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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Aug 02. 2021

한국 vs 호주, ‘수면 시간’ 차이는?

충분한 수면을 서로에게 권장하는 사회.

얼마 전 호주 에이지 신문(9월 18일)에서 재미난 기사를 읽었다. 호주의 신세대(18-24세)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에 대한 기사였는데, 여러 설문 중 한 가지 항목이 눈에 띄었다. 그건 다름 아닌 수면 시간이었다. 호주에서 사는 15-24세 사이 젊은이들의 평균 수면시간이 무려 ‘9시간 2분’이라는 거였다. 헉!

호주에 처음 왔을 때 난 이미 큰 차이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땐 정확한 통계를 접하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확실히 잠을 많이 잤고 많이 자기를 권장하는 분위기였다.


예 1.    호주의 학생들

아이가 있는 호주 가정에 저녁 초대를 받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자녀가 있었는데 저녁을 먹자마자 바로 파자마를 갈아입으러 제 방으로 갔다. 7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는데 자러 가는 거였다. 이곳은 한국처럼 여름엔 해가 길어 7시면 훤한 대낮이다. 너무 놀라 ‘숙제라도 좀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소화라도 하고 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내일 아침 학교에 일찍 가기 때문에 이빨 닦고 바로 잔다는 거였다. 아침에 7시쯤 일어난다 해도 수면시간이 10시간은 넘었다. 이런 호주인들을 보고 여러 번 놀랐는데, 마침 주변의 호주 사람이 아시아로 여행을 다녀오더니, ‘도대체 아시아 애들은 잠을 안 자.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며 밤 9-10시가 되도록 티브이를 보거나 심지어는 쇼핑센터를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문화충격을 받았단다. 그땐 속으로 ‘난 네가 더 이상하다’ 했는데, 나도 차츰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밤늦도록 잠 안 자는 것에 많이 놀란다.

고 3이 되면 이곳 학생들도 시험 준비로 바쁘고 스트레스도 받는다. 그들이 힘든 건 한국처럼 나라 전체가 안다. 집에 고3이 있다 하면 ‘중요한 해 군요, 아이도 엄마도 힘들겠어요’ 하는 인사도 주고받는다. 하지만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잠잘 거 다 잔다. (위의 통계에서 보는 것처럼) 오히려 힘들다고 평소보다 더 자는 것도 같다.


예 2.     호주의 아기들

아기를 호주에서 낳고 한국인이 없는 시골에서 키우다 보니 호주식 육아법을 따르게 된다. 이 분야에 지식이나 경험이 전무하니, 필요한 조언과 도움을 주변에 부탁하게 되고 또 보고 따라 하게 되는데, 내 주변엔 호주 엄마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호주 엄마들은 아기를 키울 때 규칙과 반복적 생활(루틴)을 매우 강조하는데, 정해진 시간에 낮잠과 밤잠을 정해진 양만큼 충분히 재운다. 가령, ‘잠깐 집에 들르겠다’ 해도 ‘아기가 자는 시간이 몇 시부터 몇 시이니, 그 이후에 와서 아기들이 같이 놀게 하자'든지 '아님 그 시간에 와서 우리끼리 조용히 차를 마시자'든지 하는 식이다. 어떻게 그렇게 일정한 시간에 자고 때에 맞게 깨는지 놀랄 정도다.

호주 아기들은 생후 두 달 만 지나도 밤에 깨지 않고 10시간 이상을 내내 잘 자는 경우가 많았다.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지만, 주변의 많은 한국 엄마들은 밤잠을 설치며 아기를 재우느라 힘들어했다. 나도 좀 그랬고.

아이가 돌 전에 한두 번씩 밤에 깬다고 하자 ‘수면 학교' (슬리핑 스쿨- 4-5일간 엄마와 아기가 클리닉에서 생활하며 전문가로부터 규칙적 수면 패턴을 익히는 게 주다.)에 보내보라고 주변 엄마가 권했다. 마침 출산을 했던 산부인과에도 그 서비스가 있어 예약을 했는데, 줄이 어찌나 긴지 몇 달을 기다리다가 지쳐 못 같다. 대신 수면 학교를 아기와 다녀와 효과를 본 엄마로부터 비법을 전수받았는데, 수유 놀이 목욕 수면등 모든 아기의 일상을 정해진 순서(일정한 시간이 아니라)대로 반복하면 3-4일 내에 리듬을 익혀서 밤에도 깨지 않고 잔다는 것이 이론이었다. 나도 몇 번 따라 하느라고 했는데, 모든 일상을 정해진 순서대로 반복한다는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어 관둔 적이 있다.

