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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달 Dec 24. 2021

돌아가신 아빠가 꿈에 나왔다




 돌아가시고 두 번째 꿈에 나오셨다.

첫 번째는 돌아가신 지 며칠째 되던 날, 그리고 어젯밤은 2년 만이다.

어릴 때가 지나고 나면 나름 정 있게 애틋하게 지내오기도 했던 것 같다. 다른 가족과는 달리 나는 그렇다.

한번씩 아빠 생각이 날 때면 여전히 아마도 계속 눈이 붉어진다.

60이 되어 돌아가신 그 나이가 아까워서. 불쌍해서.

다른 가족들이 덜 슬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아니다. 다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추억하고 애도하고 원망하기도 하고 슬퍼했다. 이런 사실은 한참 지나고야 알았다.


 간밤에 꿈에 나온 아빠는 엄마와 함께 어딘가에 갔는데 여전히 엄마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해가 져버렸고 우리는 길을 잃었다.

"어떻하노, 어떻하노." 하는 엄마와 나의 눈초리를 살피던 아빠의 얼굴이 꿈에서도 여전했다. 멋쩍으면서도 고집은 꺾기 싫은 그 모습 여전했다. 주변은 깜깜해졌고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고 하던 엄마의 말을 기어이 안 듣고는 우리는 길을 잃었고 나는 꿈에서 깼다.

 아빠는 여전히 아빠가 불쌍하지도 않냐고 말하는 것 같다. 엄마를 구박하던 아빠를 우리는 원망했다. 그럴 때면 아빠는 항상 아빠가 불쌍하지도 않냐고 했다. 뭐가 그렇게 불쌍해 보이길 바랬을까.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고 그래서 더 표현할 줄도 몰랐고 방법도 몰랐던 아빠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가족들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셨다. 아마 아빠도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나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하셨을 거다.


 살아간다는 것, 살아진다는 것.

혼자 살아갈 때는 한 치 앞이 안 보인다는 말이 무엇인지 절실히 알고 살았었다. 나의 미래가 그려지지가 않았다. 그 미래가 그다지 밝을 거라는 예상도 되지 않았다. 불행하지만은 않기를 바랐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남편이 생기고 자식이 생겼다. 이제 내 삶은 혼자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산다고 살아지는 것도 아니게 되었다. 이제는 내 미래가 어떨지 예상이 된다. 그리고 내 미래가 어쩌면 계속 행복할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가난과 가족의 불행이 대물린 된다는 건 믿지 않게 되었다.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아빠는 말년에 조금은 다른 걸 느끼면서 사셨을까.

있었을지도 모를 그 세월이 아쉬워서 자주 마음이 찡하게 아빠 모습이 떠오른다.  살고 싶으셨을 거다. 더 세월을 느끼고 싶으셨을 거다. 지난날 미숙한 아빠였던 자신을 탓할 시간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불쌍하다 우리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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