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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계일주 Sep 15. 2023

겨울 이야기

기록 04. 정말 간절하면 이루어지는 것일까?


쏟아지는 비로 차 안에서 와이퍼를 빠르게 작동해도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날이었다.





우리는 세차게 퍼붓는 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 약속에 늦지 않게 속도를 내서 '청양'이라는 곳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칠갑산 산꼭대기 아래로 초록 산등성이마다 안개가 자욱이 깔려있었다.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소리에~~' 노래로만 듣던 칠갑산의 정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우리에게는 세 명의 아이가 있었지만, 아들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남편의 바람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나는 내가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주변에 친하게 지내는 아이 친구 엄마가 본인 고향 근처에 한약방이 있는데 그곳에서 한약을 지어먹었더니 다 아들을 낳았다고 하면서, 혹시 넷째를 가질 생각이 있으면 찾아가 보라고 '삼대 한약방'이라는 곳을 알려주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 뒤, 날짜와 시간 예약을 하고 남편과 꼭 같이 와야 한다는 당부를 받았다.








폭우를 뚫고 도착한 곳은 제법 시골에서는 핫플레이스인 듯한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는 읍내였다. 청양 우체국이 보이고 청양 시외버스 터미널이 보였다. 그 근처에 '삼대 한약방'이 있었다. 대문 앞에 커다란 나무가 있고 단층으로 된 오래된 낡은 건물을 보고는 들어가기 전 조금 망설여졌다. 하지만 미신이라 생각하고 치부했던 '아들 낳는다는 한약'을 짓기 위해 그 폭우를 뚫고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이렇게 그냥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우리는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직원분의 안내에 따라 한약방이지만 그냥 평범한 시골집 같은 집안으로 마루턱을 올라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 시골 할머니 댁 안방을 연상케 하는 한약방 진료실 한쪽 벽에는 책들이 바닥에도 켜켜이 가로로 쌓여 있었고, 한쪽에는 이미 침을 맞고 치료 중인 어르신 몇 분이 누워계셨다.


우리는 선생님께 지금 딸아이가 셋 있다고 하고 아들 낳는 한약을 잘 지으신다는 소문을 듣고 여기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남편과 나의 생년월일을 물으시더니 사주를 보는 듯하셨고, 진맥도 짚어주시고 각각의 손금도 보셨다. 시간이 제법 지나서 그날의 대화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하시면서 남편에게 술과 담배를 끊으라 하셨고 나에게는 생리주기를 물어보시고는 각각 한약을 한 첩씩 지어주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난 지금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빗속을 뚫고 정신없이 달려서 낯선 청양에 다녀온 기억이 한낮 꿈처럼 느껴졌다.



정말 간절하면 이루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한약의 영험한 효능 덕분일까? 까맣고 커다란 잉어 다섯 마리가 양동이에서 팔딱거리며 튀어나올 듯한 힘으로 세차게 요동치는 태몽을 꾼 후 아이를 만났다.








며칠 전, 열 살 생일을 맞은 겨울이가 '엄마, 내 생일 때 선물로 손 편지 꼭 써주세요!'라고 말하였는데, 이 저질체력인 엄마는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생일에 손 편지를 전해주지 못하였다. 겨울이는 엄마도 생일 편지를 안 줬는데 이번에는 누나들조차 생일 편지를 써주지 않았다며 못내 서운해하면서, 누나들에게 손 편지를 독촉해서 기어이 손 편지 석 장을 받아내었다. 편지를 받고 기뻐하면서 혼자 읽어 보는 겨울이 에게는 손 편지가 애정을 느끼는 척도였을까. 벌써 열 살이 된 겨울이의 생일을 떠올리며 지난 기억을 기록해 보았다.


살다 보니 행복했던 일들도, 가슴 아팠던 일들도 내 기억에서 조금씩 잊혀간다. 기억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생각나지 않을 것 같았던 그때의 기억이 조금씩 선명해진다. 행복했던 기억은 생각날 때마다 기록해 두어야겠다.



2021.08.02 꿈꾸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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