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 항암제를 맞고 우리는 기대감에 차올랐다. 아빠의 면역력이 좋아지면, 암세포와 싸울 힘이 생기겠지. 아빠가 그렇게 좀 더 버티다 보면 암세포들이 자멸하겠지..
그날 오후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아빠는 한숨 내려놓고 눈을 붙였다. 곤히 잠든 지 2시간 30분 만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아빠. 도착했어 일어나”
“응 그래. 어…어 이상하다 다리가?”
“왜 그래? 일어나 봐..”
동생이 아빠를 부축해서 몸을 일으켰다. 독한 항암주사를 맞고 잠들었다 깬 직후라 몸이 무거운 거겠지. 생각했다. 역사엔 엄마가 마중을 나와있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아빠는 몇 걸음 못 걷고 휘청거렸다. 동생은 다시 쓰러지려는 아빠를 부축해 일으켰다. 정신이 혼미했고 눈에는 초점이 사라져 갔다. 아빠 몸 안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건강한 면역세포들이 암세포에 공격을 받고 있는 듯했다.
“늬 아빠 왜이러노?”
“몰라. 기차 타기 전에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이래..”
아빠는 콧속에서 자라는 암덩어리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입으로 호흡하며 지내왔다. 침대에 누워 잘 수가 없어서 소파에서 24시간을 보냈다. 앉아서 먹고, 앉아서 잠을 잤다. 집으로 돌아와 자연스럽게 아빠를 소파에 앉혔다. 길고 느린 호흡을 겨우 내쉬며 아빠가 말했다.
“나 좀 눕혀줘….”
누우면 숨을 쉴 수가 없어서 항상 앉아서 밤을 지새웠는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눕고 싶다고 말했을까. 아빠는 비인두암 4기를 선고받은 날로부터 3개월 만에 처음으로 안방 침대에 누웠다.
며칠 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가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고 있다고. 이러다가 얼마 못 버틸 것 같아 무섭다고 했다. 엄마가 보내온 아빠의 사진은 처참했다. 나의 아빠가 아니었다. 내가 알던 아빠가 아니었다. 1주일 만에 아빠는 100세 할아버지가 됐다.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 갈비뼈만 남은 삐쩍 골은 몸. 팅팅부은 얼굴. 튀어나올 것 같은 눈알. 목에 있던 암이 더 커져서 얼굴보다 목이 더 두꺼워진 상태 었다. 차마 아빠의 사진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1주일 전. 우리 기차역에서 두 발로 서서 서로 포옹하며 잘 가라고 인사했잖아… 3주 뒤에 다시 보자고 했잖아…’
아빠는 걷지도 못하고, 혼자 힘으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빨리 부산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하지만 곧장 출발할 수가 없었다.
내 자식의 생일이 먼저 떠오른 비정한 나는 5일 뒤 부산으로 내려갔다. 자기 생일 파티를 기대하며 손꼽아 그날만을 기다리는 6살 아들의 생일은 지켜주고 싶었다. 아빠가 그때까지 버텨주기만을 기도했다. 아들의 생일 다음날 새벽 6시 부산으로 출발했다.
“아빠……….”
침대에 누워 잠든 아빠 옆에서 얼마나 울었을까. 흐느적 대는 소리에 아빠가 깼다. 튀어나올 듯 커져버린 눈을 부릅뜨며 딸이 온 걸 보고 반가워했다. 그런 아빠를 보며 더 빨리 내려오지 못해 미안하고 미안했다. 아빠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말했다.
“공주야. 아빠 명 좀 끊어줘... 아빠 빨리 가고 싶어.. 늦어도 다음 주에는 가고 싶어..”
“아빠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어떻게 명을.. 흐 흑ㅎ흑ㄱㄱ “
아빠는 그 뒤로 3일 동안 잠을 오래 잤다. 가끔 눈을 뜨고는 천장만 뻐끔뻐끔 쳐다보았다. 목이 마를 때면 몸을 부축해 앉아 한 모금 마시고 몇 분을 멍하니 앉아있다가 다시 눕곤 했다.
날이 갈수록 눈을 뜨는 시간도, 앉아 있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의식도 희미해져 갔고, 말을 걸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동문서답을 했다. 한 번씩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고, 저기 있는 남자는 누구냐고 나가라고 했다.
우리는 아빠가 무엇을 보는지는 모르지만 저승길 문 앞에 서서 들어가기 싫다고 거부하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선망증상이 지속되었다. 우리 가족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내일이면 월요일. 나와 나의 가족은 또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짐을 챙기고 있었다.
“여보야~~” 안방에서 들려오는 아빠의 부름에 엄마와 달려갔다. 우리는 아빠를 일으켜 물 한 모금 마시게 한 뒤 다시 눕혀드렸다. 아빠의 의식이 선명했던 순간이었다.
“우리 딸 참 잘 키웠다…”
“아빠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아빠가 나를 보며 말했다. 또박또박 말했다. 아빠의 목소리로, 아빠의 눈빛으로.
나는 아빠가 나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임을 직감했다. 지금 서울로 올라가면 아빠를 못 볼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아빠 옆에서 한없이 울다가 억지로 몸을 돌렸다. 3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다음날, 어김없이 월요일이 돌아왔다. 새로운 봄을 알리는 4월이 시작되었고, 평소랑 똑같이 새벽에 일어나 사무실로 향했다. 하루를 시작한 지 1시간쯤 지났을 때었다. 전화가 울렸다.
“누나!!!!! 아빠가 숨을 안 쉬어…”
아빠는 거짓말처럼 4월 1일 만우절날 우리 곁을 떠났다. 빨리 죽고 싶다며 늦어도 다음 주에는 가고 싶다던 아빠는 정말 다음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홀연히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