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온 고양이 같은 나

개인적 해우소 지분 다소 있는 글

by 김긍정아가씨

사람을 참 좋아한다. 관계도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관계 때문에 신경 쓰고, 상처 받고, 슬퍼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향한 나의 애정은 지칠 줄 몰랐다.


명절에 고향 집에 가면 연휴 내내 약속이 촘촘히 차 있었다. 약속들이 디졸브 되며 바통터치하듯 나를 인계한 후 전 약속이 마무리되기도 했었다.


그 덕에 전후 약속 파트너들끼리도 안부를 주고받으며 인사를 하기도 했고, 그렇게 친해지며 나중에는 같이 보기도 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누구는 자기와의 시간을 이렇게 짧게 잡을 거면 보지 말자고 으름장을 놓을 지경이었으니.


그랬던 ‘E’ 성향의 나도 변하기는 변한다. 오히려 너무 극단적으로 변했다. 특히, 아직 채 1년 되지 않은 새 직장으로 오면서 내 성향은 너무나 ‘I’스럽게 변해버렸다.


이직한 회사에서 최종합격 통보를 받은 뒤 지역에 있는 사찰을 다녀왔다. 불교신자는 아니었지만 초에 불을 켜고 ‘좋은 팀원들 만나서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하고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12년 만에 옮긴 회사로 출근한 첫날. 같은 팀 여자 동료가 1층 입구로 나를 데리러 나왔는데 정말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 주더라.


‘아~ 여기! 느낌 좋은데? 소원초에 불 켜고 온 보람이 있군‘ 이 생각이 와장창 무너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맞이해 주던 동료는 첫날에만 그랬다. 그 뒤로는 친해져 보려고


- 점심 같이 먹어요!

- 저 요즘 몸이 안 좋아서 있는 약속도 취소하고 있어요

- 커피 같이 마셔요!

- 저 요즘 속이 안 좋아서 커피 안마셔요(다음날 다른 동료와 같이 아아를 사들고 오는 건 뭐지;;)

- (출근길 입구에서 마주침) 안녕하세요!

- 아, 예(+띠꺼운 표정)


처음엔 두려웠다. 우리팀에서는 제일 오래 근무한 동료이자 터줏대감과 같은 그녀가 왜 이렇게 나에게 냉랭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또 대놓고 못살게 구는 건 아니기에 대놓고 물어보기는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니 궁금증도 사라지고 그러려니가 되었다. 중간중간,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입바른 소리도 늘어놓았다. 그때뿐.


극도의 개인주의적인 이 낯선 공간에서 분위기에 익숙해지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조직 구성원들의 여건 상 연대감 형성이 거의 없는 구조. 좋게 말하면 출근해서 내 할 일만 잘하고 퇴근하면 되는 곳이다. 상사의 큰 눈치 없이 업무만 잘하면 된다니! 말만 들어서는 (좋은 뜻으로) 이런 곳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정말 이런 곳이 어디 있나 싶다.


아침의 인사조차 없는 이곳. 혹자는 네가 먼저 나서서 큰 소리로 인사를 해보라고 하지만 옆 자리 인턴과도 거의 복화술로 인사를 주고받는 적막함의 농도가 여느 직장과는 다른 이곳에서 분위기를 전환할 넉살 따위는 내게 없다.


터줏대감 그녀는 그렇다 치고, 조직 구성원들과 좀 가까워져 보려고 밥 약속도 만들고 했으나 안 맞는 건지, 성향들이 그런 건지 어쩐 건지 가까워짐은 어느 단계에서 멈춰버렸다.


다들 그렇게 본인 할 일들만 하면서도 잘 지내는 거 같기에 나도 그렇게 하기로 태세를 바꿨다. 그렇게 관계에 목매듯 지칠 줄 몰랐던 나였는데... 좀 신경이 쓰이기는 한다.


하지만 도무지 관계를 위한 에너지가 사용되지 않는다. 애써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나를 억지로 맞춰서 할 필요는 없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내가 하는 일이 오롯이 혼자서만 할 수 없는 일이라... 관계가 이토록 형성되지 않으니 쉽지 않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굴러는 가니 지금껏 할 수 있긴 했지만.


어느 날 알게 된 속담. '빌려온 고양이 같다’. 여러 사람이 모여 떠드는데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덤덤히 있는 경우를 표현하는 속담이라는데 꼭 지금의 나를 표현하는 듯.


”나 지금 꼭 빌려온 고양이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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