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라는 기적

새로이 알게 되는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대하여

by moka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그렇게 외롭다는 생각이 들만한 일이 별로 없었다. 가족들과 같이 살고 있고 친구를 만나거나 일을 할 때도 사람을 계속 만나니 사람을 못 만나서 외로울 틈이 없었다. 그런데 혼자 여행을 와서 하루 종일 계속 홀로 다니다 보니 사람이 그리웠다.


실은 여행을 가기 전에 인터넷 여행 카페에서 각 나라별로 동행을 구했었다. 그래서 나는 도착해서 만나서 같이 돌아다니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허탕을 치고 따사로운 여름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쬐는 황금빛 주말에 나는 행복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혼자였다. 미술관, 박물관 등을 구경하는 건 그렇다 쳐도 삼시 세끼를 모두 혼자 먹는 건 너무나 쓸쓸했다. 이쯤 되니 여행이 아니라 묵언수행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 정도 외로움을 느끼게 되면 아무리 낯을 가려도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나는 다시 인터넷 여행 카페에서 현재 그곳을 여행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 연락을 했다. 하지만 누구든 만나면 즐거울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 사람과의 시간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이 혼자 다녀야 하나보다 하고 의기소침하며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내려놓고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길을 묻기로 했다. 두 명 이상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긴 뭔가 그렇고 혼자 있는 사람을 물색했다. 그때, 키가 큰 사람들 머리 위로 머리가 하나가 더 큰, 키가 정말 2미터는 될 것 같은 어떤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당시 구글맵 앱이라는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나는 그 사람에게 관광 안내소에서 받은 종이지도를 들고 다가갔다. 이 이야기를 주변에 들려줄 때마다 사람들은 “아직도 종이 지도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하고 나를 비웃지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종이 지도를 보며 길을 헤맬 때마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을 수 있었고 그중 어떤 사람들과는 친구가 될 수도 있었다.


내가 길을 물어본 사람은 나의 목적지가 우리가 있던 곳으로부터 15분을 걸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대충이라도 방향을 알려주길 바라며 그를 멍청하게 바라봤다. 그런 내가 딱했는지 그는 자기도 산책하고 있으니 그곳까지 데려다주겠노라고 했다. ‘아니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 있다니!’ 나는 그의 친절에 속으로 깊이 감동했다. 예전에 일본에 갔을 때도 어떤 친절한 분이 자기도 모르는 우리 일행의 목적지를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데려다주셨을 때 감동했었는데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났다.


15분을 말없이 가기도 뭐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그와 나는 나이 때도 비슷하고 학력이나 경험도 비슷한 게 많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나와 대화가 좀 된다 싶었는지 자꾸 교육제도나 한국 사회 등에 관한 생각지도 못한 어려운 질문을 해댔다. 우리 둘 다 중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는 내게 한국이 중국과 비교해서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광범위한 주제라 뭐라 말할지 감이 안 잡히는, 헛웃음이 나오는 질문인데 당시에는 밑도 끝도 없는 뜬금포라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대학교 전공시험 서술형 문제도 아니고 그 방대한 걸 다 어떻게 이야기하냐?' 싶었지만 상대방은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고 등에서는 땀이 막 흘러내리며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은 그 당황스러운 기분, 나만 경험해보지는 않았으리라 믿는다. 게다가 한국어로도 말하기 힘든 걸 영어로 하려니 머리는 아파오고, 이 사람은 왜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해서 시련을 주나 싶고 없던 유감이 생기려 했다. 아무튼 빨리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아서 길게 생각하지도 못하고 임기응변으로 면적과 인구수를 포함하여 대충 이것저것을 이야기하긴 했는데 하도 정신없이 이야기해서 뭐였는지 잘 생각이 나진 않는다. 개인적으로 ' 두유노 시리즈(두유노 김치? 두유노 싸이? 두유노 김연아 등)'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 사람한테는 뭘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는지 참 난감한 일이긴 하다.


아무튼 나는 갑자기 고차원적인 문제를 영어로 설명을 하느라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영어와 사회에 대한 지식을 쥐어짜기 바빴다. 설명을 하며 이게 웬 예상치 못한 영어면접인가 싶은 생각에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서 이 사람이랑 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서 이제 안녕을 하려니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나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는 내게 인사를 하고 가다가 다시 돌아와서 내게 친구가 되지 않겠느냐고 연락처를 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연락처를 교환하고 친구가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나는 각 여행지마다 가능하면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했다. 노르웨이의 피요르드를 다녀오는 기차 안에서는 옆자리 앉은 대만에서 온 아이를 사귀어서 다음 날 오슬로를 같이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그 애는 나중에 한국에 놀러 오기도 했다. 스웨덴에서는 게스트 하우스 옆 방에 장기 투숙하는 동갑내기 크로아티아 애와 친구가 되어 같이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동행을 구하는 한국인도 만나 같이 저녁도 먹고 오랜만에 부담 없이 한국어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러고 나니 나의 여행은 더 이상 혼자 하는 외로운 여행이 아니었다.


타인을 절실히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혼자 절절한 외로움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런 절실한 마음으로, 타인을 소중히 여길 때 그 관계는 우리의 노력에 의해 유지된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도 그 사람을 너무 편하게 생각하고 자기 멋대로 쉽게 대하는 순간 서로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한다. 너무나 익숙해져서 곁에 있어주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사라질 때, 소홀함 속에 관계의 온기는 식어간다. 온기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가 당연히 내 옆에 언제나 있는 게 아니라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타인처럼 조심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가끔 보면 남에게 너무 의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나 도움이 필요한 것은 맞고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이지만, 자기의 문제를 자기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남에게 떠맡기려고 하면 남들 역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영화 ‘프란시스 하’에서 프란시스는 무조건 친구에게 의지하려고 한다. 가장 가까웠던 그녀의 벗은 그런 그녀를 부담스러워하며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쓰무라 기쿠코는 저서인 ‘걱정 매니지먼트’에서 어렸을 때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가지고 그대로 큰 사람들이 자기 내면의 아이를 남에게 떠맡기려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스스로 그 울며 떼쓰는 아이를 만나서 달래주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해결해줄 수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 혼자 해결하라는 말은 아니다. 혼자서 헤쳐 나가는 힘겨움과 누군가와 함께 있는 즐거움이 언제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관계 속의 적당함이 없으면 균형을 잃고 ‘관계’라는 다리는 무너져버린다. 그렇기에 우리는 적당히 서로를 그리워할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만나게 되는 ‘타인’은 그 자체로 곧 기적이라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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