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야"
도서관에서 우연히 빌려온 그림책이 가끔 상황에 딱 맞거나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럴때 주변의 일들이 촘촘히 연결되는 느낌이 드는데 다비드 칼리의 “오랜만이야!” 그림책이 바로 그랬다. 단지 안에서 열리는 나눔 장터 행사를 앞두고 벼룩 시장에 내 놓을 물건을 고민하며 일어난 일이 그려진 그림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에 벼룩시장이 열린대요. 이참에 우리도 집을 정리해서 벼룩시장에 나가 볼까요? 몇 년 동안 한 번도 안 쓴 물건들이 가득하잖아요.”
남자는 여자의 벼룩 시장 소식에 안 쓰는 물건이 뭐가 있을지 계단 위 창고처럼 쓰였을 다락방에 어슬렁 어슬렁 올라간다. 어둡게 먼지가 내려앉았을 그 곳에서 남자는 어린 시절에 치던 북을 발견한다. 귀청 떨어진다고 괴로워하셨던 부모님도 소환하고 북을 치던 어린 나를 바라본다. 다음은 페달 자동차.
부릉부릉! 부르릉!
이건 안돼. 이렇게 멋진 추억이 사라지게 둘 수는 없어.
큰 메기를 잡을 뻔 했던 낚싯대와 온 동네를 누비고 다니던 썰매.. 모두 오래 쓰지 않았지만 결코 쉽게 내어줄 수 없는 유년의 추억이 담긴 많은 물건들이다.
그러다가 아예 장난감 기차를 꺼내 노는 남자 어른! 이미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웃음이 나온다. 말짱했던 트램펄린과 목마까지, 어떤 물건은 그 물건을 사용하던 당시의 나로 불러내어 도저히 이것만은 안돼라는 심정을 만든다.
햇빛이 반짝이던 오월의 금요일 오후, 입주민이 참여하는 아파트 나눔 장터가 열렸다. 아이는 공지가 뜬 2주전부터 고심하며 장터에 내놓을 물건들을 챙겼고 그 물건들을 얼마에 팔지, 누가 그 물건을 사갈지 몹시 기다리고 설레여했다. 작아진 옷과 한복, 여행지에서 산 인형들, 팝업북과 이런 저런 소품들까지 고심하며 담고 기다렸다. 모든 과정을 아이에게 맡겼는데 대부분의 물건들이 500원, 1000원, 2000원이었고 착한 가격덕분에 물건은 장터에서 비교적 빨리 소진되었다.
책 속의 남자만큼 물건에 엄청 미련을 두진 않고 자기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누군가 쓴다는 것이 꽤 보람차게 느껴졌나보다. 오히려 물건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더 애잔했는데 유치원 졸업식때 사입힌 한복과 시드니에서 산 팝업북들, 타롱가주에서 고른 양 인형, 제주에서 산 여아 핸드백등.. 추억이 몽글몽글.. 그때 그 시간들이 피어올랐다. 행사가 끝나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물건을 팔고 받은 22,900 의 현금을 자랑스레 보여준다. 그래, 그것으로 충분하구나.
열살 아이의 경험치는 무엇이든 조금씩 늘어날테고 온전히 즐기고 사람들과 섞이는 과정들은 이제 더 많아질 것이다. 어제 나눔장터는 장애인 공연 예술단에서 준비해준 한빛 예술단 음악회까지 함께 있어서 봄바람에 맞춘 근사한 연주와 노래까지 들을 수 있었다. 집안에만 있던 사람들이 점차 밖으로 나오는 요즘, 그간 하지 못했던, 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이 다시 재개되고 있다. 모여서 무언가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들이었는지 2년이 넘는 코로나 기간은 그 소중함을 확실히 각인시켜주었다. 행복을 미루지 않고 매일매일의 행복을 손에 잡으며 마스크를 온전히 벗지 못해도 마스크 속 숨은 미소를 볼 수 있는 서로에게 다정한 이웃이 되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