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우주가 만나는 일

각각 개개의 우주인 개개인이 진정한 소통을 하기 위해서

by moka

2017년, 한국어를 열정적으로 배우는 덴마크 남자애와 알게 되면서 종종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 애는 한국어를 공부해서 한국어를 말하고 쓸 줄도 아는데 가끔 내게 생각지도 못했던 세세한 뉘앙스를 물어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국문학을 전공한 것도, 정식으로 한국어를 가르칠 줄 아는 교원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라 세세한 문법을 물어보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특히 뉘앙스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있노라면 갑자기 이게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지, 나의 생각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건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같은 한국어를 쓰더라도 어떤 단어를 어떻게 쓰는지는 그 사람 개인의 고유한 성향이 반영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지역별로 방언이나 억양이 다른 것처럼, 각자의 집에도 그 집만의 언어문화라든가 그런 것들이 다양하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쓰는 언어를 그렇게 쉽게 정통 한국어라고 말하기가 난감해진다.


점점 깊이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고 더 나아가 내 주변 사람들도 나와 같이 이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진다. 그러다 보면 내가 과연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고 있나 하는 데까지 이른다.


실제로 낯을 보지 않은 사람과 몇 시간씩 이야기하면서 인생의 별별 이야기까지 하는 반면, 몇 년째 알고 지냈다는 것만으로 서로를 잘 안다고 섣불리 판단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람이란 몹시도 신비한 존재라서 아무리 옆에 오래 살을 맞대고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매 순간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 정도까지도 아니고 사실 몇 년을 알고 지냈으면서도 모르는 부분을 발견하게 될 때, 혹은 내가 생각했던 부분과 다르다고 생각될 때 생경한 느낌이 들곤 한다.


나와 똑같다고 말하는 그 사람 속에서도 나는 나와 전혀 다른, 나와 상반된 면을 발견하곤 한다. 내 안에서만 해도 서로 모순된 면들이 발견되는데 하물며 남에게서 발견하지 못하랴. 그리고 모든 사람들 속에 존재하는 나와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발견하면 가까운 건지 먼 건지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러워진다.


인간이 가진 다면적인 측면은 전혀 예상할 수가 없고 그래서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혹은 그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심리학이나 이런저런 것들을 배운다. 근데 그걸 배운다고 해서 그게 꼭 그 사람의 전부라고 판단할 수도 없다.


그런 것을 생각하노라면 인간 개개인은 다른 별에 사는 존재 정도가 아니라 그 각자가 하나의 작은 우주라는 말이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시인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우주와 우주가 만나는 일이라고 그랬다. 어쩌면 평생이라는 시간조차도 어떤 한 사람이라는 우주를 완벽히 알고 이해하기엔 짧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누군가를 알기 위해서는 소통이 중요하고 조심스러움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종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다 듣고 서로의 이견을 좁히는 것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그것이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보다도 귀찮다는 생각이 더 강해서, '그럼 넌 그렇게 생각해, 난 이렇게 생각할 테니'라고 말하며 그래도 자기 자신이 맞는다고 믿는다. 그러다 보면 이견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저 사람이 도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지는 때가 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텔레파시라도 있어서 서로의 생각을 오해하지 않고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공교롭게도 아직까지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상대가 아무리 옆에 오래 있어도 정확히 뭘 생각하는지 쉽사리 알 수가 없다.


무엇이든 안다는 것은 문을 두드리고 열고 들어가야 하는 과정이 대개 쉽지 않다. 스스로를 아는 것도 어렵지만, 타인과 서로 알고 이해하게 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분명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 꺼풀 벗기면 나와 전혀 다른 점을 발견할 때 당황스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얕게 아는 것이 종종 더 부정적인 감정을 초래하기도 한다. 가끔 서로가 너무 달라서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표면의 장막을 예기치 않게 맞닥뜨리고 나면 도저히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워진다. 비슷한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하기에 다른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거부감이 드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미움과 사랑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데 갈대와 같은 사람의 마음으로는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기 쉽다.


쉽지 않은 과정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는 애정과 관심, 그리고 인내를 가지고 다가갈 때야 비로소 어쩌면 언젠가는 그 사람에게 존재하는 달의 뒷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 꼭 좋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시도해보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알 수 없는 가능성으로 남겨질 뿐이다.


온갖 어려움과 피곤함을 무릅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무언가를 좋아했던 마음을 계속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알려는 고통이나 노력 없이는 그 너머에 있는 기쁨도 누릴 수도 없으니. 예기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혀도 그걸 딛고 일어나 계속 알고 싶은 호기심을 유지하고,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게 문을 열어 달라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지레 겁을 먹고 내쫓기보다는 가능성을 믿고 문을 열어줄 수 있을 만큼 담대하고 용감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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