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7월 2일) 에이지 신문을 읽다가 영부인에 관한 재미난 기사를 읽어 나눠볼까 한다. 호주엔 대통령 대신 수상이 있고 영부인의 존재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아 한국과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사회 안에서 최고 정치인의 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다른지 이해해보는 것도 좋을 듯해서이다.
기사의 내용을 대충 요약해보면 이렇다.
1. 마드리드에서 나토 회의가 열리는 동안 스페인 레티지아 여왕은 각국 정상들의 배우자를 극진히 대접했다. 왕궁 가든, 왕립 유리 공장, 뮤지엄 등 일반 여행객들은 꿈도 못 꿀 환상의 코스였다. 질 바이든 미국 영부인, 룩셈부르크 최초의 동성애자 수상의 남편인 고티에 데스티네이 등이 영접을 받았다.
2. 새로 선출된 알바니 호주 수상의 파트너(결혼을 한 배우자가 아닌 동거인)인 조디 헤이든도 국제무대에 처음 나섰는데 다행히도 행복하고 편안해 보였다. 수상의 입장을 곤란하게 할 만한 1년 전에 쓴 블로그 글이(국경일 날짜 변경에 관한) 미디어에 노출되어 가십에 오르내리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알바니 수상은 19년간 함께 살던 아내에게 2019년 1월 1일 이혼당한 뒤, 곧 헤이든과 데이트를 시작했다. 알바니가 야당 지도자로 있을 때도 헤이든은 일을 하느라 자신의 집에서 살았고, 수상으로 임명된 뒤에도 관저에서 살림을 합칠지는 아직 알려진 바 없다. 최근에 NSW 홍보 관련 일을 시작한 걸로 봐서는 관저에서 풀타임으로 함께 살 것 같지는 않은데 호주 국민들은 이들의 관계가 '이혼하고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21세기 호주인들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며 반기는 분위기란다.
3. 미국의 영부인이 퍼스트레이디라는 공식 직함을 가지고 백악관 공식 비서팀의 보좌를 받는데 비해 호주는 그저 수상의 배우자일 뿐 공적인 기대는 없다. 그러나 루시 턴불 전 시장 부인은 '나는 보좌관도 없고 가이드북이나 지침도 없었다.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분명히 알려주는 메뉴얼이 있었다면 내 자리가 좀 더 편했을 것이다'고 회고했다.
4. 역사학자 다이언 랭모어가 쓴 '10명의 호주 수상의 부인들' 책에 따르면 대부분의 수상의 자서전에는 그들의 결혼 생활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단다. 1960년대까지 대부분의 수상 부인들이 조용히 살림하고 자녀를 양육하던 것에 반해 패션사업을 크게 하던 적극적 성격의 자라 홀트는 영부인이 되자마자 관저를 개조하고 국빈들을 초대하여 호스트 하며 새로운 역할을 수행했다. 재클린 케네디 미 영부인이 부각되면서 호주에서도 영부인의 역할을 공적으로 디자인해보자는 논의도 있었는데 가장 어려웠던 딜레마는 '어떻게 하면 활동적이고 유용하면서도 과도하게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였단다.
5. 미디어 비평가이자 칼럼니스트였던 마가렛 위틀렘 전수상 부인은 '나는 누군가의 장신구로 살고 싶지 않다'고 저항했다. 헤이즐 호크 전수상 부인은 아동학대 가정폭력 에이즈 관련 40여 개 단체의 이사와 후원자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전 지구적 칭송을 받는 업적을 남겼다.
6. 그러나 요즘 사회의 분위기를 보면 수상 부인들은 자신의 독립적인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테레사 레인은 자신의 건강 사업체를 행여나 잡음에 휘말릴까 호주에서는 처분했지만 영국에서는 오히려 확장했다. 정치권에 있던 턴불 부인은 남편이 수상이 되자 아예 직업을 바꿨다.
7. 정치인들은 종종 사생활을 강조하며 배우자와 아이들을 존중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특히 선거기간이 되면 부드러운 이미지를 얻기 위해 가족을 전략적으로 이용한다. 그러나 남성 정치인들이 배우자를 끌어들여 친숙하고 자상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데 반해 여성 정치인들은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어떻게 배우자의 내조를 받고 있는지 등의 불편한 질문을 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들의 배우자와 아이들을 잘 공개하지 않는다. 호주 사회는 아직까지도 남성에게는 그렇지 않으면서 여성에게는 배우자를 위한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읽은 뒤 내가 했던 생각은,
1. 지지하는 정당이나 대통령도 없고 옹호하고 싶은 영부인은 더더욱 없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편견 있는 사회 안에서, 남성 위주의 정치권 안에서 살아보려고 꽤나 애쓰기도 하겠구나 생각을 해본다.
2. 동성애자 부부가 정치인이 되고, 여성 정치인이 리더가 되는 경우가 느는 세계적 분위기를 보면 조만간 국제적 영부인 모임이란 의미 자체가 재정의 되거나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3. 한때는 육아하고 살림하는 아내를 가정에서 해방시켜 여성의 사회활동을 응원한다는 진취적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지만, 여성의 사회활동이 일반화된 요즘은 아내의 경력도 방해하지 말고 존중하자는 분위기가 대세이다.
3. 나라마다 시대마다 영부인을 향한 기대치는 참으로 다르다. 1+1 도 아닌데 메뉴얼을 만들어 역할을 요구하는 게 가당하기나 한가? 그렇다고 양심껏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기회를 주기도 어렵다. 한국 정치권의 일반적 부패지수도 높고 현 영부인은 도덕성(학위 경력 위조, 주가조작 혐의)에도 오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그냥 없애는 것이 급진적인 듯 하지만 사실은 가장 깔끔하고 현대적인 추세가 아닌가 싶다.^^
누구 돈으로 얼마에 샀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은 조디의 원피스. 옆집 여인 같은 친근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