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환기를 시킨다고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맑은 공기와 함께 눈에 들어온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때문이었다. 누가 며칠 사이에 물감 칠을 해놓은 것처럼 정말 울긋불긋한 단풍이 들었다. 분명히 집을 오가며 한 번쯤은 보았을 단풍이 오늘 아침에야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님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르면서, 자세히 보아야 예쁜 우리 여름이가 생각났다.
여름이와 저녁마다 한 시간씩 걷기 운동을 나간다. 사실 운동이라기보다는 가벼운 산책이다. 가끔 겨울이도 같이 동행한다. 도서관에도 들려 책을 반납하기도 하고, 산책하다가 공원 주변에서 버스킹 공연 소리가 들리면 같이 가서 노래도 몇 곡 듣고 온다.
요즘 여름이의 최대 고민은 단연코 성적이다.
중1 때는 자유 학기제라 시험이 없었고, 올해는 중2가 되면서 총 두 번의 시험을 치렀다. 숫자로 매김 하는 자신의 서열에 자못 충격받은 듯했다. 여름이와 같이 성장한 어린이집 친구들이나 초등학교 동창들의 근황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누구는 영재반에 들어갔고, 누구는 반장이 되었고, 누구는 반에서 1등이고, 누구는 시험을 봤는데 올백이고 전교 1등을 했고.
또래 친구들의 잘 나가는 소식은 나뿐만 아니라 아이 귀에도 들어간다.
"엄마, 내 친구들은 어떻게 하나같이 다 공부를 잘하고 똑똑한 거야? 내가 이상한 거야? 아님 우연히 내가 공부만 잘하는 친구를 사귄 건가?"
나도 시무룩해진 여름이를 보며 시무룩해진다.
가만히 앉아서 사부작거리는 걸 좋아하는 첫째 봄이 와는 달리, 여름이는 하루라도 바깥 활동을 하지 않으면 몸살이 나는 아이였다. 어릴 적 사진을 보다가 여름이는 가만히 찍은 사진이 없는 걸 발견하고 얼마나 웃었는지. 고개를 꺾어서 찍거나, 다리를 벌리고 있거나, 장난기 가득한 얼굴 표정을하고 있다.
여름이가 초등학교 4학년 수업 시간에 쓴 동시가 생각났다. 내가 혹시 은연중에 여름이를 재촉한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 후로는 재촉을 많이 안 한 탓인가.
여름이의 시무룩해진 마음을 위로해 주려고 예전 일기장을 찾아서 사진을 찍어두었다. 저녁 산책길에 보여주면서 늦게 피는 꽃은 더 예쁘고 자세히 오래 보아야 더 예쁘다고 얘기해주어야겠다.
제목 : 늦게 피는 꽃
- 초등학교 4학년 여름이 -
엄마, 저 땜에 걱정 많으시죠? 맨날 놀이터에서만 놀고
그런데 봄이 왔다고 다 서두르는 건 아니잖아요? 늦게 피는 꽃도 있잖아요 그리고 늦게 피는 꽃이 더 예쁘죠?
나도 느림보 나도 자라날 시간을 주세요 늦게 피는 아주 예쁜 꽃처럼
※ 주의사항
여름이가 쓴 동시는 <늦게 피는 꽃>이란 동시를 <시 바꾸기> 활동 시간에 부분만 각색하여 쓴 시입니다. 저도 처음엔 몰라서 눈물 났다는 비하인드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