 자녀의 담임선생 선물 챙기기는 주는 이도 부담이 될 수 있고, ‘뇌물이냐 선물이냐’의 경계가 애매하기도 해서 받는 이도 조심스러울 수 있다. 그런데 우연히 호주 초등학교에서 선물을 마다하지 않고 다 받아서 즐겁게 챙기는 교사의 모습을 보고 나름 여러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적어볼까 한다. 


내가 일하는 초등학교의 3학년 교실. 담임선생의 책상엔 12월 초부터 작은 선물 꾸러미들이 하나씩 둘씩 쌓여갔다. 며칠이 지나도록 무심하게 쌓여만 가는 선물들을 보며 내심 저 안엔 무엇이 들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사실 충분히 짐작이 가능했고 추후 확인 결과 거의 예상 대로였다.) 저 선물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더 궁금하기도 했다. 


드디어 종업식 날, 전날 연말 콘서트(학예회)도 다 끝내고 아이들은 사복을 입고 홀가분하게 등교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교실바닥에 둥그렇게 모여 앉도록 하더니, “이제 선물을 뜯어봐야겠다.”고 선포했고 아이들은 흥분과 환호를 보내며 들썩였다. 

“선생님, 초록 포장지, 저것부터 뜯어보세요, 제가 드리는 거예요.” 뭐, 이런 얘기를 하면서. 

중년의 여선생은 하나씩 선물을 들어 올려 누가 보냈는지 카드를 읽었고 포장을 벗겨 내용물을 확인했다. 

“어머, 샤워 젤이네. 어디 냄새 좀 맡아보자. 라벤더 향이 참 좋아. 케이트야, 고맙다.”선생님은 아이에게 키스를 보냈다. 

그리곤 또 다른 선물을 들고 다시 카드를 읽고 포장을 뜯었다.”이야, 초콜렛이다. 무슨 맛이 있는지 읽어볼까..” 그녀는 상자 뒤에 적힌 초콜렛 맛 하나하나를 읽으며 즐거워했다.(호주 사람들은 상자 안에서 초콜렛 하나 골라 먹을 때도 설명서를 읽어가며 참 신중하게 선택한다. 포레스트 검프에 나오는 탐 행크스처럼. 무슨 인생 중대사 결정이라도 하듯이.) “얘들아, 헤이즐넛 요거 맛있을 것 같지 않니? 난, 밀크 초콜렛도 좋아하는데..ㅎㅎ 가만, 이거 뜯어서 다 같이 나눠 먹어 볼까? 하나 들 셋.. 아이고 숫자가 안 맞는구나. 그냥 들고 가야겠다.” 

“선생님, 집에 가서 가족이랑 나눠 드세요.” 

“그래, 로키야. 고마워. 잘 먹을게.” 선생님은 또 손키스를 날리고 윙크를 했다. 


그렇게 아이들 사이에 앉아 20개가 넘는 선물을 하나씩 하나씩 카드를 읽고 포장을 뜯고 내용물을 확인하고 대화를 나누며 3-40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선물은 대략 초콜릿이나 집에서 직접 구운 비스킷 사탕 종류가 있었고 양초나 핸드크림 열쇠고리 정도였다. 조금 큰 선물이라면 수공예로 만든 듯한 화병과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만한 액세서리 혹은 작은 스낵 접시 세트 등등이 있었는데 내 생각에 3만 원 이상을 넘는 건 없어 보였다.ㅎ 


선생님은 선물로 받은 젤리빈 봉지 하나를 뜯어 돌렸는데, 아이들은 콩알만 한 것을 딱 한 개씩만 꺼내 먹은 뒤 남은 봉지를 잘 접어 상자 안에 다시 담았다. 평소 같으면 혼자 한 봉지를 다 먹을 듯도 한데, 선생님 꺼라며 매우 예의를 갖추는 것이었다.ㅋㅋ 


마침내,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도 너희에게 준비한 선물이 있다”며 선물 꾸러미를 아이들에게 돌렸다. 한 명씩 받아 포장을 뜯어보니 남자아이들은 작은 고무공, 잡다구리 한 학용품 약간, 여자아이들은 플라스틱 목걸이 같은 것들이었다. 


내 경우엔 아들 담임한테 고소미 과자 한 상자를 했고(5천 원가량, 약소하지만 독특하니까 ㅋㅋ, 또 호주 사람들이 매우 좋아한다.) 아들은 손가락 만한 공룡 화석 세트 장난감과 지우개를 받았다.  


그런데 이런 모습들을 옆에서 앉아 지켜보다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렇게 주고받으니 참 따뜻하고 좋구나…’ 같은 느낌들. 

또 불현듯 어린 시절의 어떤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느 엄마가 학교를 다녀간 뒤 선생님이 확 달라져  뒷자리에 앉아있던 아이가 시력이나 앉은키와 상관없이 앞자리로 옮겨지고, 똑같이 손을 들어도 부쩍 더 자주 선택되는 상황들. 그 어렸던 우리들은 뭔지 모를 의혹을 갖게 됐고, 조금 더 자라 어른들의 세상을 알고 난 후엔 씁쓸해지는 것들 말이다. 그 엄마는 무엇을 건넸을까? 그 선생은 무엇을 받았던 걸까? 왜 뻔한 걸 쉬쉬했던 걸까? 


참으로 무서운 건 무수한 세월이 흐른 뒤에 그 교실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수업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무슨 일이 있었던 지는 오히려 선명하게 떠올린다는 것이다. 지금의 교육 현장은 모르겠지만, 내가 자랐던 시절은 그랬었고, 그때의 아이들이 어른으로 자란 뒤 보고 배운 데로 현재의 사회를 운영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한국사회에 부정부패 뇌물과 접대가 사라지지 않는 근본 원인은, 그렇고 그런 교육에 있었던 것이라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깨달음이었고 그것은 어느 하루에 법을 강화하고 구호와 캠페인을 펼친다고 해서 쉽게 달라지지 못하는 어떤 것들이 아닐까란 생각이 이날 좀 들었다.  (2012/12/21 씀)

초등학교 교실, 교사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바닥에 앉아 수업을 듣는다. 종종 원으로 둘러앉아 토론을 하기도 한다.
유치원이나 학교 마지막날엔 엄마들이 한접시씩 만들어 온 단것들을 놓고 학생 학부모 선생님들이 모두 모여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 그나저나 내가 들고간 꼬깔콘의 인기를 보라.(완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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