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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말라위, 재래시장에서 바나나를 산다는 건..

사람 사는 이야기 2

by 몽기

어느 날인가, 블렌타야에서 2시간 즈음 떨어진 니노 미션 여고를 방문하는 날이었다. 팀원 7명, 우리를 가이드하기로 한 현지 교단 스텝분 둥 8명이 두대의 차를 나눠 타고 길을 나섰다. 우리에겐 추가된 미션이 하나 더 있었다. 니노 여고와 자매결연을 맺은 멜번의 PLC 여학교(앞에서 언급했던 말라위로 학교 캠프를 오던)에서 약간의 기부금을 건네며 식재료를 사서 기숙사 학생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을 했었었다. 우리는 의논 끝에 소고기 25킬로와 바나나 250개를 사기로 했고, 가이드 분이 안내하는 재래시장으로 따라 들어서게 됐다.

핸드폰등 전자기기 가게, 헤어살롱, 사탕수수 가게.
비닐 봉지 노점. 신발 가게, 새옷 가게.

말라위는 어디를 가나 노점이 늘어서 있고 여기저기 정신없이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데 차를 타고 지나다니며 봤을 뿐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 장을 본다는 건 상상도 못 했었다. 입구부터 구린 냄새가 난 건 산 닭을 닭장에서 바로 잡아 목을 쳐 파는 가게 때문이었을 거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온갖 잡상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 그 규모에 놀랐고 혼란스러움에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이 글에 올린 대부분의 사진들은 차를 타고 가면서 노점이나 시장을 찍은 것들이고 실제로 시장 안에 들어섰을 땐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었다.

숲속에 펼쳐진 주말 장날, 헌옷을 쌓아놓고 팔아도 나름 낭만있어 보였다.
무거운 짐을 머리에 지고 다니는 상인들.

맨 오른쪽 가게 바나나를 몽땅 샀다. 마른 바나나 잎이 쌓여 있는 모습.

말라위엔 바나나 나무들이 많이 있고 흔한 과일인데 노랗게 완전히 익었을 때 따서 껍질 전체가 까맣게 썩을 때쯤 먹는 듯했다. 달고 맛있다. 가이드는 여러 가게를 지나치더니 특정 바나나 가게 앞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단골인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 몰랐다. 흥정이 시작됐다. 가이드와 주인장은 10번도 넘게 개수를 세고 또 세고 긴긴 이야기를 이어갔다. 도대체 무슨 대화를 그리도 오래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아주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는 것처럼 조곤조곤 말하고 상대를 경청하고 다시 의견을 내놓다가 200개가 넘는 바나나를 다시 처음부터 세기를 몇 번씩 반복하는 것이었다. 개수가 충분치 않아 옆가게에서 몇 덩이를 얻어 오면 다시 대화가 이어지고 또다시 세기를 반복했다.

그냥 무게를 재거나 개수를 세서 가격을 흥정하고 가게를 다 털 정도의 큰 손님이니 좀 깎거나 몇 개 덤으로 주고 끝나면 좋겠건만 그들은 심각하게 진지했고 낮은 목소리로 점쟎게 대화를 이어갔다.

학교 농장, 혹은 누구집 뒷마당에도 바나나 나무가 있었다. 자줏빛 꽃은 달달한 열매와는 전혀 달리 고혹적으로 아름답다.

그래서 내가 혼자 추측해 본 그들의 대화는 이런 것이었다.

가이드: 이 바나나는 얼마요?

주인장: 큰 건 50원, 중간은 40원, 작은 건 30원입니다.

가이드: 이 한 덩이를 다 사면 얼마요?

주인장: 가만있자.. (바나나를 세며) 큰 거 다섯 개, 중간 거 여섯 개, 작은 건 세 개.

가이드: 어디 한번 봅시다. 이쪽 거는 큰 걸로 치기에 좀 작은 듯한데, 중간 크기로 넣으면 어떨지..

주인장: 이 크기를 중간으로 넣으면 우리가 남는 게 없으니.. 대신 이쪽 중간 걸, 작은 애로 치면 어떨까요?...................................................................................................................................................................

