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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Dec 23. 2021

한국 vs 호주, 상반된 ‘목소리’ 사용법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

한국인의 목소리는 전반적으로 호주인보다 크다. 

대도시, 소음이 심한 환경 속에서 살아 그럴 수도 있겠고, ‘목소리 큰사람이 싸움에서 이긴다’는 말처럼 ‘큰 목소리=상대를 압도하는 힘’으로 여기는 문화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님 좋게 말하면 소통이 잘 안 되는 사회라 악을 쓰며 사는 것 일 수도 있겠고.

근데 지구 반대편 호주에서는 목소리가 크면 오히려 싸움에서 지게 되어 있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예 1.   소비자 불만 센터 등에 항의를 할 때. 


한국 : (언성을 높이고 방방 뛰며) 이 물건은 내가 주문한 색깔이 아니잖아. 당신 눈멀었어? 책임자 나오라고 해..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여? 

호주 : (목소리를 쫙 깔고 조목조목 따진다.) 나는 파란색을 주문했는데 이건 군청색이다. 내 눈엔 분명히 다르다. 원하는 색을 주든지 반품해 달라. 영수증은 여기 있다. 

호주에서는 항의할 때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면 감정 통제를 못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고 아예 상대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네 감정 상태가 불안정하니 이 예민한 문제는 나중에 얘기하는 것이 너와 나의 안전을 위해 좋겠다. 이 문제를 놓고 죽고 살기로 싸울 이유가 내겐 없다. 대화를 하고 싶으면 네 감정부터 식히고 다시 오라’는 거다. 상대에게 먹히도록 항의를 하려면 감정을 통제한 채 내가 얼마나 이성적인지를 목소리로 증명해야 한다.  


예 2.   아이를 훈계할 때.  


요즘 한국에서는 잘 가꾸는 젊은 엄마가 많아 외모로는 아줌마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근데 목소리를 들어보면 대번에 애엄마 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애 한둘 키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다고 한국 엄마들은 입을 모은다. 호주 엄마들은 애 다섯을 키워도 목소리가 커지지 않는다. 비록 엉덩이가 두배로 커질지언정..

애가 울거나 말을 안 들으면 한국 엄마들은 안고 얼르고 달래거나, 소리를 높여 혼내고 한 대 때리고 같이 싸우며 힘들어한다. 호주 엄마들은 이런 애들을 조용한 방에 밀어 넣고 혼자 있도록 한다. 아이가 울다 지쳐 혹은 반성을 하여 조용해지면 그때 들어가서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훈계를 한 뒤 데리고 나온다. (*지금은 한국도 오은영 박사의 가르침으로 이 방법을 많이 쓰는 듯하다.) 

언뜻 보기엔 냉정한 서양 엄마들의 서늘한 아동 학대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내가 직접 체험해 본 결과 이렇게 쉽고 효과적인 육아법이 없다. 엄마도 편하고 애한테 정서적 육체적 상처 입히는 일 없이 큰 교육적 효과를 볼 수 있다. 


이곳 육아책을 보면 낮은 목소리가 듣는 이의 집중을 높이고, 언짢은 감정을 전달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언성을 높이면 상대가 내용을 잘 듣지도 않을뿐더러 감정을 흥분시켜 아이들도 맞고함을 지르게 된다는 거다.  말 되지 않나… 가령 아내가 맨날 소프라노 목소리로 잔소리를 하면 남편은 귀를 닫는다. 어느 날 조용히 낮은 알토로 ‘할 말이 있으니 여기 와서 앉아보라’ 고 하면 오히려 상대가 긴장하지 않는가.


예 3.   개 훈련시킬 때. 


개를 훈련시킬 때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된다. ‘앉아’’일어서’ 같은 명령은 낮은 목소리로 짧게 내뱉아 행동을 이끌어낸다. 반면 말을 잘 들어서 칭찬하고 싶을 땐 뼈다귀를 던져주면서 목소리를 한껏 뛰우며 호들갑 떨어야 한다. ‘잘했어,. 넌 정말 똑똑한 개로구나. 끼야호~~’ 크고 높은 목소리는 좋은 일이 있거나 칭찬을 할 때 써야 한다. 

간혹 외국에 나와 살거나 여행하는 한국인들이 무슨 일로 억울했던 경험을 얘기하면서 ‘아시안이라 차별당했다’ 거나 ‘영어를 못해서 무시당했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이런 류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 못 해 오해를 받고 불이익을 당한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감정적으로 언성을 높이지 않고 이성적으로 낮은 목소리로 (작게 옹알대라는 것이 아니라)  단호하게 (Assertively) 말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억울한 일이 있더라도 목소리를 높여 주변의 환기를 불러일으키며 막연한 도움을 청할게 아니라, 그 문제에 관계된 한 사람과 집요하게 씨름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싸울 때 ‘여기 좀 보소’ 하고 제삼자를 끌어들이는데, 호주에서는 남의 싸움에 별 관심들이 없다. 또 영어가 안돼 누군가와 함께 일을 보러 갈 때도 우르르 몰려 가기보다는 사정을 잘 아는 한 사람과 가는 게 좋다. 이곳에서 설득력 혹은 승부는 힘과 감정 목소리 쪽수 등에서 오는 게 아니고 이성과 논리에서 오기 때문이다. (2010/01/25 씀)


*라떼는 호주 티브이에서 '수퍼내니'란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며 육아 도움을 받았는데, 요즘 한국 티브이에서는 오은영 박사님이 대단한 활약을 하시는 듯하다. 다루는 내용과 가르침이 매우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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