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적이지 않은 위엄과 자유에 대하여.
티브이로 저녁 뉴스를 보며 밥을 먹다가 눈이 떠졌다. 멜번 시내 중심에 있는 NGV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빅토리아주 국립 미술관)에서 쿠사마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관람객 수로 신기록을 세우며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 이 소식을 왜 이제 알았지? 끝나기 전에 얼른 가봐야겠다. 온라인으로 서둘러 표를 예매하려다가 일 년 회원이 되면 무료 입장권을 준다기에 회원권을 덜컹 사버렸다.
이틀 뒤 찾은 미술관은 방학(부활절 방학)이라 그런 건지 작가의 인기 때문인지 전시회의 끝물이라 그런 건지 입구며 로비에서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미술관 로비 중앙엔 그녀의 대표작인 땡땡이 노란 호박이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10여 년 전 태즈매니아 섬을 여행하다가 들른 MONA 갤러리에서 그녀의 전시를 처음 봤던 기억이 났다. 쿠사마에 대해 대충 떠올랐던 것들은 칼라풀한 점들로 그리는 여러 작품들이 그녀의 정신병과 환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우연히 크게 명성을 얻었지만 남은 인생을 정신병원에서 살아가며 온 세상에 점만 찍고 있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는 70년대부터 이미 예술의 본고장인 뉴욕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경력을 쌓아가던 전문 예술가였고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예술로 승화시켰던 멕시코 출신 세계적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와 교류하며 작품의 영감을 주고받을 만큼 일찌감치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녀의 삶의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미술관 벽면에 나열되어 있었지만 더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 예전엔 전시회를 다녀오면 받아온 브러셔를 꼼꼼이 읽고 작가의 이모저모를 찾아보고 나름 자료를 정리하여 글을 썼는데 이제는 왠지 그러고 싶지 않다. 내가 깜박하고 안 받아온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인쇄된 브로셔는 아예 그곳에 없었다. 클릭만 하면 AI가 작가의 일대기며 작품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주르륵 정리해 줄텐데 '내가 왜?' 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사로운 지식이나 얕은 교양에 연연하지 말자, 맞던 틀리던 내 느낌에만 주목하는 글을 쓰는 것이 이 시대엔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나의 게으름을 또 포장해 본다.
쿠사마의 초창기 작품들을 처음으로 봤는데 대체로 기괴하고 전위적이고 어두웠으며 역겹기도 했다. 반들반들한 표면에 원색의 땡땡이 점들이 동화처럼 예쁘고 몽환적인 후기의 작품들과는 딴판으로 달랐다. 존 레넌의 부인이었던 전위 예술가 오노 요코가 잠시 생각났다. 그 시대의 일본 여류 예술가들은 왜 뉴욕에서 이런 작품 활동들을 한 거지? 전후 세대의 아픔 때문인가? 개인적 삶의 고통이 그리도 컸었나? 이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몇 개의 방을 지나자 본격적으로 점의 세계가 나타났다. 노란 방, 빨간 방, 샹들리에 방, 거울방... 각기 다른 주제의 방들을 체험하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했다. 어떤 방들은 제한 시간이 있어서 가이드의 안내대로 들어갔다가 재빨리 사진 몇 장 찍고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방마다 색다른 세계가 있어 긴 줄을 마다하지 않고 섰고 짧은 체험 시간도 불평하지 않았다. 신기한 발상들로 지루하지 않았고 웃음이 절로 나올 만큼 어떤 작품들은 재미있었다. 아무리 번잡하고 인파가 몰려도 각자 작품에만 몰두해 자기들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작품마다 흡인력이 대단했다.
비디오 아트 속에서 그녀는 노래도 부르고 말도 건다. 분위기가 묘하다. 쿠사마는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확고했고 별났다. 노란 호박에 점만 찍는 예쁘고 귀여운 할머니는 아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도록 여러 개의 방을 돌고 나오다가 어린이 전시장도 들렀다. 이곳은 티켓이 없어도 누구든 갈 수 있도록 대중에게 개방되어 있다. 입구에서 가이드가 건네준 몇 개의 붉은 꽃을 아무 데나 붙이면서 아이들이 놀았다. 침대도 벽도 피아노도 붉은 꽃으로 덮여 있었다. 나도 그 위에 몇 송이를 더 올렸다.
관람을 마치고 나온 뒷마당은 아이들 천지였다. 미술관인가, 놀이터인가..기어오름이 허락된 작품을 제멋대로 탐구하는 아이들. 아들이 어릴 때 이곳에 도시락을 싸들고 와서 놀던 추억들이 떠올랐다. 로뎅과 헨리 무어의 조각상 사이에 철퍼덕 주저앉아 김밥을 우걱우걱 먹으며 이 많은 자유를 허용하는 미술관에 감동을 받고는 했다. 권위적이지 않으면서도 대작가들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던, 금지하지 않지만 벗어나지 않는 질서가 유지되던, 그래서 부담 없이 아이 손을 잡고 수도 없이 드나들었던 이곳은 여전히 밝고 활기찼다. 올해 아들은 대학생이 되었다.
그러고보니 이 미술관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다. 20여 년 전 워킹 할러데이로 이 곳에 처음 왔을 때, 되는 일도 없고 영어도 늘지 않고 오도 가도 못하며 불안과 좌절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멍하니 작품을 앞에 두고 호흡을 가다듬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살아 본 날이 얼마 안되서,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아서 불투명했던 미래 였는데..그렇게 내 삶을 위로 받기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들락이다 보니 어느새 중년의 세월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미래의 부피가 줄어서인지 투명한 것 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불안은 줄었다. 이젠 슬슬 잘 늙는 법, 저속 노화를 생각하며 살 때가 왔다. 영양제 사 먹을 돈으로 예술을 감상하며 살고 싶다. 작품 사이를 부지런히 걷다 보면 병원 갈 일도 별로 없는 노후가 되지 않을까.ㅎㅎ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나이 탓이겠지만 그래도 언제고 찾아 올 미술관이 이 도시에 있다는 것이 좋다. 멜번 시내 한복판의 NGV는 긴 세월을 함께 해온 친구 같은 나의 최애 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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