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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달 Sep 19. 2021

내 시골에서의 추석의 밤

신랑과 딸과 어린 나와 함께

 

 시골 밤공기가 차갑다. 가을은 새벽부터 조금씩 차오르나 보다. 추석 연휴 첫날에 수도권을 벗어나느라 친정집에 도착하는 게 7시간이나 걸렸다. 물론 휴게소도 들르고 잠시 쉬기도 하는 시간까지 합쳐서지만. 깡시골은 부산까지의 거리를 방불케 하지만 여기에서 부산은 한참 멀다.


 코로나19로 명절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그냥 길게 쉬는 날로 변한 느낌이 든다. 어릴 때 어디에서 얻었는지 모르는 빨간 한복을 입고 사람 한가득 있던 할머니 댁에서 사람들 헤쳐서 차례 기다리며 인사하고 송편을 먹던 그 시절은 정말 옛날 시절이 되어버렸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 어른들이 조금씩 챙겨주던 용돈들을 쏠쏠했고 추석은 그것 이외에는 별로 기다려지지는 않았던 어린날에도 그냥 긴 쉬는 날일 뿐이긴 했다. 맡며느리인 엄마의 극한의 노동을 보았고 남자 어른들의 가부장적 거드름을 이상스러워했다. 남자 어른들이 제사를 지낸다며 여자는 절을 안 하니 제사상을 구경하던 나에게 주방에 가 있으라고 하던 상황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는 왜 내가 제사에서 제외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주방에 있던 여자 어른들에게 물어봐도 딱히 이해되는 말을 듣지 못했다.

 한 번은 추석에 할머니 댁 뒷터 나무에 통통한 흑염소 한 마리가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어린 나에게 그 광경은 조금 충격적이면서 신기하기도 했다. 그날 다음날에 할머니 댁에는 고약한 고깃국 냄새가 진동을 했고 친척 어른들과 동네 사람들까지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상을 차려서 고약한 냄새의 고깃국을 먹으며 술판을 벌렸다. 구석에서 고깃국을 우리 형제들을 먹이던 엄마는 머리가 빠글빠글한 지금보다 훨씬 젊은 허리가 안 아픈 아줌마로 기억이 된다. 나는 냄새가 난다며 코를 막았고 어제 그  까만 염소냐며 동그란 눈을 뜨고 엄마에게 물었고 엄마는 맞다고 했다. 먹지 않는 나를 보더니 주방으로 가셔서 그릇 하나에 고기만 가져오셨고 닭고기라고 말씀을 하셨다. 나는 그걸 믿고 그 고기로 저녁을 먹었다. 지금 생각하니 엄마는 내 머리 꼭대기에 있었고 그 고기를 자식들에게 먹이려고 바쁜 명절인데도 옆에서 지켜보며 우리를 챙기고 있었다.


 7살 딸은 시골에 오자마자 속옷 차림으로 거실과 방을 뛰어다니며 시골 공기를 만끽하고 놀았다. 외할머니가 양파망으로 만들어준 잠자리채로 탐험을 나가서 잠자리 두 마리를 잡고 봉숭아꽃을 따서 들어왔다. 잠자리는 잠시 관찰만 하고 다시 놓아주고 봉숭아꽃잎을 찧어서 신랑 엄지발가락, 7살 딸의 발가락 10개에 올려주었다.

 추석이지만 할머니 댁에는 올라가지 않고 집에서만 놀았다. 코로나19가 만든 풍경이지만 세월도 한몫을 하긴 했다. 할머니 댁에는 할머니는 없고 할아버지만 계시다. 시골 친정에는 아빠는 없고 엄마만 있다. 명절 첫날이라 언니들은 오지 않았지만 사실 모일 생각도 없었다.

 세월은 많이 지났고 같은 공간에서의 풍경이 눈에서 겹치는 건 기억이 추억이 되었다는 것이겠지. 친정에 올 때마다 어렸던 나를 희석된 추억에서 만난다. 그때의 냄새와 공기는 변하지 않는 게 신기할 뿐이다. 어린 시절 울고 웃던 이 방에서 신랑과 7살 딸이 코 골고 자고 있는 게 신기할 뿐이다. 그때는 내가 여기에서 남편과 자식을 데리고 자게 되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겠지. 나는 이 방에서 애틋하고 그리운 어린 나와 함께 누워있다.

이렇게 내 시골에서의 추석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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