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달 Jan 17. 2020

나와 맞는 사람 아닌 사람 그 경계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의 오류

 



  나는 사람을 대할 때 나와 맞는 사람이다 아니 다를 마음에서 방을 만드는 편이다. (물론 좋은 습관은 아닌 것 같지만 안 고쳐진다.)

나와 맞는 사람이라면 일단 들어보고 결정한다. 호의적이게 대한다. 본능인 것 같다. 나와 사상이 잘 맞고 내가 말하는 것에 대해 반응이 적절한 사람이라면 일단 '내 사람'이 된다.

반면에 몇 마디 해보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일단 마음속에서 '아니다 방'으로 가게 된다. 비판적 태도로 받아들이고 냉정한 태도가 되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성격은 변하는 것 같지만 아주 변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요즘은 내 마음속 방 문이 헐거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방을 옮겨 다닌다.






내가 판단력이 흐려졌나? 

대답은 No다. 애초에 사람을 판단해서 방을 나누어 두고 방문을 걸어 잠겄던 게 나만의 판단이었다. 30대가 되면서 그 판단이 옮지 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지만 3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더욱더 그 마음속 판단이 시시때때로 바뀐다.


 몇 해 동안 가끔씩 만나며 마음속 얘기를 나누며 친하게 지냈고 생각이 비슷하다고 느꼈던 사람이 같이 일하면서 부딪쳐보니 나랑 너무 안 맞다는 생각에 마음속 방을 '아니다 방'으로 옮겼었다.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자책한다기보다는 애초에 나랑 안 맞는 사람인데 몰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어제는 또 그 사람과 우연찮게 대화를 길게 하다 보니 또 괜찮은 거다. 내 마음속에 중간방이 생겨버렸다.


내가 변했나?

이건 Yes인 것 같다. 내가 변했다는 의미는 내가 다 맞다는 편견을 버렸다는 의미이다. 나는 너무 확신에 차서 사람을 내 마음속에 방에 두고 내 사람, 아닌 사람을 구분해서 지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 사람이 나를 섭섭하게 하면 너무나 속이 상하고 배신감이 들고 아닌 사람이 나에게 득이 되는 일을 해주면 무슨 꿍꿍이 지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과 20대 초에 이런 성향이 아주 심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시기가 나에게 가장 암흑기였고 대인관계, 사회생활, 개인의 생활까지 쉽지 않은 시절이라 타인에게 철벽을 치고자 했던 나만의 방어수단이었으리라.




 나는 어떤 사람인가.

  돌이켜보면 나는 20대 초까지는 '좋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친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겠지만(이것도 나의 착각인가 싶다) 지극히 타인에게는 까칠한 사람, 냉정한 사람 혹은 더러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지극히 동의한다. 사회 안에서 안정적으로 관계를 잘 맺고 그 안에서 나를 우선적으로 챙길 수 있을 때 비로소 마음의 평화가 오는 것 같다. 사실 그때는 이 사실을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내 생계가 급했고 주변에 관심 줄 여유도 없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사느라 의미 같은 건 찾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사무실 사람들에게 나는 그들의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아닌 사람도 아니다. 그들끼리 저녁 약속을 잡고  뒤늦게 나에게 같이 갈래요?라고 물어봐도 섭섭하지 않다. 그리고 내가 같이 가지 않아도 그들은 섭섭해하지 않는다. 공적인 공간에서 공적인 관계와 사적인 경계를 유지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결과인 것 같다. '내 사람'이 아니라도 더 편하고 더 돈독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꼭 아주 가까이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작가의 이전글 쿨함으로 포장된 이기주의에 대한 대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