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끌리는 낯선 사람들의 서로 다른 문화
재작년에 한국문화, 정확히 말하자면 한류에 관심 있는 스웨덴과 덴마크 그리고 노르웨이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스웨덴 퀴즈쇼에 방탄소년단이 나왔다고 했지만 이를 좋아하는 사람을 직접 알게 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물론 한류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대부분 10대에서 20대 중반 나이 때이고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하고 할 수 있다. 나는 나도 잘 안 챙겨보는 한국 드라마와 예능, K-POP을 좋아하는 게 신기해서 이들에게 왜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니 그들은 자기네 것과 달라서 좋다고 했다. 주로 심각한 스릴러 드라마나 블랙 코미디가 대부분인 이들의 문화에서는 로맨틱 코미디나 예능 프로그램은 실로 새로운 재미가 있다고 했다. 또한 칼군무를 맞추는 K-POP 아이돌 그룹 역시 개인주의가 강한 서구 문화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한국 문화와 다른 북유럽의 문화에 끌리는 것처럼 이들 또한 자기와 다른 것에 끌리나 보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문화에 대해서 깊이 알게 될수록 흥미로운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혼란스럽기도 했다. 아직도 외부에 있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그들 문화를 알아가는 단계이기에 여전히 익숙하고 편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특히 몇 가지에 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문화충격이라고 할 만큼 다소 충격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에 대표적으로 해당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성에 개방적인 문화와 권위를 따지지 않고 전 연령이 평등한 사회 분위기이다. 이는 한국과는 거의 극과 극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성에 개방적인 문화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서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이라는 것을 염두해주길 바란다. 나는 다소 조용하고 성적인 측면에 대해서 상당히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돌이켜보면 청소년기를 포함하여 학창 시절 내내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본 적은 가정 시간에 2차 성징의 발현을 공부하면서 잠깐 배운 게 전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성에 대해서 편하게 이야기하는 게 어렵다.
그런데 이들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약 5세 정도의 나이에 해당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 굉장히 현실적으로 그림 등을 통해서 부모에 의해 교육이 이루어진다. 그 이후에는 가정에서뿐만이 아니라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피임 등 성교육을 철저하게 한다. 또한 부모들은 아이를 어렸을 때부터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며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여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교제하는 상대방을 자연스럽게 집으로 초대해서 부모에게 소개를 시킨다. 이는 대부분 결혼하기 직전에야 인사시키는 한국의 문화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또한 한국에서는 보수적인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상당히 낯부끄러운 것으로 인식되어서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음지를 통해 성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작년에 한국인 여자 친구를 사귀는 한 덴마크 친구가 고민 상담을 해왔다. 그는 자기 문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자 친구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문제는 그 여자 친구의 부모님은 외국인을 사귀는 것을 반대한다고 했다. 아직 20대 초중반의 나이인 그들이 당장 결혼할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는 결혼할 상대가 아니면 꼭 인사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그는 그래도 자기 문화에서는 그렇게 했으니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했다. 중간에서 내가 뭐라고 조언하기에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존칭을 쓰지 않는 서구권의 외국인들은 그들 문화에는 없는 존댓말을 매우 어려워한다. 복잡한 변형도 곤혹스럽지만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언어는 그 사회의 문화가 농축되어 있는 대표적인 체계이다 보니 한국어에는 수직적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의 유교 문화가 그대로 존댓말에 반영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존댓말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이를 배우는 입장에서는 어렵고 개념 자체가 다르다 보니 보수적인 사고방식과 더불어 이런 체계들 때문에 한국이 100년 전 자기네 사회의 모습처럼 느껴진다는 푸념 아닌 푸념도 듣곤 한다.
이런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게 되면 각자의 문화에서 바라봤을 때 다른 부분에서 크고 작은 마찰이 생기곤 한다. 그냥 각자 다르다는 것을 알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문화의 사람과 소통하게 되면서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겪게 되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적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서로가 가진 상식이 각자 너무나 달라 서로를 의도치 않게 상처 주기도 한다.
문화 간 충돌은 모든 문화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다. 피요르드를 여행하다 기차에서 한 미국인 중년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딸이 노르웨이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어 온 것이라고 말하며 노르웨이를 포함하여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모두 살아봤는데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자기는 덴마크는 별로였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유를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덴마크는 사람들이 직설적이라고 놀랄 정도로 솔직하고, (친한 사이라고 여겨지는 때에) 잘 빈정거린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게 익숙하지 않은 다른 문화의 사람들에게는 이 부분이 다소 공격적으로 받아들여져 오해를 사고 불편한 감정을 주기도 한다.
덴마크뿐만 아니라 북유럽에서는 공통적으로 블랙 유머를 자주 구사하는데, 이게 어느 정도냐 하면 덴마크의 ‘앤더스 토마스 옌슨 Anders Thomas Jensen’이라는 감독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만약 덴마크에 시체 한 구가 있다면, 누군가는 그것에 대해 농담을 할 거예요.”
아마도 한국을 포함하여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다른 문화권에서는 이를 두고 흔쾌히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받아들이기 싫은 사람에게 억지로 강요하기도 뭐하다. 이토록 다른 문화끼리 만나면 어느 문화가 맞는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각각의 문화는 그 사회에 따른 맥락이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이다. 각자 다른 환경과 역사 속에서 살아온 서로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 만나면 그만큼 오해와 충돌은 어쩌면 서로를 알아가는데 피할 수 없이 당연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달라서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이가 자기와 달라서 오해하고 충돌하며 멀어지는 과정은 흔하다면 흔할 수도 있다. 익숙함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누구 하나만의 상황이 아니다. 유유상종이라는데 그렇다면 인간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만 만나고 살아야 할까? 오해와 충돌 속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예견된 충돌을 예방하거나 충돌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인 오스틴은 그녀의 유명한 저서인 ‘오만과 편견’을 통해 자기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오만이나 상대방에 대한 편견 모두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결국 자기도 남들과 다름없다는 겸손함과 타인에 대한 열린 마음이야말로 타인과 가까워질 수 있는 열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좋아하는 작가인 알랭 드 보통은 ‘낭만적 사랑과 그 후의 일상들’이라는 책에서 사랑과 결혼에 대해 여러 가지 조언을 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솔직하게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라’는 게 기억에 남는다. 서로 다른 문화를 살아온 두 사람의 결혼이라는 미시적 단위의 결합에 대해 언급했지만 나는 이게 결혼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이 100명이 있으면 100명이 생각하는 상식은 다 제각각이다. 그러니까 100개의 상식이 있는 셈이다. 비슷할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는 ‘상식’이라는 것은 자기 입장에서만 보면 상대방은 이상하기 짝이 없다. 내 입장에서 보면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저 사람 입장에서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아리송하긴 마찬가지다. 서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마음을 열고 털어놓지 않으면 영문도 모르는 채 멀어지기 십상이다. 그 중간에 갈등이라는 산을 넘어야 하고 이해로 이르는 길은 쉽지 않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칼 세이건이 언젠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지성적 존재이기에 근육같이 두뇌를 사용해서 이해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