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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Jul 23. 2021

한국 vs 호주, ‘놂과 쉼’에 대하여

삶의 여백은 필요하다.


사람들은 일하거나 공부하는 중간에 놀거나 쉬기 마련이다. 요즘 호주는 한여름 휴가철을 맞아 여행을 떠나고 휴가를 즐기는 이들이 많은데, 한국인과 호주인은 놀거나 쉬는 방식 혹은 이를 대하는 자세가 매우 다르다고 느껴 이를 나눠보려 한다.


1.      바라보는 시각 혹은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한국인들은 노는 것과 쉬는 것을 게으르다거나 시간을 낭비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휴가를 받아 여행을 가면서도 ‘재충전’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에너지가 방전되기 전에 보충하러 간다는 의미가 있지 않은가. 이는 ‘휴식’에 대한 모독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휴식이나 논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으로 ‘안식하며 삶을 내가 좋아하는 즐거움으로 채운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단지 일을 더 많이 잘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서는 안 된다.

직장인들이나 공무원들은 업무와 휴가를 병합해 출장 가면서도 (혹은 순수하게 휴가를 가면서도) ‘연수’나 ‘시찰’등 일과 관련된 단어를 끌어다 쓰고 싶어 한다. 왜 놀면서 논다고 쉬면서 쉰다고 말하지 않는가!


호주인들은 놀기 위해 일한다. 흔한 농담으로 주말을 즐기기 위해 일주일을 참고 연차를 써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일 년을 견딘다고 할 만큼 놀고 쉬는 것을 찬양한다. 호주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했을 때 이들이 어찌나 휴가를 자주 열렬히 떠나는지 듣기만 하던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는 놀랬었다.


가령, 4주 연차를 받아 호주를 한 바퀴 돌고 놀다 온 여직원이 2주쯤 일하더니, 두 달 뒤 한 3개월 무급 휴가를 받아 해외여행을 떠날 거라며 상사에게 말하겠다는 것이었다. 난 뜨끔했다. ‘회사에 불만이 있나. 상사에게 반항을 하는 건가. 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지?’ 그러나 그녀는 매니저에게 면담을 요청했고 아무런 어려움 없이 허락을 받아냈다. 매니저는 남미와 중동 등지를 돌고 오겠다는 그녀의 계획에 환호를 보내며 부러워했다. 그녀의 업무를 맡을 임시 직원을 새로 채용하고 업무 인계를 돌보는 등 매니저로서의 업무가 약간 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동료로서 감내할 가치가 있는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긴 매니저 자신도 수시로 휴가를 떠나니 할 말이 없었을 수도 있겠고.) 그녀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일을 생산적으로 더 잘할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개인의 삶과 행복 그 자체를 이해하고 지지해 준 것으로 보였다. 그 직원이 담당했던 프로젝트는 그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체 직원에 의해 아무런 문제 없이 3개월 간 잘 굴러갔다. 


2.      양적으로 다르다.

주 5일 (주당 37-8 시간) 근무하는 호주의 직장인들은 연차를 최소 4주 법적으로 보장받는다. 근무연수에 따라 이 기간은 늘어난다. 이들은 눈치 보는 일 없이 자유롭게 한 달을 훌쩍 떠난다. 공휴일이 붙은 주말엔 연차를 하루 이틀 앞뒤로 붙여 일주일씩 노는 것도 누구나 하는 당연한 것이고. 이 할당된 휴가를 남기면 고용인은 그만큼 임금을 일정 비율 더 지불해야 하므로 직원들이 이를 끝까지 다 쓰도록 권장한다. 


한때는 염치도 없이 논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 긴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며 노나 정말로 궁금했는데, 호주에서 직장을 다니며 4주 휴가를 받아보니 업무 이외의 일들을 하거나 놀고 쉬는 이 시간들이 매우 값지게 여겨졌다.  내 삶 전체를 놓고 볼 때 이 정도의 쉼표는 마땅히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한국의 모 공사가 2주 연차를 한 번에 쓸 수 있도록 전 직원에게 허락한다는 기사를 읽었고, 사회적으로 센세이션 하게 받아들여지는 듯했는데, 한국 기업도 이 정도쯤의 휴가는 당연히 마련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어떤 직원이 2주 자리를 비울 때 그 누구도 대체할 수가 없어 업무가 마비되거나 생산성에 장애가 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휴가 일수가 문제가 아니라 직원의 휴가를 존중해 주려는 고용인의 자세가 문제인 것이다.


3.      질적으로 다르다.

한국인들은 양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 절박하게 무리해서 혹은 죽기 살기로 돌아다니고 사진 찍고 맛집을 찾고 사람을 만나고 잠도 안 잔다. (왜 무박 3일 같은 여행도 있지 않은가.) 휴가를 가서 쉬기는커녕 다녀오니 더 힘들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과연 휴가 뒤에 업무를 생산적으로 할 수 있을까. 흔히 말하는 진정한 재충전이 가능한가 말이다.


호주인과 여행을 떠나면 좀이 쑤실 때가 많다. 일주일 바다로 여행을 가면 똑같은 자리에서 내내 수영하다가 모래밭에서 책을 보다가 밥 먹다가를 반복하며 연인끼리 혹은 가족끼리 오붓하게 허전하게(?) 있다가 온다. 그러면서도 휴가에 방해된다고 업무에 관련된 얘기는 일절 안 하고 (회사도 감히 휴가 중인 직원에게 전화 한 통 걸기를 조심한다.) 또 회사로 돌아가기 전, 여행으로 인해 피곤하다며 하루 이틀은 집에서 쉰다.


종종 해마다 똑같은 장소, 똑같은 숙소로 떠난다. (그곳에 아예 전용 할러데이 하우스가 있는 경우도 많고)  그동안 못 읽었던 책들이나 바느질감을 들고 가 (이곳 속어로는 UFO-Un Finished Objects 왜 시작만 하고 끝을 못 낸 십자수 같은 것들 있지 않은가.) 한 자리에서 그걸 하고 앉아 있는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빈시간을 확보해놓고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말거나 하며 빈둥대는 것을 진정한 휴식으로 여기는 듯하다.


환경적 제약도 있고 개인적 취향도 다르니 단순히 이렇게 하는 게 좋다 나쁘다 말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한국 사회와 구성원들 각자가 ‘진정한 쉼과 놂’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끊임없이 바쁘게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휴식의 개념조차도 바꿔 쉬고 놀 때조차도 빈틈없이 무언가로 시간을 메꾸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삶에 작은 여백을 만들어 보자. (2010년 1월 19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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