그렇게 하나하나 섬세하게 살펴가며 개수를 세고 크기를 따지고 가격을 흥정하려니 긴 대화가 이어진 것이 아닐까. 사는 게 궁핍하니 작은 일도 끝까지 서로 손해보지 않게 차분히 조율하는 것인가.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그들은 저울도 계산기도 없었다. 숫자를 끄적일 메모장도 펜 한 자루도 없었다. 느린 산수로 암산을 하고 서로 기억을 보태며 바나나를 세고 계산을 한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쌓아놓은 바나나를 싹 다 팔았으니, 오전부터 하루 장사를 잘 마친 그는 좋기도 하련만 오히려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계산을 제대로 한 건지 확신이 안 드는 건가? 무리하게 흥정했을 리가 없는데 나도 모르겠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냉장고 없는 정육점. 포장을 해서 차 트렁크에 실은 고기.

우리는 소고기를 픽업하러 정육점으로 갔다. 그렇다. 바나나를 사러 가기 전 정육점에 들렀었고 고기를 찜하기 좋게 썰어 포장해 달라고 주문을 해놓은 터였다. 어느 부위인지는 모르겠지만 고기와 살이 같이 붙어있었다. 냉장고도 없이 진열대에 늘어놓은 고기를 보고 맘에 드는 대로 고르는 게 시스템이었다. 지금은 겨울이라 날이 선선하니 그렇다 쳐도 여름엔 40도를 넘나드는데 어떻게 장사를 하는 건지.. 그러고 보니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수시로 단전이 되고 냉장고도 드문데 가정이나 식당에서 어떻게 식재료를 관리하는 건지 모를 일이다. 실시간으로 공급하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느라 그렇게 많은 곳에 장이 서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건가 짐작해 본다.

닭고기든 소고기든 대체로 질겼는데 이것도 특별한 날이나 있는 집에서만 구경할 수 있는 먹거리일 게다.

메마른 산길, 소떼를 모는 목동을 보다.

음료수를 한 병 사서 작고 긴 봉지에 몇 개씩 소분해 파는 소녀들도 있었고 1-2리터 기름 한 병을 옆에 놓고 손가락만 한 비닐봉지에 나눠 담아 파는 청년들도 있었다. 딱 한입 마실 수 있는, 딱 한 끼 요리할 수 있는 분량인 듯하다. 그 옆엔 옥수수나 카바나 고구마를 삶아 파는 행상들도 있고, 헌 옷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파는 집도 뒤엉켜 있었다.

남루한 삶의 현장은 왠지 좀 처연했다. 이렇게 죽도록 일해서 겨우 한 끼 입에 풀칠하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도대체 삶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내 한 몸 건사하는 게 이리도 벅차고 구차한 인생이라니.... 좀 더 활력 있고 웃음도 여유도 있는 시장을 보고 싶었는데 꾸역꾸역 사는 듯한 모습이 많아 안타까웠다.

그런데 문뜩 아주 어릴 적 생각이 났다. 학교 앞 문구점에선 껌 한 통을 뜯어 낱개로 팔고는 했었다. 그 옆 떡볶이 집에서는 10원을 내고 이쑤시개로 떡을 두 개씩 찍어먹던 기억도 있다. 한 접시를 다 사서 먹는 건 사치 같았던. 국자에 설탕 한 숟갈 받아 녹여 먹던 달고나는 얼마였었지? 그 시간이 잘 지나가서 다행이란 생각이 지금에서야 들다니...


니노 학교가 있던 산간 지역은 짚단으로 초가지붕을 올려 산다. 독특한 산바위. 소달구지.

우리는 그렇게 장보기를 마치고 조금은 다른 풍경의 비포장 시골길을 달려 니노 학교에 이르렀다. 강당에 모인 수백 명의 학생들은 우리를 보고 좋아라 했다. 우리가 멜번에서 부터 꾸려간 학용품등의 선물을 풀자 비명을 질렀다. 교직원들에게 바나나와 소고기를 전달했을 때 그들은 깊은 마음으로 감사해했다. 어린 학생들의 밝음이 좋았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이 인생들도 그럴 것이다.


블렌타야 근처의 포목점. 특유의 패턴과 직조방식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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