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뒷산 오르는 게 이럴 일인가?
말라위 출국을 하루 앞두고 짐을 꾸리거나 쇼핑등 소일을 하며 쉬엄쉬엄 보내려 했다. 그런데 지인이 하루 월차를 냈으니 같이 산에 오르자고 팀으로 연락을 해왔다. 얼마 전 C목사님 댁에서 식사를 하며 마당 뒤로 펼쳐져 있는 동네산이 보기가 좋다 했더니 그분 딸이 기회가 되면 시간을 내서 같이 올라보자 했던 터였다. 팀원 중 6명이 손을 들었고 두대의 차를 타고 멀지 않은 산 입구 약속 장소로 갔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일도 하는 워킹맘 지인은 아빠 유학 찬스로 따라와 호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했다. 양쪽 문화를 잘 이해하는 그녀는 여행 내내 환전이나 병원을 찾는 일 등등을 도우며 세심하게 팀을 챙겨줬었다. 어찌 보면 말라위 상위 부유층에 속하지 않을까 싶은 그녀의 삶은 나름 풍요로워 보였다. 아이들 방학이면 온 가족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옆나라 콩고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단다. 소수겠지만 그런 부류도 있는 것이다.
뒷산의 이름은 '미추루 자연 보호소'였다. 입구 매표소에 갔더니 가이드를 동행해야 한다며 그가 올 때까지 30분을 기다리라고 했다. '뒷산 오르는데 무슨 가이드..' 궁시렁거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며 기다리기로 했다.
바로 옆에 체험학습장 비슷한 허름한 건물이 있어 들어가 보았더니 이 산에 사는 여러 동식물들의 사진들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었는데 오랜 시간 관리를 안 한 듯 먼지와 얼룩이 가득해서 자세히 볼 맘이 생기지 않았다. 얼핏 보니 하이에나나 자칼등 맹수들도 많이 사는 듯했다. 대충 둘러보고 서둘러 나왔다. 듣자 하니 학생들이 텐트를 들고 와 캠프를 하기도 한단다. 말라위에도 그런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있나 보다. 하긴 이곳에도 골프장이나 수영장이 있고 여러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는 컨츄리 클럽도 둘러본 적이 있다. 빈국의 부자들은 또 그들대로 부유하게 사는 법이 있는 듯했다.
잠시 뒤 나타난 가이드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가녀린 여인이 군복을 풀어헤쳐 입고 나타났다. 긴 엽총을 한쪽 어깨에 메고. 우리 일행은 너무 놀라 무슨 일이 있는가 싶었는데 그녀는 태연하게 맹수들이 출몰할 수 있어 공포탄을 쏘는 용도로 총을 소지하는 거라고 안심시킨다. 복장과는 달리 나긋하고 조용하게 말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소녀다. 한국 사회의 고정된 이미지로 해석해서 껄렁하고 터프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티브이에서 봤던 아프리카 자연 다큐멘터리의 가이드들도 한결같이 이런 복장이었던 것이 떠올랐다.
산은 입구부터 가팔랐다. 말라위 최고봉 물란지(3000미터)를 산책하듯 가볍게 올라 별걱정 없었는데 해발 1470미터의 동네 뒷산은 오히려 바위도 많고 야생의 잡초와 나무가 울창해 잡담 없이 낑낑대며 올라야만 했다.
원시의 자연은 쨍하게 아름다웠다. 푸드덕 도망가는 토끼 비슷한 야생동물을 보았을 뿐 엽총을 쓸 일은 없었다. 다행이다. 소녀 같은 가이드가 열일하지 않아도 되어서.
산을 오르내리며 땔감을 잘라 모으는 나무꾼들을 만났다. '벌목이 금지된 곳이니 나무를 그만 베라'며 단속하는 것도 그녀의 역할인가 보다. '허가증을 받았다' '조금만 벨테니 그냥 지나가달라'며 사정하는 이들도 있다. 이 더운 날, 산꼭대기에서 나무 한가득 등짐 지고 내려가 파는 사람들, 그런 노동이라도 해야 겨우 먹고사는 이들의 삶이 고달파보였다. 맥없이 단속하는 그녀의 목소리도 힘이 빠져있다. 다들 배가 고픈가 보다.
우리는 각자 꾸려온 도시락을 간단히 먹었다. 오늘도 아침 식사 때 챙긴 삶은 계란이다. 바나나와 귤도 있었다. 호주에서 챙겨 온 말린 자두와 살구 한 봉지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일행과 나누고 가이드에게도 주었더니 너무 고마워한다. 과자며 음료수며 휴지며 가방을 다 뒤져 줄 만한 것들을 그녀에게 건넨다. 비닐봉지 고무줄 하나도 아쉬운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날 희망을 품고 있을까...
가이드의 등 뒤에서 바라본 저 아래 세상은 티 없이 아름답기만 한데 내일이면 이 땅을 떠나는 나의 마음은 미추루 만큼 맑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