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
어릴 적 졸업식 기억이 난다. 운동장에 부모님들이 이곳저곳에서 걸어 들어오고 졸업반 아이들은 큰 어른이라도 된 양 어깨가 늠름해 보이게 저학년들 사이에서 돋보였다. 끝과 시작의 미묘한 지점이었다. 또 다른 세계는 어떨까.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었다.
유치원 졸업식은 사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입학식 후 교실에 앉아있던 생경함은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아래위 세트로 된 빨간색 체육복을 입고 짧은 단발머리에 하얀 운동화를 신고 제일 일찍 교실에 앉아있었다. 저 멀리 엄마가 앉아있는 나를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담임 선생님은 굵은 파마머리에 치마를 입고 있었고 무뚝뚝하고 무서운 표정이었다. 모든 게 낯설고 새로워서 두려움이 더 컸던 그런 날이었다.
오늘 우리 집의 8살도 유치원 졸업을 한다. 졸업하기 전날 밤 눈시울을 붉히며 아쉽고 섭섭함을 배웠다는 걸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서 말해줬다.
"정이 많이 들었구나."
"정들었다는 게 무슨 뜻이야?"
한 번씩 허를 찌르는 질문에 말문이 막혀서 머릿속에서 뜻을 찾느라 퍼즐 조각을 맞춘 후 대답을 해줘야 할 때가 있다. 정이 들었다는 건 뭘까. 뜬금없이 그 말이 참 설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함께 있어서 익숙하고 좋아졌다는 느낌일까, 마음을 나누어서 떨어지기 싫은 마음일까. 이것 말고도 정이 들었다는 건 어떤 말로도 표현해도 그 말이 맞을 것만 같았다. 헤어질 생각을 하니까 눈물부터 난다는 우리 집 8살은 훌쩍훌쩍 크면서 마음도 이렇게 커가고 있었다.
자기 전 졸업식 생각에 잠이 안 온다고 하길래 한참을 다독여주고 엄마의 어린 시절 졸업식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섭섭해져서 잠이 달아나는지 내일이 졸업식이 아니라고 생각할 거라고 말한다. 귀엽다. 초등학생이 되는 걸 그렇게 기다리더니 이 섭섭함을 주체하기는 쉽지 않은 거겠지. 그건 어른도 마찬가지일 게다.
8살의 붉어진 눈을 보자니 내가 더 눈물이 나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빛나는 7살을 졸업시켜줘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기특하면서도 애틋하고 또 그립다. 전 세계적인 감염병은 옛 추억이 무색하게도 정을 나눌 기회를 주지 않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다. 오늘은 친구들과 힘껏 오전 시간을 즐기고 웃고 떠들고 졸업식을 하게 되면 섭섭해서 눈물을 흘릴 것이다. 엄마가 사 온 꽃을 받아 들고 붉은 눈으로 함박웃음을 지을 것이다.
기특하고 예쁘다.
살아간다는 건 만나고 헤어지고 느끼고 깨닫고 울고 웃고의 반복인 것 같다. 오늘의 졸업식은 너와 나의 기억 한켠에 필름처럼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언제든 꺼내서 보자. 언제든 꺼내서 얘기하자. 그리워하고 즐거워하고 애틋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