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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그린 Dec 13. 2024

얼어 죽을 놈의 친구는 무슨

친구를 사랑한 아빠의 마지막

“어~! 영식아 왔나? 와줘서 고맙다~”

“머라카노! 당연하지. 근데 무슨 놈의 줄이 이렇게 기노?”

“새치기하지 말고 줄 똑바로 서라이~ㅎㅎ”


정확히 9년 전 오늘은 나의 결혼식 날이었다. 그리고 아빠가 학수고대했던 일생일대의 잔칫날이기도 했다. 맏딸이었던 나는 아빠가 퇴직하기 1년 전 결혼을 했다. 내가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결심하고 예식을 진행하기까지! 마치 아빠를 위해 전개되어 가는 듯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아빠는 40년 넘게 한 직장에서 일했다. 그리고 자기 인생의 9할을 직장과 직장동료에게 쏟아부었다. 사람을 좋아했고, 친구들을 사랑했다. 집밥보다는 술과 안주를 즐겼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보다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친구에 죽고 친구에 살던 아빠였다.


내 결혼식에서 축의금을 내려면 예식장 코너를 돌아 늘어진 줄을 서야 했다. 아빠가 40년간 쫓아다닌 경조사를 생각하면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아빠는 끊기지 않는 하객 발걸음에 환호했고, 늘어진 화한에 들떠있었다. 가족보다 친구들을 더 사랑하길 잘했다 싶은 날이었다.




아빠는 3개월 투병을 끝내고 만우절 아침에 하늘나라로 갔다. 고인이 집에서 죽으면 경찰과 과학수사대가 와서 사인을 조사한다. 수사에 협조를 하느라 마냥 울고 있을 수 없었다. 시신을 옮기고 영정사진도 없는 빈소에 앉아 아빠가 떠났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울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서둘러 부고문자를 돌렸다. 아빠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친구목록을 보니 빈소를 좀 더 큰 곳으로 잡아야 할 것 같았다. 접객공간을 확장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남은 장례준비를 하나씩 해 나갔다.  


‘또 한 번 잔칫날이 되겠군!‘


엄마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확장하기로 했던 접객실 중간 문은 열어보지도 못했다.


‘부고문자를 만우절 문자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 그래..사람들이 밤에 많이 오는 편이지’  ’ 내일은 오겠지..?’  ’ 발인날은 올 거야ㅜㅜ’


하루 이틀 지날수록 화가 났다. 아빠가 그렇게 좋아했던 친구들, 아빠 덕분에 숨통 틔우며 살게 된 아저씨들, 아빠가 도와줬던 아저씨들, 아빠한테 어려운 부탁만 했던 아저씨들은 코베기도 안보였다. 나의 감정은 이내 연민으로 바뀌었다. 원래 사람 살아있을 때나 경조사 쫓아다니지 사람 죽으면 따라오지도 않는다는 말이 우리 아빠 이야기가 될 줄이야. 쓸쓸한 마음을 달래며 영정사진을 쳐다볼 뿐이었다.

 


“너희 아빠는 좋은 사람이었어. 진짜 최고였어”

“아빠는,,, 친구들에게는 만점이었을지 몰라도 가족에겐 0점이었어요.. 좋은 친구? 그럼 뭐해요?!!  장례식장에 오지도 않는데”


아저씨들이 아빠를 추억하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꺼낼 때, 동생은 소주 한잔 들이키며 차갑게 되받아쳤다. 동생 기억 속에 아빠는 0점이었다.


얼어 죽을 놈의 친구는 무슨, 죽었다고 슬퍼하지도 않는 친구들. 뭐 좋다고 그렇게 가족보다 더 챙겼을까….

쓸쓸한 장례식을 치르고 많은 생각이 스쳤다. 엄마와 동생, 나 우리 셋이 추억하는 아빠의 모습이 다 다르다는 것.


그리고 퇴직 후 사망은 슬픔에 씁쓸함이 곱절이 된다는 것.


그래도 목놓아 울부짖던, 아빠 친구들이 마지막을 지켜줘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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