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계일주 Sep 23. 2023

열아홉 살, 봄이의 일기

기록 06.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때가 있다.


열아홉 살, 봄이의 일기


여전히 아침마다 봄이와 아침 등굣길을 동행하고 있다. 올해 3월부터는 여름이도 봄이와 같은 학교에 입학했다. 봄이는 열아홉 살, 여름이는 열일곱 살 고등학생이 되었다. 이제 봄이와 여름이, 나 이렇게 함께 집을 나선다. 다소 정돈되지 않은 모습으로 벽돌같이 무거운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신발은 꺾어 신고, 마스크를 쓰면서 엘리베이터에 탄다. 신호에 걸려 늦을까 조바심 나는 복잡한 교차로를 여러 번 지나 아이들을 학교 앞에 내려주고, 나는 편의점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사서 직장으로 출근을 한다.


  
열아홉 살 봄이는 자기의 시간에 맞게 고3병에 걸렸다.


단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열심히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없다는 조급함과 이제 이 일 년이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라는 걸 체감하는 불안함과 두려움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오는 병일 것이다. 소화가 안되고, 배가 아프고, 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고. 몸이 먼저 알아차린 것이다. 위내시경과 복부 CT 검사를 했는데 다행히도 별 이상은 없었다. 소화기내과, 소아과, 가정의학과, 한의원까지 네 곳의 병원에 갔는데 특별한 이상은 없다는 것이다. 위장약을 먹어도 증상이 낫지 않는다면 위장 기능의 문제인데 그 원인이 생활습관과 식습관, 스트레스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마음에서 오는 병을 알아차리기까지 몸이 아프고 난 후에야 깨닫는다. 나 역시도.





4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나와 봄이는 거실에서 빨래를 개면서 '보이즈 플래닛' 재방송을 봤다.

봄이와 또래인 아이들이 나오는 아이돌 그룹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아이돌 가수가 되기 위해 오디션에 나온 아이들이 미션을 연습하고 수행하고 등급이 매겨지고. 지난주에는 99명의 도전자들 중 9명의 최종 합격자가 결정되었다. 아이돌로 데뷔가 확정 지어진 아이들은 기뻐하며 벅차오르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함께 연습했지만 데뷔는 못하고 최종 합격한 친구들에게 박수 치며 축하해 주는 떨어진 아이들에게 오히려 마음이 쓰이고 눈길이 갔다. 지금 자신의 실력을 인정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주는 그 아이들에게도 언젠가 자신만의 때가 올 것이다. 우리 봄이도 부단히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만의 때를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나의 때는 지나간 것인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인가.



나는 봄이와 함께 빨래를 다 개어놓고, 매직을 했어도 부스스한 봄이의 머리를 땋아주었다. 봄이 어릴 때 아침마다 어린이집 가기 전 머리를 땋아주던 그날 아침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빗을 찾으러 가기 귀찮아서 내 손가락을 꼬챙이 빗 삼아 반가르마를 타고, 내 손가락 굵기만큼 듬성듬성한 디스코 머리를 땋았다.



봄이 머리를 빗어주다가 나의 어릴 적도 생각이 났다. 나는 어린 마음에 다른 친구들처럼 예쁘게 땋은 디스코 머리를 하고 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우리 엄마는 그냥 하나로 껑충 묶어주었다. 그것도 그냥 심심한 끈으로. 나는 친구들이 하고 오는 예쁜 색색의 방울이나 리본이나 프릴이 달린 끈이 부러웠다.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는 내 손을 뒤로해서 하나로 질끈 혼자 머리를 묶었다. 두 살 어린 여동생의 머리를 묶어주는 일도 내 몫이었다. 디스코 머리는 어려워서 못 땋았지만 하나로 방울로 묶은 후 내려온 머리는 세 갈래로 땋아서 방울로 쏙 매듭을 묶었다. 내 이야기를 쓰려던 건 아니었는데 글은 쓰다 보면 글 이상의 기억과 감정을 불러오기도 한다.



2023.4.23 꿈꾸는 일기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들은 자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