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엔 어떤 새가 날아다니는 걸까?
이 날은 옆 마을 리스모에서 열린 '브롤가 세미나 & 탐험'에 참석을 했다. 브롤가(Brolga)는 호주 등지에서만 볼 수 있는 회색 두루미과의 조류인데 내가 사는 빅토리아주 북서쪽에도 일부가 서식한단다. 환경보호 단체인 '그리닝 오스트레일리아'가 주관하는 무료 모임이었는데 도대체 그 새가 뭔가 싶어서 일찌감치 자리를 예약해 뒀다.
이곳 사람들이 가끔 모이면 떠오르는 화제 중에 "나 어제 브롤가 봤어. 두 마리가 춤을 추는데 환상이었지..." 같은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어디 어디에 가면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우연히 지나다가 그곳에 차를 세우고 브롤가를 찾아본 적도 있었다.
예약 후 며칠 뒤 단체에서 전화가 왔다. 예약자가 50명으로 늘어 장소를 부득이 골프 클럽 하우스로 바꾸었다며 늪지에서 신을 장화와 망원경 비옷을 챙겨 오라고 친절하게 일러줬다. 히야... 역시 사람들이 몰리는구나.. 정말 대단한 샌 가봐...
아침 10시에 세미나는 시작됐다. 브롤가 연구로 발라렛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더벅머리의 젊은 처자가(사진 왼쪽) 스피커였다. 저리 젊은 여자가 새 연구를 하다니..
발표 내용도 연구과정도 참으로 흥미로웠다. 벌판에서 인내에 인내를 거듭하며 (그녀는 이 단어를 아주 여러 번 반복했다.) 브롤가의 일상을 파악한 뒤 좀 더 구체적인 데이터를 뽑기 위해 어미새를 밖으로 유인하고 (혹은 외출을 기다렸다가) 아기 새에게 접근하여 발목에 태양열로 충전되는 칩을 감는 일, 그 칩을 통해 새들이 어느 만큼 어떻게 날고 어디서 무엇을 먹고 다니는지 몇 년에 걸쳐 연구한 과정과 결과를 발표했다.
새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대단함을 느꼈다. 그렇지 않고서야 멀쩡한 여자가 허허벌판에서 새보다 빨리 달리며 그들을 잡아채어 진흙에서 뒹굴고 허구 헌날 밥 먹고 앉아 새의 일상을 관찰하는 일을 하겠는가 말이다. (그녀가 비디오를 보여줬다.) 음.. 정말 박사 되기 쉽지 않군.
발표 끝에 자기의 연구를 지원하는 여러 단체를 소개했는데 호주 국내는 물론 미국과 인도의 단체도 있었다. 인도에서까지 브롤가 연구를 지원하다니, 흥미롭다. 또 참으로 투명하고 깔끔하게 연구비가 필요에 맞춰 조직 안에서 활용된다는 느낌도 받았다. 관계없는 자들까지도 회계자료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질문 시간이 있었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번쩍 손을 들어 놀랐다. 내용도 매우 진지했다. 가령, '나는 건축업자다. 우리 집에서 3-40킬로 떨어진 곳에 몇 마리의 브롤가가 산다. 당신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몇 킬로를 반경으로 나는데 내가 건축을 다시 하게 될 때 고려해야 하는 피해를 주지 않는 거리는 얼마쯤 일까' 같은..
일단 자기 집에서 그 멀리 떨어진 곳에 새 몇 마리 산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놀랍다. 사람들은 저마다 옆 마을 어디에 몇 마리 살고 어느 농장에는 몇 월에 몇 마리가 날아들고.. 누가 새끼를 몇 마리 낳고 하며 가족 얘기라도 하듯이 주변 브롤가의 생활을 꿰고 있다. 별생각 없이 애 데리고 덜렁덜렁 온 나는 이들의 질문 자체가 너무 새롭고 놀라웠다. 질문이 너무 많아 진행자가 중간에 끊었다. 잠시 커피 브레이크.
2부에선 환경 단체에서 일하는 남자가 호주의 자연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했는데, 그의 데이터에 따르면 호주인은 환경보호 의식이 매우 낮고 거대한 늪지가 해마다 위험스러울 만큼 사라지고 있으며 환경 파괴로 인해 멸종됐거나 되어가는 동물이 많다는 거다. 브롤가도 20년 전인가와 비교해 반으로 줄어 특별보호 대상으로 지정됐다며, 자연과 인간이 충돌하지 않고 함께 사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것도 참으로 놀라웠다. 난 호주에 와서 이렇게까지 자연을 보호하고 야생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며 혀를 찾는데... 자연은 내가 느끼고 있는 것보다 훨씬 위태롭고 연약한 상태에 있나 보다.
점심은 주최 측이 준비한 샌드위치와 과일을 먹었다. 호주 사람들 매우 소식한다. 덩치 큰 사람도 샌드위치 한쪽이면 식사 끝. 후다닥 먹고 밖으로 나섰다.