얘기가 길어졌는데, 하려던 말은 호주 육아법에서 아기를 잘 재우려는 엄마들의 노력은 실로 대단하다는 것이다. 한국 엄마들이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고 공들이는 것처럼.

그런데 아기를 키워 본 엄마들은 다 알 것이다. 아기가 잠을 잘 못 잔 다음날은 괜히 짜증 내고 징징대고 힘든 하루를 보낸다. 잠을 잘 잔 다음날은 천사같이 방글대며 하루 종일 잘 논다. 아기가 잠을 충분히 잘 자는 것은 엄마에게도 아기에게도 아주 중요하다. 비단 아기뿐이겠는가. 어른들도 잠을 충분히 잘 잔 다음날은 개운하고 기운이 나지 않는가!


예 3. 호주의 어른들.

수년 전 남편이 석사를 마치고 사회로 나오기 전, 대학은 미국의 저명한 교수를 초청해서 졸업생들을 위한 특별 세미나를 몇 회에 걸쳐 마련했다. 한 번은 ‘일에 끌려다니느라 자신을 관리하지 못하면 안 된다. 스스로 복지를 챙기는 것을 잊지 말라’는 당부가 주 메시지였다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8-9시간 이상을 자라’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남편도 나도 놀랐다. ‘애도 아니고 어른이 9시간씩 잔다고?’ 내가 알기론 한국의 성인 권장 수면시간이 ‘7-8시간’이었는데 그걸 다 자는 사람이 내 주변엔 별로 없었다. 고등학교 때도 4당 5 락이니 하며 잠을 줄이라고 눈치 줬고, 사회에 나와서도 ‘남 자는 대로 다 자고 언제 성공할래?’ 하는 식으로 압박이 따랐다.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가 되는’ 사회에서 잠이란 체중처럼 줄일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줄여야만 하는 거추장스러운 일과였다.


하지만 잠이란 체중 이상으로 줄이기 힘들고 줄여서도 안 되는 중요한 삶의 부분이다. 나폴레옹은 말 위에서 4시간만 자고도 건재했다지만 그는 기인 중 하나였을 뿐이다. 수면 사이클대로 자고 깨면 적게 자고도 맑은 정신을 유지한다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삶의 3분의 1은 조용히 누워 침묵하고 자도록 설계하셨다는 확신이 든다. 학교 교실이든 도서관이든 지하철이든 어느 곳에서도 잠을 자는 한국인, 눕기는커녕 앉거나 심지어는 서서 (버스 손잡이 잡고 흔들흔들) 잠을 자는 한국인들은 철인도 기인도 아니며 잠에서 내쫓기는 불쌍한 수면 부족자들 일 뿐이다. 결국 침대에서 자는 수면시간은 줄일 수 있어도 그 부족한 만큼의 잠은 어떤 식으로든 일과 중 보충한다.


호주인들은 제 방 제 침대에 누워 잘 만큼 자고 체력에 맞는 생활을 한다. 버스나 도서관에서 잠을 잘 이유가 없다. 어느 날 호주 대학 강의실에서 쉬는 시간에 잠시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려 했더니, 친하지도 않은 여러 사람들이 다가와 ‘괜찮냐’고 물었다. 내가 심각하게 아프거나 이상이 있는 줄 알고 도와주려고. 많은 외국인들이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잠을 자는 한국인들을 기이하게 여긴다는 소리도 들었다.


한국 사람들이여, 잠을 경시하지 말라. 지금 육체적으로 피곤하다거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많다고 느낀다면, 가능한 모든 일(사과나무 심는 일 빼고)을 미루고 오늘 밤 넉넉히 자기를 권한다. 한국사회도 잠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충분한 수면을 서로 권장하면 좋겠다.(2010/10/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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