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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현승 May 24. 2016

기회는 항상 망설임과 함께 옵니다

이 글은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 소식지에 올릴 원고입니다.

책 출간을 앞두고 조혈모세포은행에 책을 보내 드리려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며칠 뒤에 전화가 와서 소식지에 공여후기를 올려주시겠다고 합니다. 책도 함께 홍보해 주신다고 하니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 급하게 써서 내용이 어수선하지만 진솔하게 내용을 담으려고 했습니다. 

브런치 친구들도 혹시 기회가 되신다면, 조혈모세포공여를 위한 혈액샘플 제공에 동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모두.




기회는 항상 망설임과 함께 옵니다.


 안녕하세요. 노재명 작가입니다. 2003년에 경험한 특별한 일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펜을 들었습니다. 나중에 기억하게 된 일이지만 조혈모세포기증을 약속하고 혈액샘플을 제공했던 것은 1997년이었습니다.


 오래된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마치 바위표면에 깊게 새겨진 글자 위에 덮인 수북한 먼지가 바람에 훅 하고 날아가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습니다.


 1997년 11월 그 날은 선선했습니다. 성당 마당에 책상을 몇 개 놓아두고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엉겁결에 의자에 앉아서 팔을 내밀었습니다. 팔의 정맥을 뚫는 혈액샘플 채취용 주사바늘의 단단함이 기억납니다.


‘조혈모세포공여’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하고 어려워서 ‘비록 약속은 하지만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겠어? 혹시 남을 도울 기회가 있다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라는 가벼운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저를 내려다보는 성모상의 표정도 저처럼 덤덤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간 전문대를 졸업하고, 편입을 실패하고, 늦은 나이에 수능을 다시 보는 등 여러 가지 사연이 있었습니다. 결국 서울시립대학교에 합격을 하고 2002년에 군대에서 전역을 했습니다. 당시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특별한 일은 2003년에 찾아 왔습니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혹시 노재명 선생님이 맞습니까?”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꽤나 거북했던 기억이 납니다. 상담을 통해서 제 도움이 꼭 필요한 다섯 살 아이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반대를 예상해서 어머니에게만 말씀 드리고 입원을 했습니다. 당시 학생 신분이라서 직장에 양해를 구한다거나 하는 번거로움은 없었습니다.


 꽤 많은 양을 필요로 했나 봅니다. 두 번 정도 자가 수혈을 위한 혈액을 따로 모아두기 위해 고속터미널역에서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까지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걸음걸음마다 어떤 생각을 딛고 걸었는지 지금은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만, 더디고 무뎠다는 느낌만 기억합니다.


 수술이 혹시 잘못 될까봐 마지막 순간에도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수술복으로 갈아입으니 이동식 침대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아파서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왜 누우라는 걸까, 당시에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두려운 나머지 마지막 순간에 제가 도망갈지도 몰라서 안전하게 수술을 마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웃음)


 또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수술실 앞에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던 수녀님입니다. 두렵고 외롭던 저의 마음을 잘 다독여 주셨습니다. 성함도 모르지만 감사드립니다. 혹시 당시 수녀님의 성함과 연락처를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꼭 저에게 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술 후 벌어진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어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혈관에 마취제의 차가움이 느껴지는 것이 제가 아는 수술의 전부입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수술 후 회복실에서 침대에 양 팔이 묶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취가 덜 깬 환자는 무의식중에 침대에서 떨어진다던지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안전조치를 한 것이라는 것도 나중에 안 사실입니다. 제가 유령처럼 벌떡 일어나서 위험했다는 말도 전해 들었습니다. 온전하지 못한 정신에 다칠 수 도 있었는데 참 감사한 일입니다. 또 회복실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한 분이 몽롱한 정신의 저에게 이렇게 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군대는 다녀왔어요?”


 “네...”


 왜 제가 군대를 다녀왔는지 궁금해 했을까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군대를 다녀와야 조혈모세포 공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고, 혹시 제가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요? (웃음) 착한 일을 한 기특한 청년이어서 그녀가 마음에 들어 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싶습니다. (또, 많이 웃음)


 그렇게 난생 처음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했습니다. 수술부위보다 마취를 위해 목에 삽입했던 관 덕분에 목이 아파서 고생을 좀 했습니다. 그 뒤로 허리를 못 쓴다, 피곤하고 체력이 떨어진다는 등 골수이식수술에 대한 거짓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주위에 증명해 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동안 인생을 열심히 살지 못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정말 좋아하고 직업으로 가질 만한 일을 찾지 못했습니다. 공부도 여러 가지를 해 보고, 직업도 이리 저리 바꾸면서 세월의 바다에 떠 다녔습니다.


 우물쭈물 하던 중 2015년에 저에게 큰 일이 닥쳤습니다.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서 돌연 실직하게 되었습니다. 40세가 넘어 이력서를 쓰면서 많이 후회했습니다. 서류탈락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고,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었습니다. 꿈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고통은 울음을 삼키고, 밤을 달려 책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 아저씨는 이렇게 책을 쓰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과거의 행복했던 시절의 나와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조혈모세포 이식수술에 대한 통계를 보면 혈연 중 부모가 5%, 형제자매가 25% 수준의 적합률을 보이고, 비 혈연간에는 2만분의 1정도의 확률이라고 합니다.


 기회는 항상 망설임과 함께 옵니다. 좋은 일을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다면 천국이 따로 필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좋은 일은 곧 희생이 필요한 것을 의미합니다. 얼마의 희생이면 감당할 수 있는지는 모두 다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평소에 약간의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정말 기회가 올 때 주저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위험을 회피하는 인간의 본성이므로 비난할 만한 내용은 아닙니다.


 목숨을 바꿀만한 희생을 각오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잘 가꾸어 나갈 때 소중한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은 책의 제목은 ≪청춘신호등≫ 입니다.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지, 꿈 앞에 멈추어 있을지 오로지 나의 몫입니다. 신호등처럼 꿈이 없는 청춘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다섯 살 꼬마아이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는 결정 앞에 제가 망설였듯이 사람들 앞에 나선다는 것이 아직도 마땅치는 않습니다. 그러나 책을 통해 사람들을 돕는 것도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희망을 잃고 지쳐 있다면 다른 사람도 도울 수 없습니다. 우선 내가 일어서야 합니다. 일어서기 위해서는 꿈이 먼저 필요합니다.


 13년 전 그 꼬마는 지금은 어른이 될 준비를 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성별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꽃처럼 예쁜 마음을 가진 청년이 되었을 겁니다. 조혈모세모이식을 받으면 혈액형조차 바뀐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소 괴팍한 저의 피, AB형이 마음에 들면 좋겠습니다.


 이 땅 어딘가에 있을 내 분신과도 같은 그 청년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내 마음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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