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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그린 Dec 06. 2024

350만원만 있으면 살 수 있어.

“지난 3주간 좀 어땠습니까? “

“아이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너무 힘들었어요. 잠도 못 자고 정말,, 힘들어서 이제.. 항암 못하겠습니다.. 선생님”

“그러시면 치료를 중단하시지요!”

“…. 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서울 병원에서 항암주사를 맞고 부산으로 내려가 보낸 지난 3주는 아빠에겐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상태가 급격히 안좋지기 시작했다. 항암주사를 맞고 좀 좋아지긴커녕, 부작용이란 부작용은 다 생겼다. 좀 더 살아보려고 죽음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춰보려고 맞은 주사가 죽음의 시간을 더 끌어당기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빠는 대기실에서 나지막이 말했다. ‘이제 더는 못하겠다..‘  

3주 만에 만난 담당교수에게 항암주사 맞고 여기저기 너무 힘들었다고 말하는 아빠의 모습은 마치  아픈 아이가 엄마에게 응석이라도 부리는 것 같았다. 응석을 들어주지도 않고 그렇게 힘들면 그냥 하지 말라는 당담교수의 말 한마디가 그토록 차갑고 서글프게 들리다니.. 고생 많았다는 말 한마디, 힘드셨죠?라는 위로의 말 한마디 없이 삶을 놓아라는 그 말이 참 야속했다. 아빠와 나는 아무 말할 수 없었다. ‘지금… 그럼 그냥 죽으란 거야?‘ 응석을 받아 주지 않는 교수의 입장을 암환자의 가족으로서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뭘 잘 못 들었나? 싶어서 교수 얼굴 한번 아빠 얼굴 한번 쳐다보았다.


“그럼 지금 항암주사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까?”

“지금은 호스피스를 알아보거나 요양원 쪽을 찾아보시는 게.. ”


의사는 더 차갑게 말했다. 아빠도 나도 그냥 죽음이 코앞에 왔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슬프고 슬펐다. 의사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살려달라 애원하고 싶었지만, 냉혹한 성격의 의사는 감정에 호소해도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이 차가웠다. 맥이 빠진 채 일어서려는 우리 가족에게 의사가 한마디 했다.


“지난번 맞은 주사 말고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좀 많이 비쌉니다. 보험적용이 안돼요. 그거 생각 있으면 간호사한테 말하세요”

“아 뭐가 또 있습니까? 그건 어떤 겁니까?”

“나가서 간호사한테 들으세요”


의사는 두 번 세 번 네 번 차갑게 굴었다. 호스피스를 알아보는 게 좋겠다고 말할 만큼 더 이상 항암치료가 의미 없다고 매몰차게 말한 게 불과 1분 전이었는데, 좀 비싼 다른 항암주사를 맞아보는 방법이 있긴 있다며 우리를 간지럽혔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 그다음 방법으로 또 다른 항암주사를 제안한 걸까? 심지어 설명도 귀찮다는 듯, 진료실을 나가서 간호사에게 들으라 했다. 몇십 분을 더 기다렸을까? 썩은 동화줄이라도 잡아 볼 수 있는 밭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하며 우리 가족은 그 주사치료제에 희망을 품었다.


상담실에서 들은 그 주사는 면역주사로 1회 처방에 350만 원이라고 했다. 1회 처방가격이고, 보험적용이 안되다 보니 부담스러웠던 건 사실이지만, 이 주사로 아빠가 좀 살만해진다면, 면역력이 올라가서 다시 암세포와 싸워 볼 시간이 생긴다면 맞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면역주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다음 날, 아빠와 다시 찾은 병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이 주사가 아빠의 몸에서 좋은 반응을 일으켜주길 기도하고 주사실로 향했다. 주사는 1시간 이내로 끝났다.


“아빠 좀 어때? ”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기분은 좋아”  


아빠는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 나와 홀가분하다는 듯 말했다. 그 말은 들은 나도 마음이 괜스레 놓였다. 그래 비싼 만큼 그 값을 하겠지~ 지금보다 좀 더 좋아지겠지. 우리는 수서역으로 향했다. 아빠와 동생이 기차를 타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갈 시간이 되었다. 3주 면역주사 치료 결과를 보러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아빠. 가는 동안 눈 좀 붙이고~ 많이 피곤할 텐데 고생했어요. 잘 가고~”

“그래 그래 니도 고생했다. 얼른 들어가라~ ”

“응 아빠 잘 가~”


수서역에서 마지막 포옹을 하고 떠나는 기차를 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 때보다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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