곧이어 두대의 미니버스를 나눠 타고 본격 새 탐험에 나섰다. 20여분 달려 도착 한 누군가의 농장. 농장주는 브롤가가 산다는 늪지로 안내를 했는데, 오리만 둥둥.^^
사실 브롤가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주로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 좀 더 보기가 쉽단다. 두대의 버스가 각기 다른 곳으로 나뉘어 갔는데, 그 팀도 브롤가를 보지 못했단다. 그래도 경치는 좋았다.^^
사람들은 아쉬워하지 않고 들고 온 망원경으로 오리나 기타의 새들을 둘러보거나 미처 못 나눈 브롤가를 대한 이야기를 깊이 나누었다. 정말 할 말도 많고 진지한 사람들.. 학회에서 나온 전문가도 아닌데 새 하나를 놓고 한없이 파고 들어간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면면도 재미있다. 이웃 마을의 조류 보호소(Sanctuary) 건립에 관여하는 자원봉사 할머니. 이 분은 내가 초보 새 탐험가(Bird-watcher 이곳엔 이런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모임이 흔하게 있다.)라는 것을 알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환상적인' 브롤가 디브이디를 빌려주겠다는 둥 아직 공식적으로 오픈하지 않은 조류 보호소에 와서 같이 야생 새를 탐험해보자고 해서 또 그러겠노라고 덜렁 약속을 해버렸다. (그녀의 조류 보호소 탐방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또 어떤 여인은 다친 야생동물을 돌보는 자원봉사를 하는데 지금은 아기 캥거루 두 마리가 뒷마당에 있단다.
하루 5-6시간을 꼬박 동물 돌보는 일에 보낸다고 했다. 아기 동물을 돌보는 것은 사람 아기를 돌보는 것과 비슷하다. 야생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동물들은 안락사를 시키는데 브롤가는 워낙 특별한 새고 따로 돌보는 협회가 있어 그곳에서 어떤 경우에도 안락사 없이 끝까지 돌본다고 했다.
새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를 끝없이 이어가며 늪지대를 어슬렁 걷는 일이 재미있었다.
농장주는 브롤가를 끝내 보여주지 못한 것을 몹시 아쉬워하며 자신이 찍어둔 사진들을 보여줬다.
그의 농장 문에 붙은 사인들. 해석을 하자면 (왼쪽부터)
1. 여우 접근금지. 여우 약(쥐약 같은) 깔아 놓았음.
(여우들은 농장물도 해치고 무엇보다 계란이나 새 알을 먹어치워서 환영받지 못한다.)
2. 브롤가 서식지. (크기가 큰 걸로 봐서 주인장의 자부심이 묻어난다.^^)
3. 환경단체 랜드 케어 그룹 멤버임.
또 다른 사인. 동물 보호 지역이니 사냥 금지. (이곳 사람들은 종종 여우나 야생 동물 조류 사냥을 한다.)
망원경을 가족 수대로 3개나 빌려갔다. 이웃 사람들이 망원경을 몇 개씩 가지고 있어서 놀랐다. 어떤 이는 차에 항상 휴대를 하고 다닌다. 지나다가 볼 것이 나타나면 차를 세우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생업이 아닌 이상 몇 날 며칠을 그곳에서 죽치고 살며 새가 오기를 기다릴 수는 없는 거니까.
이건 옆집 남자에게서 빌린 건데 거의 골동품에 가까웠다. 칠이 다 벗겨지고 가죽 가방은 너덜거렸다. 도대체 무얼 그리도 보면서 살았단 말인가. 평생 망원경을 가져본 적도 없고 필요조차 느낀 적도 없었는데, 나는 무엇을 놓치며 살아왔단 말인가....
사람 사는 방식은 참 다르다. 오늘 이 물건을 보며 문화 차이를 느꼈다. 망원경을 품에 끼고 평생을 살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브롤가 캘린더를 얻어왔다. 새 사진이 나온 달력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고 브롤가를 보게 되면 자세히 관찰을 하고 매일 기록을 하라는 일지였다. 어디서 몇 마리를 봤는지 먹을 것은 충분히 있는지 둥지는 잘 지어졌는지 새끼를 낳았는지 등등. 무려 20여 가지에 이르는 행동 코드를 살펴보고 기록을 한 뒤 매달 협회에 보내달라는 거였다.
전문가들이 새를 쫓는 데는 한계가 있고 자원봉사자에 의한 작은 서식지의 방대하고 구체적인 자료들이 추후 환경 보호에 필요하고 개발 건설 등의 문제와 부딪쳤을 때 제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며.
어쨌든 토요일 하루를 온전히 바친 난데없는 새 모임을 통해 그동안 내가 몰랐던 또 하나의 거대하고 중요한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성능 좋은 망원경의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2011/08/31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