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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Sep 24. 2024

호주, 애도에 집중할 수 있는 조건.

장례식에서 유족을 위로하는 방법은?

호주의 장례 절차는 전반적으로 간단하다. 사망 신고서를 떼고 장례일까지 임시로 시신을 안치해 놓는 일은 장례업자가 일임한다. 유족들은 조용히 집에서 마음을 가다듬으며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장례 일정을 정하고(주로 일주일쯤 뒤 심지어는 한 달 뒤) 주변에 부고를 알린다.

장례 준비를 히는 중 손녀 생일이라도 되면 온가족이 모여서 축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덕분에 시름잊고 하루 잘 보냈다고 감사해한다.

장례일이 오면 지인들은 편안한 복장에 빈손으로 참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검은 옷을 입는 전통도 있지만 많이 희석됐고 심지어는 유족들이 고인이 좋아했던 특정 색상이나 스타일의 옷을 입고 오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화려한 프린트의 하와이언 셔츠를 입고 아들 친구 아빠의 장례식에 간 적도 있다. 무엇을 입는가는 애도와 별 상관이 없다. 고인도 자기가 평소입던 옷을 입고 관 속에 누워있다.

가까운 지인들은 한 손으로 가볍게 들 수 있을 크기의 꽃다발을 들고 오는 경우도 간간이 있고 위로의 메시지가 담긴 카드를 꽃과 함께 전달하거나 우편으로 보낸다. 카드 파는 가게에 가면 생일 축하 카드만큼 흔하게 다양한 디자인의 장례식용 카드를 구할 수 있다.


위로의 메시지가 담긴 다양한 카드.

장례식장 입구엔 고인의 사진 몇 장과 방명록 순서지 정도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을 뿐이다. 요란한 꽃장식도 아무개의 이름이 적힌 거대한 리본도 부조금을 받는 경우도 없다. 간혹 어떤 유족들은 꽃이나 카드를 보내는 대신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그가 지지했던 특정 단체나 기관에 기부를 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

장례식장 앞쪽에 관을 놓는 게 보통인데, 그리스 등 특정 민족들은 관 뚜껑을 열어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고인을 바라보는 게 너무 슬프다며 관을 식장에 들이지 않고 바로 묘지로 보내는 대신 상징적으로 꽃장식만 놓기도 한다.

한 시간 남짓 예배 형식의 장례식이 끝나면 가벼운 음식과 함께 뒤풀이를 한다. 손가락으로 집어먹을 만한 작은 크기의 파이나 샌드위치 2-3가지, 케잌류 2-3가지 정도에 커피 한잔 마시는 정도다. 한식 메뉴로 구성하자면 김밥에 만두, 동그랑땡 한 접시씩 그리고 떡과 과일 약간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선 채로 조각 음식 몇 개 집어먹으며 간만에 모인 가족이나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분위기는 의외로 밝고 따뜻하다. 장례식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이 여타의 사교모임과 비슷하다. 울고 웃는 한 시간 정도의 티타임이 끝나면 같은 날 묘지에 함께 가기도 하고 예약된 다른 날에 화장터에서 직계가족만 따로 모이거나 한다.


3-50명 정도 모이는 작은 규모도 흔하다. 물론 한 마을에서 오래 살아 지인이 많거나 대가족인 경우 2-3백 명이 모일수도 있겠지만.


절차와 형식이 간단해서 그런지 유족들도 추모객도 덜 바쁘고 여유롭다. 고인과의 마지막 모임에 다 같이 모여 두어 시간 애도에 집중하며 추모하고 위로를 나누는 의미 있는 시간으로 모두에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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